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은 모든 생명이 깨어나는 때다.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모두가 조금 늦은 봄을 맞이하게 됐다. 개학을 앞둔 학생과 새로운 일을 준비하던 직장인들도 잠시 멈춰선 채 위기가 지나가길 기다리고 있다.가족과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삶의 풍경도 조금씩 바뀌고 있다. 건강과 음식에 대한 관심은 더 높아지고, 삶의 질에 대한 고민도 더 깊어졌다. 식품, 패션과 유통업계는 소비자들의 생활 패턴 변화에 맞춘 제품 개발과 마케팅에 나서고 있다.○더 건강한 먹거리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집밥’에 대한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가정간편식(HMR)과 디저트 등 외식을 대체하는 식품 시장은 코로나19를 계기로 더 크게 성장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간편식 중에서는 집에서 쉽게 만들기 어려운 국, 탕, 찌개 등에 소비가 집중되고 있다. 대상이 내놓은 프리미엄 간편 한식 브랜드 ‘종가반상’은 남도추어탕 사골김치찌개 사골우거지들깨탕 버섯들깨미역국 한우곰탕 등을 판매한다. 대표 제품인 남도추어탕은 국산 미꾸라지의 굵은 뼈를 제거하고 발라낸 살을 통째로 갈아 진한 된장에 끓여 만들었다. 100% 한우 뼈만 오랜 시간 고아낸 진한 한우곰탕도 인기다.호흡기를 통해 감염되는 바이러스를 예방하기 위해 좋은 물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농심의 생수 브랜드 ‘백산수’는 백두산에서 뽑아낸 물을 사용한다. 물과 반응하지 않는 특수 소재의 배관을 사용해 이물질이 전혀 유입되지 않는다는 게 회사의 설명이다.파리바게뜨는 프리미엄 베이커리 제품 라인인 ‘시그니처’를 통해 기존 스테디셀러인 생크림 케이크를 업그레이드했다. 기본이 되는 빵(시트)을 한 겹 더 쌓아올려 4단으로 하고, 우유 생크림과 딸기 콩포트를 얹었다.○코로나19 이후를 준비하는 백화점백화점과 호텔업계는 코로나19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업종 중 하나다. 업체별로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을 세우고 있다.롯데백화점은 스포츠용품과 건강 관리에 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커질 것으로 보고 이 분야에 집중할 계획이다. 오는 12일부터 26일까지 서울 소공동 본점에서는 국내 최초 글로벌 스포츠용품 브랜드 아머스포츠의 체험형 레저 팝업스토어(임시 매장)를 운영한다.신세계백화점은 세일품목이나 경품 등의 마케팅 정보 대신 ‘함께 나누는 명상비법’, ‘불안을 잠재우는 클래식’ 등의 내용을 담은 문자메시지를 고객들에게 전송하고 있다. 종합 라이프 스타일 콘텐츠로 소비자 접점을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집 안에서의 활동이 많아진 사람들의 성향을 고려해 직장인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마인드풀니스 명상법인 ‘하루 10분 명상 비법’을 소개하고 있다.호텔업계도 건강을 키워드로 한 패키지들을 내놓고 있다. 서울 마포에 있는 베스트웨스턴 서울가든호텔은 ‘건강한 봄맞이 패키지’ 3종을 선보였다. 멀리 여행을 가지도 못하고 외출 자체를 꺼리는 사람이 많은 요즘, 스파를 이용하며 건강을 챙길 수 있는 상품을 내놨다.○“삶의 질 높이자”삶의 질을 높여주는 서비스와 제품도 늘고 있다. 현대백화점그룹의 현대렌탈케어는 정수 기능이 뛰어난 자가관리 샤워용 정수 필터를 선보인다. 소비자가 직접 필터를 교체해 사용하는 제품이다. 3중 정수 필터 구조로 수돗물의 냄새와 유기물을 제거해준다. 또 비타민 겔 필터로 수돗물 속 잔류 염소를 정화하는 게 특징이다.면역력을 키우는 건강기능식품은 식품업계를 넘어 화장품업계에서도 화제다. 아모레퍼시픽은 이너뷰티 솔루션 브랜드 ‘바이탈뷰티’를 통해 장 건강 리듬을 찾아주는 유산균, 체지방과 콜레스테롤을 조절해주는 건강기능식품 등을 주력 상품으로 내놨다.외출이나 모임이 줄었어도 패션 아이템 등의 소비는 모바일 쇼핑과 홈쇼핑 등을 통해 여전히 활발하다. CJ오쇼핑이 최근 지춘희 디자이너와 손잡고 선보인 브랜드 ‘지스튜디오’는 지난달 22일 방송 시작 1시간 만에 30억원어치가 넘게 팔렸다. 기념일 등 각종 축하 선물이 많은 3월인 만큼 주얼리 브랜드도 신제품 출시에 나섰다. 골든듀는 다이아몬드를 활용해 다양한 스타일로 연출할 수 있는 컬렉션을 출시했다.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신세계백화점은 소비자들에게 마케팅 문자, 메시지를 보낸다. 그런데 최근 메시지, 문자가 과거와 달라졌다. ‘함께 나누는 명상 비법’, ‘불안을 잠재우는 추천 클래식’ 등의 내용을 보내준다. 세일 품목, 경품 등 마케팅 정보가 가득했던 과거 메시지와 완전히 다르다. 신세계백화점이 고객과 소통하는 방식에 변화를 준 것이다.신세계백화점은 종합 라이프 스타일 콘텐츠를 통해 소비자들과 접점을 늘리고 있다. 이벤트홀 대형 행사, 특가 상품 정보만을 가득 채워 전송했던 ‘스마트 메시지(문자를 통한 쇼핑 뉴스 제공)’를 고객들의 관심 사항을 반영해 정보를 제공하는 라이프 스타일 매거진 형태로 바꿨다.새롭게 개선된 신세계백화점 스마트 메시지는 고객들이 최근 한 달간 관심을 가진 내용을 반영해 점포별 추천 상품과 함께 ‘건강을 위한 추천 도서’, ‘불안을 잠재우는 클래식 음악’ 등을 소개한다.대표적으로 최근 집 안에서의 활동이 많아진 고객들의 성향을 고려해 직장인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마인드풀니스 명상법인 ‘하루 10분 명상 비법’을 소개했다. 짧게는 하루 5분에서 길게는 10분간 할 수 있는 마인드풀니스 명상법을 단계별로 세세히 알려줬다.일상생활 속 건강에 대한 관심이 급증한 고객 트렌드를 반영해 국내 최고 식품영양학 권위자인 유태종 교수가 쓴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오래 사는 생활실천법》을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7번 C장조 클래식과 함께 ‘이달의 릴랙싱 추천 콘텐츠’로 소개했다. 신세계는 한층 진화된 이번 스마트 메시지를 통해 한 달 최대 400만 건까지 발송하는 고객 소통 방법에 차별화를 꾀했다.신세계는 대형 테마행사 진행 시 발송하는 스마트 메시지도 각 시즌에 맞춰 백화점 내에서 즐길 수 있는 알짜 정보를 엄선해 제공할 계획이다. 예컨대 새학기 입학과 결혼을 준비하는 고객들을 대상으로 한 기프트 및 혼수 추천은 물론 관련 매거진 등을 소개한다. 가족단위 방문객이 많은 5월과 7, 8월 휴가철에는 포토존과 체험형 아카데미 강좌 등 색다른 콘텐츠를 담아 제공할 예정이다.신세계백화점은 소비자들과의 소통을 매우 중시한다. 2017년 3월 업계 최초로 인공지능(AI)을 접목한 모바일 앱을 통해 맞춤형 고객 마케팅을 시작했다. 같은 해 9월에는 업계의 대표 소통 수단이던 종이 DM(direct mail)을 없애고 콘텐츠 중심의 스마트 메시지를 강화했다. 이를 통해 친환경, 고객 맞춤형 마케팅에 나섰다.이성환 신세계백화점 영업전략담당 상무는 “고객 관심사를 적극 반영한 차별화된 서비스로 오프라인 쇼핑의 만족도가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
“외부에서 인재를 영입하겠다. 결재라인 없이 움직이는 프로젝트팀을 구성하게 해달라. 간섭하지 않을 것을 약속해달라.”대기업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요청이었다. 보고 없이 모든 의사결정을 하고 옷을 만들어 팔겠다니. 누가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른 채 신규 브랜드에 투자하라는 얘기였다.2018년 여름 오규식 LF 사장(현 부회장)은 트렌드 조사 업무를 맡고 있던 유재혁 연구개발(R&D)실 과장에게 이 일을 맡겼다. 1974년 반도패션으로 시작한 LF가 스트리트패션 브랜드 사업을 고민하던 시기였다. 기존 다른 브랜드 팀과 다르게 움직이는 조직이 필요했다. 오 사장은 마침 스트리트패션 브랜드에 관심이 많고 오랜 기간 트렌드를 조사해온 직원에게 팀장을 맡기는 모험을 했다.자율과 무간섭이 성공 비결유 팀장은 ‘자율성’을 약속받고 일을 시작했다. 건축, 사진, 패션 등 다양한 분야를 전공한 20대를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 찾아 다이렉트메시지(DM)를 보냈다. 네 명이 영입됐다. 브랜드명, 디자인, 기획, 생산, 판매도 LF 임원과 사장의 결재 없이 이뤄졌다. 오 사장은 “나는 그저 투자자이니 브랜드 대표가 마음대로 운영하라”며 유 팀장에게 힘을 실어줬다.그렇게 나온 브랜드가 던스트다. 고대 유럽어로 ‘무형의’ ‘형체가 없는’이라는 뜻이다. 유 팀장은 “이름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 자체가 옛날 방식이라서 던스트로 정했다”고 했다. 브랜드 콘셉트는 ‘밀레니얼 감성 캐주얼’로 잡았다.시장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지난해 2월 처음으로 30가지 옷을 내놨는데 무신사, 29CM 등은 화보를 보자마자 당장 입점하자고 요청했다. 유 팀장이 인스타그램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밀레니얼세대들과 호흡을 맞춰 내놓은 옷에 20대는 열광했다. 가격이 비싸지 않고 지금 트렌드에 딱 맞는 스타일, 너무 튀지 않는 디자인, 그런데 뭔가 미세하게 다른 색감 등이 1020 소비자를 사로잡았다.무엇보다 빠른 의사결정이 주효했다. 기성복은 신제품 주기가 길어 지금 당장 입을 트렌디한 옷을 내놓기 쉽지 않다. 던스트는 두 달에 한 번 신제품을 출시했다. 형광색을 많이 쓰고 커다랗게 영문을 넣는 등 튀는 스타일을 지향하는 기존 스트리트패션 브랜드와 던스트는 달랐다. 무난한 디자인을 기본으로 디테일에 변화를 줬다. BTS, 현아, 슈퍼M, 엑소, 위너, 마마무 등이 돈 주고 사서 입는 브랜드로 소문이 퍼지기도 했다.해외 바이어가 먼저 구입 요청던스트는 LF가 운영하는 모든 브랜드를 통틀어 지난해 가장 장사를 잘한 브랜드에 주는 올해의 브랜드상을 받았다. LF에서 목표를 20%나 초과 달성한 건 던스트가 유일했다. 아직 매출 규모가 크진 않지만 온라인 전용 브랜드로는 상당한 이익을 내고 있는 데다, 차세대 소비자인 밀레니얼세대를 겨냥해 성공적으로 시장에 안착한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보통 신생 캐주얼 브랜드는 첫해 매출 5억원을 넘기기 어렵다. 던스트는 지난해 수십억원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봄과 가을에 열리는 서울패션위크에서는 해외 바이어들이 던스트를 먼저 찾았다. “옷을 보고 싶다” “대량 구매가 가능하냐”는 등의 문의를 했다. W컨셉은 미국 온라인몰에서 던스트를 팔겠다고 했고, 일본 중국 대만에서 온 바이어들도 옷을 사가기 시작했다. 보통 바이어들은 옷 한 종류에 2~3장씩 샘플로 사가는데, 중국 바이어들은 1000장씩 구매하기도 했다. 던스트는 중국 티몰글로벌이 단독 브랜드관을 열어줄 정도로 ‘핫한’ 브랜드가 됐다.파리 핵심 상권에도 진출던스트의 가장 큰 성과는 ‘패션의 본고장’ 프랑스 파리 진출이다. 지난해 가을 열린 서울패션위크에서 던스트 옷을 보고 간 파리 로미오쇼룸 바이어로부터 올초 연락이 왔다. 로미오쇼룸은 마레지구에 있는 파리 최대 규모 편집숍으로 인기 브랜드들만 입점하는 곳이다.바빠진 던스트 팀은 1년 만에 다섯 명에서 열 명으로 팀원을 늘렸다. 이들은 연간 여섯 번의 컬렉션을 위해 두 달 안에 신제품 기획을 끝내고 모든 팀원이 샘플을 입어본 뒤 수정을 거친다. 월별, 주별로 트렌드를 분석하고 ‘나는 무슨 옷을 입고 싶은가’ ‘요즘 스무 살은 어떤 스타일을 선호하나’ 등을 끊임없이 고민한다. 마치 개인 사업처럼 적극적으로 즐겁게 일할 수 있는 건 모두 자율성 덕분이다.유 팀장은 “밀레니얼세대들이 지금 당장 입고 싶은 옷을 내놓는 것, 대중과 소통하는 브랜드로 던스트를 키우는 게 목표”라고 했다.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