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잇단 자구책에도 정부는 지원 '신중'
항공사 대부분 상반기 버티기 어려워…정부 "대응방안 긴밀히 협의중"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며 항공산업이 사실상 붕괴 위기에 처했지만 정부의 항공업계 추가 지원 방안은 아직 구체화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어 업계의 시름이 커지고 있다.

이미 대한항공을 비롯한 모든 항공사가 '마른 수건 쥐어짜기'를 하고 있지만, 정부의 추가 지원 없이는 상반기를 버티기도 쉽지 않아 '이러다 골든타임을 놓치는 것 아니냐'는 절망 섞인 우려도 나온다.

12일 정부와 항공업계 등에 따르면 현재 정부가 항공업계 추가 지원을 놓고 가장 고민하는 부분은 바로 대한항공에 대한 지원 방안이다.

대한항공의 올해 1분기 영업손실은 2천400억원대로 전망된다.

2015년 3분기부터 작년 4분기까지 18분기 연속 흑자를 기록했으나 코로나19 여파로 19분기 만에 적자로 돌아서게 됐다.

1분기 여객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30% 넘게 쪼그라든 1조3천억원가량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골든타임 놓칠라"…진도 안나가는 정부의 항공업계 지원책
그나마 최근 6천228억원 규모의 자산유동화증권(ABS) 발행에 성공했지만 3월 여객 수송량이 전년 동기 대비 75.7% 감소했고 코로나19 국면에서 그나마 선방한 화물 수송량 역시 16% 감소한 점을 감안하면 충분한 자금 조달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대한항공은 전 직원의 70% 이상이 6개월간 순환휴직에 들어가는 한편 임원진은 월 급여의 30∼50%를 반납하기로 했다.

송현동 부지 매각 등도 추진 중이다.

우기홍 대한항공 사장은 지난 8일 "지금 아무리 돈 많은 항공사도 6개월 서 있으면 돈이 안 돌아간다"면서 "리볼빙(차환)이 어려워 정부에 신용 보강을 요청했는데 아직 정부나 은행에서 패러다임이 안 잡힌 것 같다"며 정부의 조속한 지원을 촉구하기도 했다.

이 같은 자구책에도 정부의 지원 방안은 아직 진도가 나가지 않고 있다.

특히 대기업에 대한 특혜 시비를 우려해 대한항공 지원에 한층 신중한 모습이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지난 6일 "정부는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다"며 "리스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항공산업의 구조적 특성상 부채비율이 높아 금융지원과 함께 자본확충, 경영개선 등 종합적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골든타임 놓칠라"…진도 안나가는 정부의 항공업계 지원책
이처럼 대한항공의 재무 흐름을 문제 삼으면서 정작 정부의 추가 지원을 위한 조건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는 않고 있어 일각에서는 담보와 오너의 사재 출연 등이 선행돼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하지만 항공업 특성상 항공기 리스금액 등으로 부채비율이 높을 수밖에 없는 데다 이번 상황이 기업의 경영 실패가 아닌 대외 변수로 인한 것인 만큼 오너의 사재 출연 요구 등은 무리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특히 한진그룹이 경영권 분쟁을 겪는 만큼 이는 자칫 경영권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대한항공은 그동안 부채비율을 500%대로 안정적으로 유지해왔다"며 "부실기업도 아니고 부채를 문제없이 관리하겠다고 하는데도 지원에 필요한 금액 규모가 워낙 크기 때문에 (금융위에서) 고민이 많은 것 같다"고 전했다.

정부의 추가 지원이 대한항공에서 진전을 이루지 못하면서 다른 항공사에 대한 추가 지원 논의 역시 막힌 상태다.

정부 관계자는 "대한항공 지원이 현재 '빅이슈'"라며 "이 부분이 정리돼야 다시 저비용항공사(LCC) 등에 대한 지원으로 넘어갈 수 있는데 해결 방법이 빨리 안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와 항공사들의 속은 타들어 가고 있다.

현재 항공사들은 매출 급감에 따른 자금 경색을 극복하기 위해 근로시간 단축, 임직원 급여 삭감, 대규모 운휴, 무급휴직, 희망퇴직, 권고사직, 추가 자금 조달 등 가능한 모든 방안을 내놓고 있지만 대부분 상반기를 버티기 힘든 상황이다.

HDC현대산업개발의 인수 절차가 진행 중인 아시아나항공의 적자와 부채 규모는 날이 갈수록 불어나고 있다.

일각에서는 올해 1분기에만 3천억원 이상의 적자를 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골든타임 놓칠라"…진도 안나가는 정부의 항공업계 지원책
이에 따라 현산이 '승자의 저주'에 빠졌다는 얘기도 나온다.

현산은 일단 채권단인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에 대출금 만기 상환 연장, 금리 인하 등을 요청한 상태다.

LCC의 경우 정부가 LCC에 대한 지원액 3천억원 중 현재까지 제주항공 400억원, 진에어 300억원 등 총 1천260억원을 집행했지만 항공사의 최소 운영자금을 고려하면 이는 1∼2개월 더 버틸 수 있는 수준에 불과하다는 게 업계 안팎의 얘기다.

김유혁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현재의 비정상적인 운휴 상황을 고려하면 선제적이고 적극적인 유동성 공급을 통해 항공사의 자금 경색을 완화하는 데 초점을 맞춘 정부의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한 이스타항공의 경우 상황은 더 심각하다.

이스타항공은 이달 25일까지 모든 노선의 운항을 한달간 전면 중단한 데 이어 전체 직원의 18% 수준인 300명을 구조조정하기로 했다.

최근 지상조업 자회사인 이스타포트와 계약을 해지한 사실이 알려지며 일각에서는 '셧다운' 기간이 연장되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골든타임 놓칠라"…진도 안나가는 정부의 항공업계 지원책
업계 관계자는 "제주항공과의 기업결합심사가 완료돼야 이스타항공에도 자금이 투입될 수 있는 만큼 그전까지 최대한 버티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항공업계 추가 지원을 놓고 정부 내 견해차가 외부로 드러나자 국토부와 금융위 등 관계부처는 지난 10일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고 대응방안 등을 긴밀히 협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부의 추가 지원책이 나오려면 최소 일주일 이상은 더 걸릴 것으로 보여 골든타임을 놓치는 것 아니냐는 업계의 우려는 계속되고 있다.

방민진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매출은 급감하고 고정비용은 큰 항공사의 보유 현금 소진이 가속화해 인건비 조정으로 버티기에는 한계가 있다"며 "정부 지원이 논의되고 있으나 수요 타격이 장기화할 경우 모든 항공사를 구제하는 것이 가능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