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4000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냈던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지난해 3조9000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민간 기업이라면 경영 부실에 대한 책임을 물었을 텐데 정부가 매긴 경영평가 점수는 A등급이었다. 이 덕분에 임원 일곱 명이 성과급 3억6300만원을 받았다. 2017년 1조4400억원 흑자에서 작년 1조1700억원 적자로 돌아선 한국전력공사 역시 경영평가에서 작년과 같은 B등급을 받았다. 임원 여섯 명이 받은 성과급은 3억2700만원에 이르렀다.

이들 공기업이 경영 실적 악화에도 성과급 잔치를 벌일 수 있었던 이유는 정부가 공공기관 경영평가 때 재무관리 비중을 확 낮췄기 때문이다. 2017년도 경영평가 때만 해도 재무예산관리 평가가 100점 만점에 10점이었다. 하지만 2018년도 평가에선 인적자원관리 지표와 통합되며 5점으로 줄었다. 부채 감축 평가(1.5점)는 아예 제외됐다. 건보공단과 한전은 각각 현 정부 들어 ‘문재인 케어’, ‘탈원전 정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실적이 나빠졌다. “정부 정책 코드를 맞추느라 생긴 적자를 면책해주겠다는 메시지”라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정부는 대신 일자리 창출(7점), 균등한 기회와 사회통합(4점), 안전 및 환경(3점) 등의 지표를 새로 만들었다. 적자를 많이 내도 고용을 늘리고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많이 전환하면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게 됐다. 건보공단은 작년 3조원이 넘는 적자를 내면서도 1108명을 신규 채용하고 비정규직 636명을 정규직으로 바꿨다.

‘경영평가를 통한 공기업 길들이기’는 현 집권 여당이 야당 시절 줄기차게 비판했던 점이라는 데서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정부 때 수자원공사는 4대강 사업을 수행하느라 부채가 급증했다. 그럼에도 당시 기획재정부는 수자원공사에 2008~2011년 4년간 내내 A등급을 줬다.

정부는 내년에 시행할 2019년도 경영평가에선 일자리 창출이 포함된 ‘사회적 가치’ 배점을 22점에서 24점으로 올리기로 했다. 공공기관의 정책 코드 맞추기가 더 심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건보공단은 민간 위탁업체 콜센터 직원 1500여 명을 내부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서민준 기자 moran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