기획재정부가 내년 예산에서 각 부처가 재량으로 편성하는 지출의 10%를 삭감해 달라고 요구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응하느라 나랏빚이 빠르게 늘고 있고, ‘한국판 뉴딜 사업’ 등 경제 회복을 위해 돈 쓸 일이 많아질 것으로 예상되자 허리띠를 바짝 조이기로 한 것이다.

기재부는 6일 ‘2021년도 예산안 편성 세부지침’을 확정해 각 부처에 통보했다. 지침은 과감한 지출 구조조정에 방점이 찍혔다. 우선 부처별 재량지출의 10%를 구조조정한다. 재량지출은 정부 총지출에서 법령에 따라 의무적으로 나가야 하는 돈(의무지출)을 뺀 나머지를 뜻한다. 주로 공무원 수당·경비, 각종 사회간접자본(SOC)·산업 지원 분야 예산이 해당한다. 올해 본예산 기준 256조6000억원으로 전체 예산의 50.1%에 이른다. 이런 재량지출 가운데 효과가 낮은 사업을 발굴해 20조원 이상의 예산을 절감하겠다는 것이 기재부 계획이다.
아낀 예산은 한국판 뉴딜에 투입

기획재정부는 나랏돈을 무상으로 지원하는 ‘보조사업’에도 현미경을 들이대기로 했다. 3년 이상 지원된 민간보조사업 600여 개를 원점에서 재검토한다. 사업 목적을 달성하거나 지원 필요성이 낮아진 사업은 폐지·축소할 계획이다. ‘민간보조사업은 최대 6년을 지속할 수 없다’는 지침도 새로 마련했다. 보조사업 연장평가를 통해 기한을 늘려주는 것도 1회로 제한하기로 했다.

기재부는 공공기관 운영·사업비를 지원하는 출연사업 500여 개도 구조조정 테이블에 올려놨다. 법적 근거가 미비한 사업은 폐지하고, 경영평가 점수가 낮은 기관은 행사·홍보성 경비 등을 줄인다.

정부는 이렇게 아낀 예산을 내년 신규·핵심 사업에 투입할 방침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디지털 경제·비대면산업 육성을 골자로 하는 한국판 뉴딜 사업 또는 경제 활력 회복에 기여할 수 있는 혁신성장·고용 관련 사업에 재투자가 이뤄지도록 유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출 구조조정을 통해 예산 총액 증가를 억제하면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해 ‘일석이조’의 효과를 내겠다는 얘기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런 전략의 출발점인 ‘재량지출 10% 구조조정’부터 실효성이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기재부는 어떤 사업 예산을 얼마나 줄일지를 각 부처 자율에 맡기기로 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실효성은 떨어지나 부처 기득권과 연관이 깊은 사업은 손을 안 댈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라고 지적했다.

10% 구조조정을 관철시킬 장치도 부족하다. 기재부는 지난달 “지출 절감 실적이 부족한 부처는 기본경비 삭감 등 페널티를 주겠다”고 밝혔지만 세부지침엔 구체적 기준을 제시하지 못했다. 부처 반발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서민준 기자 moran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