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8년 대통령 직속으로 규제개혁위원회를 꾸렸다. 규제 심사와 정비를 종합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였다. 자의에 의한 것은 아니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외환위기에 빠진 한국을 지원하면서 “불투명한 규제 환경을 개선하라”고 권고한 데 따른 것이었다. 비록 등 떠밀려 시작한 것이었지만 김대중 정부는 의욕적으로 규제개혁을 밀어붙였다. 규제의 50%를 폐지한다는 목표로 부처별로 ‘일정 비율 이상 등록 규제를 줄이라’는 의무를 할당했다.

20년째 '규제개혁' 외쳤지만…규제 1만개→1만4000개 오히려 늘었다
이때 대표적으로 풀린 규제가 화물차운송업의 진입 장벽이다. 1998년 이 분야의 면허제를 등록제로 바꾸자 9만6000명 수준이던 종사자가 2003년 17만9000명으로 증가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규제 완화가 고용 창출에 기여한 셈이다. 규제정보포털에 따르면 1998년 1만185개에 이르던 전체 등록 규제도 2002년 7724개까지 줄었다.

2003년 출범한 노무현 정부도 기조를 이어갔다. 총리 주재로 규제개혁장관회의를 새로 마련하고 민관 합동 규제개혁 기획단을 설치했다. 지금 기준으로도 강도가 센 ‘규제총량제’를 추진하기도 했다. 이 제도는 규제 상한선을 둬 그 이상의 규제를 하지 못하게 한 것이다. 하지만 일선 부처의 비협조 등으로 도입 선언 2년 만에 폐기됐다.

보수 정권에서도 상황은 비슷하게 흘러갔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는 규제를 각각 ‘전봇대’와 ‘손톱 밑 가시’에 비유하며 강도 높은 개혁을 예고했지만 규제는 늘어만 갔다. 2009년 1만2905개이던 규제는 이명박 정부 마지막 해인 2012년 1만4889개까지 늘었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3~2015년에도 1만4000개 아래로 떨어지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도 지난해 말 혁신성장을 내세우면서부터 규제개혁의 고삐를 죄고 있다. 정부는 올 1월 액화천연가스(LNG) 선박, 유전자 치료 등 38개 분야에 포괄적인 네거티브 규제(일부 금지 사항만 적시하고 원칙적으로 규제를 푸는 것)를 도입하기로 했다. 융합 신기술에 대해서는 일시적으로 규제를 면제하는 ‘규제 샌드박스’도 도입됐다.

하지만 규제개혁이 제대로 성과를 내려면 좀 더 과감한 시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홍성일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정책팀장은 “규제 하나를 만들면 기존 규제 두 개를 줄이는 식의 ‘규제비용 총량제’를 도입하는 등 강한 개혁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서민준 기자 moran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