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진단 EGR 밸브 열림, BMW 이미 제기
-연소 3요소, 과학적 사실에서 벗어나지 않아

무언가 불에 타는 현상을 '연소(燃燒)'라고 한다. 연소는 일반적인 화재처럼 불꽃이 일어나는 '불꽃연소'와 숯불처럼 연기없이 조용히 타는 '작열연소'로 구분한다. 그런데 둘 모두 세 가지 조건이 반드시 맞아야 발생한다는 게 과학적 사실이다. 첫째는 타는 재료(가연물)가 있어야 하고, 여기에 불을 붙이는 점화원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산소 공급원이 결합돼야 연소현상이 일어난다. 셋 가운데 어느 하나만 없어도 연소되지 않는다. 따라서 최근 논란이 된 BMW 디젤 엔진 화재도 이들 세 가지 조건을 찾아내는 데 집중하고 있다.

지난 8월 BMW는 일단 연소(화재)현상이 나타난다는 문제를 인정하고 자체 조사에서 EGR(배기가스재순환장치) 쿨러의 이상 가능성을 지목했고, 곧바로 자발적 리콜을 발표했다. 이후 요한 에벤비클러 BMW 품질부문 수석부사장이 한국으로 날아와 기술적 설명과 함께 EGR 쿨러를 직접적인 화재원인으로 꼽았다.

BMW의 조사는 연소의 3요소를 찾는 것에 치중했다. 이 가운데 1요소인 가연물(타는 재료)은 EGR 냉각통로 균열로 누수된 침전물을 지목했다. 2요소인 점화원(불꽃)은 뜨거운 배기가스를 의심했는데, 그러자면 EGR 밸브가 열린 상태여야 한다고 규정했다. 또 산소 공급원은 고속주행 때 흡기다기관을 통해 들어오는 외부 공기를 주목했다.

물론 이들 조건이 모두 충족된다고 해서 차에서 화재가 발생하는 게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했다. 예를 들어 밸브가 열리고 고속주행이 많아도 주행거리가 짧아 축적된 침전물이 적으면 불이 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런 이유로 BMW는 긴급안전조치를 통해 해당 엔진을 얹은 차종에서 1요소인 가연물을 내시경으로 확인, 침전물이 있을 경우 제거했다. 어떤 이유에서든 위험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한 행위였다. 이후 실질적인 리콜은 EGR 모듈 교체로 준비했다.
[하이빔]BMW 화재 원인, 해석 제각각

그런데 최근 한국교통안전공단이 BMW 화재관련 중간조사결과를 발표하자 화재원인 진단을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정부 조사단은 EGR 밸브가 열려 고속주행을 하다가 배출가스 후처리시스템을 작동시키는 조건 아래 침전물에서 불꽃(점화원)이 생긴다고 밝혔다. 그리고 점화된 불꽃은 흡기매니폴드의 공기(산소공급원)와 만나 화재로 연결된다는 설명을 내놨다. 그러자 BMW는 이미 발표한 화재원인 진단과 정부의 원인 파악이 궁극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하이빔]BMW 화재 원인, 해석 제각각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정밀하게 보면 정부 조사결과와 BMW의 진단은 동일하다고 해석한다. 양측 모두 연소의 3요소를 EGR 내에서 찾았고, 1요소인 가연물(침전물)이 화재 시작점이라는 사실이 같아서다. 물론 2요소인 점화원(불꽃)에선 EGR 밸브를 지목한 정부 조사단과 바이패스 밸브를 주시한 BMW의 의견이 조금 엇갈리지만 둘 모두 발화의 조건일 뿐 가연물이 없으면 화재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같다. 그리고 점화가 지속되기 위한 산소공급원을 흡기다기관의 외부 공기 유입으로 본 것도 동일하다.

따라서 양측의 원인 진단이 같은 만큼 또 다른 전문가들은 양측의 조사 결과에 큰 차이는 없다고 강조한다. 게다가 BMW는 EGR모듈 교체는 물론 리콜 외에 추가 조치로 흡기다기관 교체까지 제안한 상태여서 정부 조사는 BMW 진단을 확인한 데 의의가 있을 뿐이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원인 진단을 놓고 한바탕 시끄러웠던 배경은 어디까지나 여론을 의식한 해석 차이 때문으로 보인다. 정부 입장에선 조사단이 새로운 원인을 발견한 것처럼 보일수록 자신들의 활동에 긍정적 지지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봤을 것이다. 하지만 '연소의 3요소'라는 과학적 사실에 기반하면 정부와 BMW의 진단은 연소 원리라는 테두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확인한 원인을 서둘러 개선하는 일이다. 과학적 사실은 배제한 채 무분별하게 이뤄지는 논쟁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BMW가 리콜을 얼마나 이행했는지 그리고 계획대로 잘 진행하고 있는지를 감시하고 점검하는 일이 정부로선 중요하다. 물론 이와 동시에 정확한 원인 조사는 계속해야 한다. 그리고 조사는 연소의 3요소라는 과학적 근거에 기반해야 한다. 비판여론을 의식하기보다 실질적인 리콜 개선 속도를 높일 수 있는 채찍이 우선이라는 뜻이다.

권용주 기자 soo4195@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