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 뭉칫돈, 골프장 회원권으로…'10년 만에 최고 호황'
서울 용산구에 사는 자영업자 권성율 씨(42)는 요즘 골프장 회원권 시세창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말 약 2억6000만원에 매입해 10개월 만에 1억원이 넘는 차익을 남기고 판 경기 용인시의 신원CC 시세가 이후에도 계속 오름세를 보이고 있어서다. 이달 중순 4억원을 돌파한 이래 현재 4억4000만원에 호가가 형성돼 있다. 지난 10월 대비 17.3%가량 뛰었다. 권씨는 “그간 골프도 많이 쳤기 때문에 괜찮은 투자였다고 생각해 처분했다”며 “투자할 대안도 마땅치 않은데 지금이라도 다시 사야 하는 건 아닌지 고민 중”이라고 털어놨다.

골프장 회원권 시장에 모처럼 온기가 돌고 있다. 10여 년간 지속된 골프장 구조조정 여파로 양질의 회원권 공급이 줄어든 상황. 이런 가운데 정부의 부동산 안정화 정책과 저금리에 따른 대체투자 수요 증가, 부동산 개발 재료 등이 겹치면서 부유층들의 여윳돈이 집중적으로 흘러들고 있다는 분석이다.

골프장 회원권 품귀현상
시중 뭉칫돈, 골프장 회원권으로…'10년 만에 최고 호황'
30일 골프장 회원권 전문 거래소인 에이스회원권에 따르면 이 회사 회원권 종합지수인 ‘에이스피(ACEPI)’는 연초 761에서 이날 835로 74포인트 올랐다. 상승률이 10%다. 이는 올 한 해 서울 평균 땅값 상승률(3.78%)의 세 배에 육박한다. 에이스피가 800선을 넘은 건 2013년 이후 6년 만이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거의 전 가격대 회원권 가격이 고루 상승했다. ‘초고가 인기 회원권’으로 통하는 경기 광주의 이스트밸리는 연초 7억7000만원에서 9억2000만원으로 19.4%, 용인의 남부CC는 7억4000만원에서 8억2000만원으로 10.8% 뛰었다.

가장 높은 상승률을 보인 ‘빅3’ 골프장 회원권은 파인크리크, 신원, 파인밸리(개인)로 집계됐다. 경기 안성의 27홀 골프장 파인크리크는 올초 4600만원에서 7700만원으로 3100만원(67.4%)이나 올랐다. 용인의 신원CC는 2억7000만원에서 4억4000만원으로 63% 급등했다. 안성의 파인밸리(18홀)도 1850만원에서 3000만원으로 62.2% 뛰었다. 지난해 충남 천안의 마론뉴데이가 43.3%로 상승률 1위를 차지한 것에 비하면 20%포인트 이상 높다.

이현균 에이스회원권거래소 애널리스트(본부장)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회원권 시장은 저가 반발 매수 및 시세 차익 영향으로 급등락을 보이며 불안정한 모습을 반복했다”며 “지금은 초고가 위주 상승세의 온기가 고가와 저가까지 확산되는 등 10년 만에 황금기가 찾아온 분위기”라고 평가했다. 이어 “상반기 반짝 오른 뒤 하반기로 갈수록 꺾이는 ‘전강후약’도 올해는 없었다”고 덧붙였다. 지역별로는 제주권만 연초 대비 제자리걸음인 가운데 중부권, 영남권, 호남권이 모두 오름세를 보였다.

또 다른 회원권거래소 관계자는 “인기 상품인 무기명 회원권의 경우 매물 자체가 거의 없는 반면 수요는 꾸준히 늘어 호가가 폭등한 상태”라며 “회원권이 사실상 품귀현상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대체투자 인기에 부동산 호재 ‘겹경사’

회원권 시장에 모처럼 햇볕이 든 건 수급 영향이 가장 크다는 분석이다. 최근 10년간 골프장 구조조정이 지속되면서 60곳 안팎의 회원제 골프장이 문을 닫거나 대중제(퍼블릭)로 전환했다. 이 과정에서 줄잡아 4만여 개의 회원권이 사라졌다. 여기에 이미 오를 대로 오른 아파트와 토지 등 일반 부동산 상품의 대체 투자로 골프장 회원권 수요가 늘어나면서 몸값이 뛰었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굵직한 ‘부동산 투자’도 한몫했다. 신원CC는 SK하이닉스반도체가 2022년께 용인에 120조원을 투자해 반도체 클러스터를 구축하겠다고 발표한 덕을 톡톡히 봤다. 용인시가 추진 중인 플랫폼시티 건설사업이 정부의 3기 신도시 계획에 포함된 것도 효자 노릇을 했다. 올해 상승률 50%(5위)에 달하는 은화삼은 물론 태광(47.1%), 블루원용인(43.7%), 화산(37%) 등 30% 넘게 상승한 골프장들이 용인권에 속한 배경이다. 덕분에 용인은 ‘골프8학군’ 입지가 한층 강화됐다.

파인크리크와 파인밸리는 지분 매집 경쟁이 가격 상승을 부채질해 눈길을 끈다. 두 골프장은 2013년 동양그룹이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거치면서 퍼블릭으로 전환됐지만 회원들의 입회 보증금이 출자전환돼 회원권이 주식 형태로 거래되고 있다. 골프장 운영 등을 둘러싸고 지분 매집 경쟁이 펼쳐지면서 가격이 급등했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이현균 본부장은 “수급 불균형과 대형 부동산 개발 호재가 맞물려 상승 폭이 예년을 크게 웃돌았다”며 “대형 돌발 악재만 없으면 내년에도 골프장 회원권 시장은 올해처럼 상승 분위기를 이어갈 것”으로 내다봤다.

김병근 기자 bk1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