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0.9% 인상 당시 근거 설명과는 대조…"경제 여건 고려" 추상적 입장만
'최저임금 2.9%↑' 근거 설명 없어 논란…"경영계에 물어보라"
최저임금위원회가 내년도 최저임금을 시간당 8천590원으로 의결한 근거를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아 논란이 일고 있다.

일각에서는 저임금 노동자의 생계가 걸린 최저임금을 객관적 자료를 근거로 한 충분한 심의 없이 여론 눈치 보기식으로 결정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최저임금을 심의·의결하는 사회적 대화 기구인 최저임금위원회는 지난 12일 내년도 최저임금 의결 직후 4쪽짜리 보도참고자료를 냈다.

내년도 최저임금 금액과 작년 대비 인상률, 최저임금 인상의 영향을 받는 노동자 수, 최저임금 의결 일지, 역대 최저임금 인상률 등을 담은 자료로, 기존 양식에 따른 것이었다.

최저임금위원회는 이 자료 외에 별도의 설명자료를 내지는 않았다.

이는 올해 적용한 최저임금(8천350원)을 의결했던 지난해 최저임금위원회와는 뚜렷이 대조됐다.

작년 7월 14일 최저임금 의결 직후 최저임금위원회는 최저임금 금액 등에 관한 자료와는 별도로 '위원장 브리핑 자료'라는 제목의 7쪽짜리 자료를 냈다.

이 자료에서 최저임금위원회는 올해 최저임금을 작년보다 10.9% 올린 8천350원으로 의결한 근거를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임금 인상 전망치 3.8%,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로 최저임금 인상 효과가 떨어지는 것을 고려한 보전분 1.0%, 노사 양측의 주장 등을 반영한 '협상 배려분' 1.2%, 소득분배 개선분 4.9% 등을 합해 최저임금 인상률 10.9%를 도출했다는 내용이었다.

최저임금위원회는 당시 소득분배 개선분 산출의 기준으로 중위임금 대신 평균임금을 적용했다는 점도 공개했다.

국내 임금 불평등이 심해 중위임금보다는 평균임금을 기준으로 하는 게 소득분배 개선을 위해 바람직하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당시 최저임금위원회가 제시한 최저임금 산출 근거는 최저임금법에 따른 것이다.

최저임금법 제4조 제1항은 최저임금 결정 기준으로 유사 근로자 임금, 노동 생산성, 소득분배율 등을 명시하고 있다.

지난해에도 최저임금이 정치적 논란의 한복판에 있었던 만큼, 최저임금위원회의 설명은 논란을 낳았다.

특히, 협상 배려분으로 1.2%를 반영한 것은 자의적이라는 지적이 제기됐고 최저임금위원회는 별도의 해명을 내놔야 했다.

이와는 달리, 올해 최저임금위원회는 내년도 최저임금 의결 직후 브리핑에서도 최저임금 산출 근거를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했다.

공익위원 간사인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는 내년도 최저임금 산출 근거에 관한 기자들의 질문에 "사용자 측에 요청하라"고 답했다.

내년도 최저임금이 표결을 통해 사용자안(案)을 채택한 결과인 만큼, 산출 근거도 사용자위원들이 설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익위원들이 사용자안의 구체적인 산출 근거도 파악하지 못한 채 사용자안과 근로자안을 표결에 부친 게 아니냐는 의심을 낳는 대목이다.
'최저임금 2.9%↑' 근거 설명 없어 논란…"경영계에 물어보라"
사용자위원들은 입장문에서 "2.87% 인상안을 제시한 것은 최근 2년간 30% 가까이 인상되고 중위임금 대비 60%를 넘어선 최저임금이 큰 폭으로 인상될 경우 초래할 각종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설명 외에는 최저임금법에 입각한 구체적인 설명을 내놓지 않았다.

박준식 최저임금위원장을 비롯한 공익위원들은 브리핑에서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률을 2.9%로 의결한 것은 어려운 경제 여건을 고려한 결과라는 추상적인 설명만 반복했다.

공익위원인 임승순 상임위원은 "지금 사용자 측에서는 IMF(국제통화기금) 위기 때는 금융 파트가 어려웠는데 지금은 실물 경제가 어렵다는 말을 하고 있다"며 "최근 중국과 미국의 무역 마찰과 일본의 그런 부분(무역 보복 등)이 경제를 어렵게 한다는 얘기가 많고 그런 부분이 많이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는 법에 입각한 설명으로 보기는 어렵다.

최저임금법은 최저임금 결정 기준으로 국내외 경제 여건을 명시하고 있지 않다.

최저임금 결정 기준에 경제 상황을 포함하는 최저임금법 개정안은 아직 국회에 계류 중이다.

박준식 위원장도 "위원장으로서 굳이 의미를 부여한다면 최근 어려운 경제 여건에 대한 정직한 성찰의 결과"라고 밝혔을 뿐, 내년도 최저임금의 구체적인 산출 기준을 설명하지는 않았다.

일각에서는 최저임금위원회가 우선적으로 '정직한 성찰'을 해야 할 대상은 저임금 노동자의 생계라는 지적이 나온다.

경제 상황을 먼저 성찰하는 것은 기획재정부와 같은 부처가 할 일이라는 지적이다.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 과정에서 저임금 노동자의 생계 문제가 도외시된 것은 아니다.

한 공익위원은 사용자위원들이 최저임금 삭감 주장을 굽히지 않자 노동자가 임금 인상 기대에 따라 생활 계획을 세운다는 점을 강조하고 최저임금 삭감은 노동자의 삶에 '충격'을 줄 수 있다고 질타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에서 저임금 노동자의 생계 문제가 충분히 고려되지 않았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공익위원들은 지난 10일 제11차 전원회의에서 노사 양측으로부터 내년도 최저임금 1차 수정안을 제출받은 지 하루 만인 제12차 전원회의에서 표결에 부칠 최종안을 요구했고 다음 날 새벽 이를 표결에 부쳐 사용자의 손을 들어줬다.
'최저임금 2.9%↑' 근거 설명 없어 논란…"경영계에 물어보라"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