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정부가 ‘반도체 특화 클러스터’ 후보지로 경기 용인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자 클러스터와 상관없는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가 발칵 뒤집혔다. SK하이닉스가 용인 클러스터에 입주하게 되면 삼성전자가 인재를 유치할 때 중요한 요소로 내세우는 ‘입지 우위’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경기도의 끝’이자 강원도로 가는 관문인 경기 이천과 서울에서 2시간30분 거리인 충북 청주에 사업장을 두고 있는 SK하이닉스와 달리 삼성전자는 상대적으로 서울에서 가까운 경기 기흥, 화성, 평택에 사업장이 있다. SK하이닉스 이천 본사에 근무하는 직원 중 상당수가 서울 또는 분당에서 1시간 이상씩 걸려 출퇴근하는 반면 삼성전자 직원들은 동탄, 광교, 고덕 등 인근에 ‘터’를 잡고 산다. 반도체업계 고위관계자는 “서울과의 거리가 버스로 한 정거장만 가까워도 그 회사로 이직한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인재를 유치하는 데 ‘입지’의 중요성은 절대적”이라고 말했다.

해외 반도체업계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이어 글로벌 3위 D램 업체인 마이크론은 미국 버지니아주 매너서스에 본사를 두고 있다. 워싱턴DC까지의 거리는 40㎞에 불과하다. 주요 대학 박사뿐만 아니라 글로벌 반도체 석학들을 적극적으로 영입하기 위해 대도시와 최대한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았다.

미국과 캐나다, 멕시코의 238개 도시가 뛰어든 아마존 제2 본사 유치전에서 지난해 11월 최종 승자가 된 곳은 미국 뉴욕주 롱아일랜드시티와 버지니아주 크리스털시티였다. 파격적인 조건을 내건 경쟁 도시와 비교해 인센티브 규모는 크지 않았다. 아마존은 “경제적 인센티브보다 중요한 기준은 최고의 인재를 확보할 수 있느냐였다”고 선택 이유를 설명했다.

2017년 초부터 신공장 부지를 물색해온 SK하이닉스도 수도권 이외의 지역은 검토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작년 말부터 용인과 기존의 사업장이 있는 이천과 청주, 충남 천안, 경북 구미 등 5개 시가 성명을 내고 축제까지 열면서 유치 경쟁이 과열되기 시작했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기업의 이해관계보다 정치적 논리가 더 크게 작용하는 상황에서 이번 결정으로 탈락한 도시들의 반발이 거세질까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