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계 6대 요구항목' 정부 입장 전달
농업단체장들 "그동안 농업 희생으로 경제발전…제대로 된 대책 내야"
기재차관 "개도국 특혜 유지여부 이달 결정…공익형직불제 도입"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은 24일 세계무역기구(WTO) 개발도상국 지위 유지 여부를 "이달 중 최종 결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 차관은 이날 오전 서울 나라키움 여의도빌딩에서 농민단체와 간담회를 한 자리에서 "농민들이 우려하는 WTO 개도국 특혜와 관련해서는 아직 정부 입장이 확정되지 않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날 간담회는 회의 공개 여부 등을 놓고 파행을 겪은 지 이틀만에 다시 열린 것이다.

농민단체들은 정부에 ▲ 총리를 위원장으로 한 특별위원회 설치 ▲ 농업 예산을 전체 국가 예산의 4~5%로 증액 ▲ 취약 계층 농수산물 쿠폰 지급으로 수요 확대 ▲ 공익형 직불제 도입 ▲ 1조원 농어촌상생협력기금 부족분 정부 출연 ▲ 한국농수산대 정원 확대 등 6대 항목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공익형 직불제 조속한 도입을 위해 적극 나서겠다는 방침을 포함해 농업계 요구에 대한 개괄적인 입장을 밝혔다.
기재차관 "개도국 특혜 유지여부 이달 결정…공익형직불제 도입"
김 차관은 우선 농업예산·상생 기금 등 재정 지원 요구에 대해 "정부는 내년 농업예산 규모를 최근 10년 내 가장 높은 증가율(4.4%·6천억원)로 확대한 15조3천억원으로 편성했다"며 "지방에 이양한 부분(8천억원)까지 포함하면 증가율이 10%에 육박하는 수준(16조1천억원)으로 대폭 늘어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도 재정 여건을 봐가며 농업경쟁력 제고에 중점을 두고 계속 지원을 강화해나가겠다"며 "농어촌 상생 기금도 기업의 출연이 활성화되도록 인센티브 확대, 현물출연 등 필요한 조치를 적극 추진하겠다"고 덧붙였다.

김 차관은 공익형 직불제 도입에 대해서는 "이 제도는 WTO에서 규제하는 보조금에 해당하지 않아 안정적으로 지급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필요한 만큼, 정부도 공익형 직불금 제도의 조속한 도입을 위해 적극 노력하겠다"며 "정부는 공익형 직불제 전환을 전제로 내년 예산안에 관련 예산을 8천억원 늘린 2조2천억원으로 편성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만 (직불금) 제도를 구체적으로 설계하려면 경작하는 논의 크기, 논·밭 작물 간의 비율 등 조율해야 할 어려운 부분이 남아있다"며 "서로 조금씩 양보해서 생산량에 연동하지 않는 공익형 직불금 체제로 전환할 수 있도록 단체장들이 지도력을 발휘해달라"고 당부했다.

김 차관은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농업 분야 민관합동 특별위원회 구성에 대해선 "제가 약속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지만, 정부 내에서 검토해 보고 농업계의 의견을 수시로 듣고 수렴할 방안을 모색해보겠다"고 밝혔다.

이밖에 국내 농산물 수요 확대, 농민소득과 경영안정을 위한 각종 대책, 청년·후계농 육성 등의 요구에 대해선 "정부도 방향성에 깊이 공감한다"며 "채소가격 안정제, 청년 영농정착지원금 등 이미 시행 중인 제도도 있는 만큼, 이를 더욱 내실 있게 추진해가면서 여타 요구사항들은 사업 타당성 검토 등을 거쳐 충실히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김 차관은 "정부는 농업이 갖는 중요성과 농민의 노고를 알기에 이번 WTO 개도국 특혜 관련 결정을 앞두고 그 어느 때보다도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며 "농업계 분들의 의견도 최대한 들어보고 향후 농정에 충분히 감안하겠다"고 말했다.

김 차관은 종합 국정감사 참석차 국회로 이동하기 전 기자들과 만나 "지난번 간담회는 파행돼 마무리하지 못했는데, 오늘은 참석자 중에서 '돌아가야겠다'는 의견이 나오면서도 계속 간담회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크게 진전했다고 본다"라고 회의 분위기를 전했다.

공익형 직불제 도입이 충분한 대안이 될 것으로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공익형 직불제는 농업계의 건의사항 중 하나로, 이 하나가 대표적인 총괄 대응 프로그램은 아니다"라며 "28일부터 예결위가 본격적으로 예산안 심의에 들어가는 만큼, 그 과정에 여야와 농민의 입장이 논의될 거라고 본다"고 답했다.

이날 간담회에서 농업 단체장들은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책을 요구하며 때때로 격앙된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김홍길 축산관련단체협의회장은 "참 긴장되고 살이 떨린다"고 참석 소감을 전하면서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는 게 '먹고 살 만하다', '잘 산다' 이런 뜻일 수 있지만, 그간 우리 경제가 어떤 산업을 희생양으로 삼아 성장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회장은 "농업이 그동안 그렇게 희생했으니 이번 한 번만은 제대로 된 대책을 내놔야 한다"며 "대책이 없으면 회의 결과는 수용하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