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노동시장 유연성과 안정성을 높이려면 노사가 임금체계를 근속연수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직무 위주로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대기업 61% 여전히 연공서열…30년 근로자 임금, 신입사원의 4배"
한국경제연구원은 3일 이상희 한국산업기술대 교수에게 의뢰한 ‘주요국의 노동시장 유연·안정성 국제 비교 및 시사점’ 보고서에서 덴마크, 네덜란드, 스웨덴 등 3개국의 사례와 한국 상황을 비교해 이같이 주장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3개국은 모두 경제 위기와 높은 실업률을 극복하기 위해 노동의 유연성을 높이면서도 안정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노동 유연화 과정에서 실업 보상(종전소득의 약 70~90%를 보장하는 실업급여) 등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고, 협력적인 노사 관계를 만든 것이 대표적이다.

보고서는 한국의 노동시장은 ‘대기업·정규직·유노조’ 부문과 ‘중소기업·비정규직·무노조’ 부문으로 양분된 특수한 구조를 갖고 있다고 진단했다. 두 집단 간 노동 안정성과 임금 등에서 양극화가 심각하다는 지적이다. 대기업·정규직·유노조 부문의 근속연수는 13.7년으로 중소기업·비정규직·무노조 부문(2.3년)에 비해 6배 가까이 길고, 월평균 임금은 각각 424만원과 152만원으로 2.8배 차이가 나는 등 격차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연공서열에 따른 보상 체계도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안정성을 해치는 요소라고 지적했다. 한국의 근속 30년 이상 근로자 임금은 1년 미만 근로자 임금의 4.39배에 달했다. 덴마크(1.44배), 네덜란드(1.65배) 등 유럽연합(EU) 주요국과 비교해 격차가 컸다.

대기업과 중소·중견기업 간 양극화도 심하다. 100인 미만 기업에서는 호봉제 적용 기업이 15.8%에 불과했지만 300인 이상 대기업은 60.9%에 달했다. 이런 구조가 양극화를 심화하고 임금 공정성에 문제를 제기하게 만드는 원인이라고 보고서는 분석했다. 이 교수는 “직무급 임금체계 도입을 위해 정부와 노사 양측이 사회적 책임을 기반으로 심도 있게 검토할 시기가 왔다”고 말했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