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닷컴과 인터뷰하는 리우 하이 비고고 설립자(사진=김산하 기자)
한경닷컴과 인터뷰하는 리우 하이 비고고 설립자(사진=김산하 기자)
"올 초 가상화폐(암호화페) 시장에서는 축제가 끝났습니다. 누가 피해를 봤을까요. 개인투자자들입니다. 기관투자자들은 고작 3개월 만에 차익 실현을 하면서 프로젝트들의 성장에는 기여하지 않는 경우가 많죠. 소수의 승자와 다수의 패자가 명확한 구조입니다. 개인투자자들이 떠나면서 암호화폐 시장은 망가지고 있어요."

지난 6일 서울 인터컨티넨탈 파르나스 호텔에서 한경닷컴과 만난 암호화폐 거래소 비고고(Bgogo)의 리우 하이 설립자(사진)는 지금의 암호화폐 시장을 심각한 상황으로 진단했다. 어떻게 해야 암호화폐 시장의 불합리한 구조를 개혁할 수 있을지 물었다.

- 아직 업계가 많이 혼란스럽죠.

"지금 이 업계는 ‘혼돈’그 자체에요. 여전히 관련 규제가 정립되지 않은 나라들이 많습니다. 암호화폐 공개(ICO) 준비 과정은 기업공개(IPO)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간단하죠. 다만 부작용이 있다고 해서 암호화폐를 없앨 수는 없어요. 혹자는 블록체인에 코인(암호화폐)은 필요 없다고 하지만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코인이 없다면 블록체인도 없어요. 블록체인은 탈중앙화된 시스템입니다. 채굴자들에 의해 유지되죠. 채굴자들이 왜 블록체인 유지를 위해 무료 봉사해야 하나요? 보상이 필요하고, 그게 코인이죠."

- 토큰을 발행한 거래소를 설립했는데요.

"만약 거래소가 없다면 코인에는 가치가 부여될 수 없어요. 거래소는 토큰 이코노미의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물론 모든 코인이 가치를 지닐 수는 없죠. 현존 ICO 프로젝트의 99%는 가치가 없어요. 장담컨대 대부분의 프로젝트들은 사라질 겁니다. 성공률은 1% 미만이겠죠. 하지만 그 성공한 1%의 프로젝트들이 모든 사람의 삶의 방식을 바꿀 거에요."

- 프로젝트의 99%는 가치가 없다고요?

"잔혹한 말이지만 진실입니다. 코인의 가치는 시장에 의해 정해져요. 시장이 바로 거래소입니다. 그런데 대부분 거래소가 심각한 문제를 지니고 있어요. 바로 '비대칭적 권한'을 지닌다는 점이요."

-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일반 개인 유저들은 힘이 없어요. 거래소에 어떠한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습니다. 거래소가 모든 권한을 갖고 있죠. 거래소 내부자들은 모든 정보를 쥐고 있어요. 이를 활용해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구조입니다. 몇몇 거래소의 경우 상장 대가로 돈을 받는 사례도 있어요."

-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ICO는 여러 단계를 거치며 토큰 판매 가격이 달라져요. 단계가 올라갈수록 가격도 뛰죠. 처음에는 극소수 인원에게 토큰을 대폭 할인해 판매하고 이후 프라이빗세일, 퍼블릭세일, 정식 상장을 하면서 가격이 올라갑니다. 거래소들은 보통 초기 단계에 투자하거나 저렴한 가격에 토큰을 갖게 됩니다. 따라서 상장이 되면 내부자들은 손쉽게 이득을 챙깁니다.상장 뒤 일시적 가격 폭등이 일어나고 이후 폭락해요. 소위 펌프 & 덤프(Pump and Dump)가 일어나는 거죠."

- 설득력 있네요.

"그렇다면 이 비용을 지불하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바로 개인투자자들입니다. 개인투자자들은 가장 비싼 가격에 토큰을 구매해요. 돈을 잃을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그래서 점점 개인투자자들은 암호화폐 시장을 떠나고, 시장은 망가지죠. 우리는 현재의 거래소 비즈니스 모델에 의문을 품었습니다. '지속가능한 모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 근본적 문제군요.

"암호화폐 투자 벤처캐피털(크립토 VC)들의 락업(Lock up: 재판매 금지 기간)이 고작 몇 개월밖에 안 된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크립토 VC 상당수는 상장 이후 몇 달 안에 보유한 토큰을 처분하는 경우가 많아요. 이건 좋은 게 아니죠. 원래 VC 투자는 초기 투자 기회를 가질 수 있었던 만큼 해당 사업이 가치를 만들어낼 때까지 함께 도와주며 상생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그 대가로 투자한 돈은 제로(0)가 되거나, 아니면 1000배가 되거나 둘 중 하나죠."

- 의미심장한 말이네요, 제로 또는 1000배.

"하지만 지금의 크립토 VC 상당수는 전혀 그렇게 하지 않죠. 투자한 토큰을 수 개월 내에 팔아치우니까요. 몇 개월 새 어떻게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겠습니까. 그건 그냥 투기에요. 투자가 아닙니다. 투자는 '실제 가치를 만들어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굳이 우리 같은 VC들이나 기관투자자가 필요하지 않겠죠. 최소한 수 년 이상의 락업이 필요합니다. 제가 전에 몸 담았던 VC 펀드에서는 12년의 락업을 설정했어요. 2012년 투자한 '중국의 우버' 디디추싱이 엄청나게 성장했지만 아직 투자를 회수하지 못하죠(웃음)."

- 락업을 연장해야 할까요.

"만약 이러한 투자가 성공하면 엄청난 돈을 벌 수 있어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제로 아니면 1000배입니다. VC 업계에서는 2~3배의 수익률이라는 건 의미가 없어요. 가치 창출에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았는데 3개월 이내에 2배 수익을 내고 매각한다? 그건 VC가 아니란 거죠. 당신이 ICO 프로젝트를 운영한다고 가정해봅시다. 아마 그러한 VC들에 진절머리가 나겠죠. 3개월 만에 엑시트(exit)하면 어떠한 도움도 안 됩니다. 그러면 그들이 축제를 벌이는 비용은 누가 대나요? 개인투자자들이죠. VC 투자 소식에 개인투자자들도 참여하지만 돌아오는 건 몇 개월 뒤의 가격 하락뿐입니다."

- 결국 피해는 개인투자자들에게 돌아가는 거군요.

"올 초 축제는 끝났고 피해는 개인투자자들이 떠안았죠. 지금의 거래소 모델을 뒤엎고 싶었어요. 그래서 거래소에서 통용되는 '비고고 토큰'을 만들고 이를 통해 토큰 보유자들이 거래소 운영에도 개입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또한 모든 기관투자자들이 얼마만큼 토큰을 보유했는지 투명하게 공개했어요. 만약 상위권 보유자들이 조금이라도 보유량의 변동을 보인다면 곧바로 유저들에게 공개됩니다. 우리는 이렇게 크립토 생태계를 변화시켜나갈 생각이에요."

-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

"이미 주식 시장에는 이러한 규제가 있잖아요. 일정 수량 이상 주식 보유자나 법인이 조금만 변동이 생겨도 바로 공시해야 하는 것처럼요. 저는 뭔가 특별한 걸 만들어낸 게 아니라 이미 있는 개념을 빌려왔을 뿐입니다. "

- 비고고는 거래 수수료로 수익을 내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만.

"물론 우리는 자선단체가 아닙니다. 엄연한 이익집단이죠. 하지만 아마존을 생각해보세요. 아마존은 나스닥 상장 후 7년간 단 한 푼의 순이익도 달성하지 못했습니다. 유저들에게 더 낮은 가격에 상품을 제공하기 위해 매출액을 사용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발생한 수익으로 유저들에게 혜택을 돌려주며 몸집을 키웠죠. 위대한 회사를 만들고 싶다면 그런 각오를 해야 합니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텐센트 알리바바 모두 마찬가지에요. 산업이 자라나는 초기 시장부터 수익에만 목숨을 걸어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

- 초기 시장에서는 수익이 우선순위가 아니다?

"비고고는 인터넷 정신을 따르고 있습니다. 유저들에게 혜택을 주자는 것이죠. 아까 언급한 디디추싱은 아직 흑자를 낸 적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6조원 이상의 가치로 평가되죠.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질까요? 인터넷 회사들은 성장 가능한 이상 순이익을 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꼭 기억하세요. 스타트업은 성장이 멈추기 전까지 수익을 내서는 안 돼요. 더 많은 유저들을 끌어들여야 하니까요. 모든 매출은 다시 새로운 유저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사용돼야 합니다."

- 지금의 암호화폐 시장과는 차이가 있다는 거군요.

"기존 거래소들은 고작 걸음마 단계인 이 산업에서 수수료로 막대한 돈을 벌고 있지만 유저들에게 혜택을 주며 생태계의 '파이'를 키우는 데는 별로 관심이 없어보여요. 이러한 구조를 타파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두 가지의 원칙을 갖고 있습니다. 첫째, 개인투자자와 소액투자자들을 보호하자. 둘째, 기관투자자들에게는 수년간의 락업을 부여하자. "

- 개인과 기관투자자들의 락업이 달라야 한다는 건가요?

"벤처 투자의 정신에 걸맞게 운영하자는 거죠. 기관투자자는 개인투자자보다 정보나 자금력에서 우위가 있는 만큼 책임을 져야 합니다. 기관투자자에 락업이 부여되면 시장에는 건전한 유동성이 형성되겠죠. 바로 유저들에 의해 시장이 굴러가는 겁니다. 이것이 비고고가 바꾸려고 하는 업계의 규칙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산업 자체가 사라질 거예요. 우리의 가치를 퍼뜨리고 산업을 바꾸고 싶어요. 의미 있는 액션이라고 생각합니다."

- 근본적 질문을 할게요. 당신은 왜 블록체인 산업에 투자합니까.

"제가 투자해왔던 인터넷 기업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바꿨습니다. 하지만 이제 모바일 인터넷이 급성장하는 시대는 끝나가고 있어요. VC들은 항상 '다음은 무엇일까'라고 묻는 사람들입니다. 저희는 블록체인이라고 생각했죠. 지난 한 해 이 업계는 말도 안 될 정도로 크게 성장했지만 여전히 블록체인은 극초반의 시장입니다."

- 아직 블록체인은 이른 시장이라고 보는군요.

"비유하자면 유아기라고 봐요. 우리는 블록체인이 고작 앞으로 1~2년 사이에 모든 사람의 삶의 방식을 바꿀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블록체인 관련 서비스나 암호화폐의 실제 사용률은 전세계 인구의 0.1%도 되지 않을 겁니다. 프라이빗과 퍼블릭을 막론하고 모든 블록체인 관련 서비스, 지갑, 암호화폐, 거래소 등을 모두 합쳐서요."

- 그럼에도 블록체인 투자를 시작한 이유는 뭔가요.

"투자는 결국 타이밍이니까요. 너무 이른 시기에 투자하면 대부분 실패하겠죠. 너무 늦게 투자하면 기회는 이미 떠난 뒤구요. 만약 당신이 무엇인가에 투자하려 한다면 정확하게 해당 산업이 '떠오르는 타이밍'에 투자해야 합니다. 지금이 딱 알맞은 타이밍이라고 생각했어요. 물론 우리는 가치를 보고 투자하고 있고, 극소수 프로젝트만이 투자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 블록체인 상용화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보는군요.

"중국에는 11월11일 '광군절'(솔로의 날)이 있어요. 하루 동안 초당 20만건의 거래가 이뤄집니다. 이러한 규모를 지금의 퍼블릭 블록체인이 처리하는 건 불가능하죠. 처리 속도와 규모를 끌어올리려면 핵심 개념인 탈중앙화를 희생해야 하는 딜레마에 직면합니다. 제 결론은 블록체인 상용화를 위한 '인프라'가 미비한 상태라는 것입니다. 스마트폰이 없었다면 앱 생태계도 없었겠죠? 그래서 우리는 블록체인의 인프라가 되는 거래소를 인큐베이팅하기로 했습니다. '비고고'는 그 결과물인 셈이죠."

◆ 리우 하이 비고고 설립자는

암호화폐 거래소 비고고와 IMO 벤처 펀드를 설립했다. 서울대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삼성전자 모바일 부서의 엔지니어이자 프로덕트 매니저로 일하며 한국과도 인연을 맺었다. 이후 미국 매사추세스공대(MIT) 슬론비즈니스스쿨에서 MBA 학위를 취득한 뒤 GSR벤처스의 파트너로 VC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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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산하 한경닷컴 객원기자 san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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