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른손으로 비비고, 왼손으로 비비고" 최양락과 심형래가 오른손으로 젓가락질을 하며 면을 비비다가 왼손으로 젓가락을 옮긴다. 심형래는 "두손으로 비벼도 되잖아"라고 말한다. 채반에 담긴 면발을 물로 헹구는 장면이 나오면서 "여름엔 입맛나는 팔도비빔면"이라는 노래가 흘러나온다.

1984년에 출시된 팔도비빔면의 첫 TV 광고(CF)다. 국물 라면 일색이던 한국 라면시장에 팔도비빔면은 최초의 비빔라면이었다. 첫 비빔라면이 생소했던 탓에 뜨거운 상태에서 비벼먹거나 일반 라면처럼 조리해 먹는 소비자들도 많았다. TV 광고에 비벼먹는 장면을 강조한 이유다.

◆프로슈머 만나 여름 잊은 팔도비빔면

광고에 나온 것처럼 팔도비빔면의 탄생은 여름과 맞닿아있다. 여름철 집에서 삶아먹던 비빔국수를 라면으로 계량한 제품이다. 출시 초기엔 여름에만 판매했지만, 판매가 꾸준히 이어지면서 1990년대 후반부터 상시 판매했다.

팔도비빔면은 출시 이후 비빔면 시장에서 1위를 지켜왔다. 지난해까지 12억개 제품을 팔아 약 56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올해 35살을 맞아 몸집을 더 불리고 있다. 올해 8월 중순을 기준으로 2019년 판매량만 1억개를 돌파했다.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1억개 이상 판매고를 이어가고 있다. 80년대 팔도비빔면을 즐겼던 소비자 뿐 아니라 최근 10대~20대를 주소비층으로 끌어들인 결과다.

팔도비빔면의 연간 판매량이 1억개를 넘은 이유로는 소비자와의 소통이 비결로 꼽힌다. 제품 생산·판매 등에 직접 개입하는 '프로슈머'의 요구를 적극 반영했다.

팔도가 처음 프로슈머를 주목한 때는 2017년 4월 만우절이었다. 당시 팔도비빔면 공식 블로그에는 "팔도 만능 비빔장을 출시했다"는 글이 올라왔다. 팔도가 던진 농담에 소비자들은 "정말 만능 비빔장이 있으면 좋겠다. 출시해달라"고 했다.

팔도는 소비자들의 요구에 발빠르게 대응했다. 그 해 5월 '만능 비빔장'을 추가로 증정하는 팔도비빔면을 한정판으로 내놓았다. 해당 비빔면은 40일 만에 한정판 1000만개가 모두 팔려나갔다.

팔도는 소비자들의 수요가 이어질 것이라고 판단, 9월에 정식 비빔장을 출시했다. 팔도비빔면에 들어가는 액상스프에 마늘 홍고추와 사과즙 양파를 넣은 제품이다. 만능장을 이용해 비빔국수나 쫄면 등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구현했다. 삼겹살 참치 골뱅이 등과 곁들이면 좋다는 문구도 내세웠다. 기발한 상품에 소비자들도 화답했다. 비빔장은 출시 2년 만에 1000만개 판매를 돌파했다.
올해 한정판으로 인기를 끌었던 '괄도네넴띤'. (사진 = 팔도)
올해 한정판으로 인기를 끌었던 '괄도네넴띤'. (사진 = 팔도)
◆한정판 '괄도네넴띤' 인기에 팔도비빔면 판매도 덩달아 '증가'

비빔장에서 소비자들의 수요를 확인한 팔도비빔면은 밀레니얼 세대(1981~1996년생)를 주목했다.

올해 2월에 나온 '괄도네넴띤'도 밀레니얼 세대를 겨냥해 만든 제품이다. 오래된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벗고,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해 밀레니얼 세대들이 즐기는 용어를 사용했다. 제품명에 야민정음을 적용한 이유다. 야민정음은 한글 자음과 모음을 모양이 비슷한 단어로 바꾸는 것이다. 대표적인 단어로 댕댕이(멍멍이), 띵언(명언)이 있으며, 주로 90년대생들이 즐기는 언어유희다.

또 마라탕 등 매운맛 열풍을 감안해 괄도네넴띤을 기존 비빔면보다 매운 맛을 5배 강화했다. 액상스프에 할라페뇨 분말과 홍고추를 넣었다. 비빔면 봉지 표지도 '뉴트로' 이미지를 구현했다. 뉴트로는 새로움(new)과 복고(retro)를 합친 신조어로, 직접 겪어보지 않은 과거를 요즘 방식으로 즐긴다는 의미다. 기존의 봉지에 사용했던 파란색 대신 흰색을 사용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2개월 만에 한정 수량인 1000만개가 팔려나갔다.

밀레니얼 세대는 괄도네넴띤에 "재밌다" "신선하다"는 반응을 보였고, 구매 인증샷 열풍도 나타났다. 인스타그램에서만 #괄도네넴띤 해시태그를 단 글만 1만3000여건 이상 올라왔다.

괄도네넴띤을 맛본 밀레니얼 세대들은 기존의 비빔면 맛도 궁금해했다. 괄도네넴띤이 얼마나 더 매운 지 직접 확인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났다. 팔도 비빔면의 판매도 덩달아 늘어난 배경이다. 2월 괄도네넴띤이 나온 뒤 3월 팔도비빔면의 월 판매량은 1000만개를 돌파했다. 한정판 제품만 팔려나간 게 아니라 기존 제품의 판매도 늘어나는 동반 효과도 거둔 셈이다. 이에 팔도는 지난 7월 괄도네넴띤을 팔도 비빔면 매운맛으로 정식 출시했다.
초기 팔도비빔면 제품. (사진 = 팔도)
초기 팔도비빔면 제품. (사진 = 팔도)
◆한정판 선보여 비수기 극복…'여름=팔도비빔면의 계절'은 옛말

지난해와 올해 팔도비빔면이 1억개 판매를 돌파한 비결로는 비수기 극복도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계절별 한정판을 내놓으면서 '여름용 라면'이라는 한계도 넘었다.

지난해 3월 꽃 모양 어묵을 넣은 봄꽃 비빔면을 한정판으로 출시했다. 약 100개 분량의 꽃 모양 건더기 스프를 넣어 '보는 재미'는 물론 말랑한 식감까지 더했다. 국물과 함께 즐길 수 있는 겨울철 비빔면도 만들었다. 지난해 12월엔 우동 국물 스프를 별첨한 '윈터에디션'을 시즌 한정 제품으로 선보였다. 비빔면이 다소 매울 수 있는 소비자들이 국물과 함께 즐길 수 있도록 구현한 것이다.

또 고객 의견을 반영해 중량을 늘린 '팔도 비빔면 1.2'를 선보이기도 했다. 1.2는 중량을 20%를 늘렸다는 뜻이다. 혼자서 팔도비빔면을 먹으면 한 개는 부족하고, 두 개는 많다는 고객 의견을 반영했다. 면과 액상스프 양은 늘렸지만 가격은 동일하게 유지했다. 한정 출시된 1000만개는 50일 만에 모두 팔렸다. 추가 판매 요청이 들어오면서 1000만개를 추가로 생산했고 이 물량도 모두 소진했다.

이처럼 팔도비빔면은 프로슈머를 적극 공략하면서 연간 판매량 1억개 브랜드가 됐다. 여기에 최근 매운맛 제품도 정식으로 내놓고, 비빔장까지 1000만개 판매를 이어가면서 메가브랜드가 됐다.

회사 측은 액상스프 노하우도 1위 브랜드로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이라고 설명했다. 개발 당시 전국에 유명한 맛집의 비빔냉면과 비빔국수 등을 연구, 매콤 새콤 달콤한 소스를 만들었다. 한국야쿠르트가 보유한 발효공학과 미생물공학이 원재료를 그대로 갈아 액상스프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됐다.

윤인균 팔도 마케팅 담당자는 "30년 이상 팔도 비빔면이 사랑받을 수 있었던 것은 액상스프 노하우와 지속적인 품질 개선을 통해 소비자의 입맛을 사로잡기 위해 노력한 결과"라며 "앞으로도 더 좋은 맛과 품질로 성원에 보답하겠다"고 밝혔다.

고은빛 한경닷컴 기자 silverligh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