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회계학회가 23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연 ‘원칙 중심 회계기준과 회계’ 세미나에서 김종일 가톨릭대 교수가 토론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김상원 금융감독원 국장, 김 교수, 손영채 금융위원회 과장, 한종수 이화여대 교수, 이동근 한영회계법인 부대표, 이태홍 두산 부장. /신경훈 기자 hkshin@hankyung.com
한국회계학회가 23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연 ‘원칙 중심 회계기준과 회계’ 세미나에서 김종일 가톨릭대 교수가 토론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김상원 금융감독원 국장, 김 교수, 손영채 금융위원회 과장, 한종수 이화여대 교수, 이동근 한영회계법인 부대표, 이태홍 두산 부장. /신경훈 기자 hkshin@hankyung.com
“기업과 회계법인에만 모든 책임을 돌릴 순 없습니다. 회계감독 체계를 국제회계기준(IFRS)에 맞게 바꾸지 않으면 ‘제2, 제3의 삼성바이오 사태’가 나올 겁니다.”

회계학자들이 현행 원칙 중심 IFRS에 맞지 않는 사후 제재 위주의 감독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금융당국으로부터 검찰 고발 등 초강경 제재를 받은 뒤 기업과 감사인(회계법인) 사이에 ‘회계 공포’가 퍼지면서 기업의 재량과 판단을 존중하는 IFRS의 취지가 퇴색되고 있다는 우려에서다.

“한국 회계 전체의 위기”

한국회계학회는 23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원칙 중심 회계기준하에서의 회계감독 문제점과 개선 방안’을 주제로 특별세미나를 열었다. 조성표 한국회계학회장(경북대 교수)은 인사말을 통해 “2011년 IFRS를 도입한 뒤 올해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라는 대형 사건이 터졌다”며 “IFRS를 도입해 국가 신인도가 높아졌다고 생각했지만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했다”고 진단했다. 그는 “기업과 감사인은 스스로 회계처리를 제대로 했는지 불안에 떨고 있다”고 말했다.

IFRS는 기존 ‘규정 중심’ 대신 ‘원칙 중심’의 회계처리 기준을 채택하고 있다. 규정 중심이란 세세하게 모든 회계처리를 정해진 규정대로 처리해야 하는 방식이다. 반면 원칙 중심이란 회계기준에선 기본 원칙만 정하고 기업이 이 원칙에 기초해 자신들의 경제적 실질을 가장 잘 반영할 수 있는 회계정책을 결정, 실행하는 것이다.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는 지난 7월 삼성바이오로직스에 ‘고의적 공시 누락’ 혐의로 검찰 고발 등 중징계를 내린 데 이어 이달 14일엔 ‘고의적 분식’을 했다며 사상 최대 과징금인 80억원과 추가 검찰 고발, 대표이사 해임 등을 의결했다.

이영한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주제발표에서 현행 IFRS 체계에서 나타날 수 있는 여러 문제점 가운데 감리 불확실성을 지적했다. 이 교수는 “당국이 특정 사안과 관련해 강력한 규제 동기를 가지면 사후 결과를 중심으로 원칙 중심 회계기준을 적용할 가능성이 있어 기업과 감사인에 우려 요소가 된다”고 했다.

“IFRS에 맞게 감독 바꿔야”

회계학자들은 기업의 재량적 판단을 존중하는 IFRS 체계 아래서는 사후 징계가 아니라 사전 예방 방식의 감독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전규안 숭실대 회계학과 교수는 주제발표에서 “회계처리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감독 방향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금융감독원의 기업 회계감리에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김종일 가톨릭대 경영학부 교수는 토론자로 나서 “기업이 이해할 수 있는, 원칙있는 감리가 필요하다”며 “감독지침은 최소한의 수준으로 해야 원칙 중심 회계가 성숙해진다”고 말했다. 한종수 이화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IFRS 체계에서 감독의 목적이 기업을 처벌하는 것인지, 아니면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행사에 참여한 김학수 금융위 증선위원은 “사후 결과 중심의 일방적인 제재에 비판이 많은데 과정을 중시하는 방식으로 업무를 바꾸려고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수정/김병근 기자 agatha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