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앞줄 왼쪽)과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22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인사하고 있다. 장 실장은 이날 김 부총리와의 갈등설에 대한 질문에 “정부가 지향하는 경제의 틀은 동일하지만 정책 선택에서 의견 차이도 분명히 있었다”고 말했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올해 정상적인 취업자 수 증가 폭을 전년 대비 10만~15만 명으로 제시했다. 지난해 증가 폭인 31만 명은 물론 올해 정부 목표치인 18만 명 달성도 어렵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장 실장은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의 견해차도 인정해 ‘경제 투톱’ 간 갈등설이 더욱 증폭되고 있다.장 실장은 22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연말에 고용상황이 회복될지 묻는 말에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드는 과정에서 과거처럼 매달 취업자 수가 20만~30만 명 늘어나는 것은 기대할 수 없다”고 인구 구조적 이유를 재차 들었다. ‘올해 정부 취업자 수 증가 목표치인 18만 명 달성은 가능하냐’는 질문에는 “10만~15만 명이 정상적인 취업자 수 증가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15만 명 달성에 실패할 경우 정치적 책임을 질지에 대해선 “정치적 책임이 아니라 정책적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며 “연말까지 모든 정책수단을 동원해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답변했다. 지난 19일 ‘고용 쇼크’와 관련해 열린 긴급 당·정·청회의에서 김 부총리가 “고용상황은 이른 시간 안에 회복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한 반면 장 실장은 “연말에는 고용상황이 개선될 것이니 정부를 믿고 기다려달라”고 주문했다.김 부총리와의 갈등설에 대해선 “정부가 지향하는 경제의 틀은 같지만 그 틀을 갖고 국민을 더 잘살게 하는 정책을 선택하는 데서는 의견 차가 나오는 일도 분명히 있었다”고 견해차를 인정했다. ‘경제사령탑이 도대체 누구냐’는 질의에 대해서는 “정책실장을 맡은 이후 장관회의를 단 한 차례도 주재해 본 적이 없다”며 “지금 경제사령탑은 당연히 김 부총리”라고 답했다.김 부총리도 이날 예결위에 출석해 고용 쇼크 원인의 하나로 소득주도성장의 부작용을 다시 한번 언급했다. 김 부총리는 “소득주도성장만을 강조하는 분들은 혁신성장이 소득주도성장 정책으로 해결할 사회 구조적 문제를 심화시킨다고 본다”고 말했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위기의 원인이라고 보느냐’는 질문에는 “업종이나 계층별로 최저임금 영향이 일부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이낙연 국무총리는 이날 또 김 부총리를 겨냥한 듯한 취지의 발언을 했다. 이 총리는 소득주도 성장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질문에 “정부에서 책임지는 사람이 야당 의원들과 똑같은 말을 하고 다녔을 때 시장에 어떤 사인을 줄 것인가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
청와대가 최저임금 인상 등을 동력으로 삼은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놓고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장하성 정책실장 간 불거진 ‘갈등설’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22일 브리핑을 통해 “(두 분이) 빛 샐 틈 없이 소통하고 있다”며 둘의 갈등설을 거듭 일축했다. 이어 “지금은 그야말로 숨소리만 달라도 견해차가 있다고 기사화되는 상황”이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전날 청와대 고위관계자가 ‘김&장 갈등설’에 대한 이례적인 비공식 브리핑을 했음에도 논란이 잦아들지 않고 있어서다. 이 관계자는 “정부정책을 끌고 가는 투톱으로서 목적지는 같다고 본다”며 엇박자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김 부총리는 같은 날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른 시간 안에 (고용을) 회복하기가 쉽지 않다”며 “근로시간 단축 문제를 신축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근로시간 단축이 고용 창출 효과가 있고, 올 연말을 기점으로 고용이 회복세로 돌아설 것이란 장 실장의 전망과 배치되는 발언이다.청와대는 ‘김&장’의 갈등설이 제기될 때마다 ‘건강한 토론 과정’이라며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여왔다. 하지만 고용지표가 악화되고 문재인 대통령과 집권 여당의 지지율까지 동반 추락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두 사람의 이견으로 정책 혼선이 빚어지고 국정 운영의 추동력까지 잃을 수 있다”고 말했다.더 큰 문제는 정통 관료와 학자라는 출신 배경에서 경제관까지 이질적인 두 사람의 갈등이 쉽게 봉합될 것 같지 않다는 데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청와대 인사에서 장하성-홍장표(경제수석)-김현철(경제보좌관)로 짜인 ‘경제참모 3인방’ 중 홍 전 수석을 뽑아내고, 정통관료 출신인 윤종원 경제수석을 앉혔다. ‘경제 투톱’의 소통 강화를 최우선 고려했을 것이란 해석이 많았다.하지만 윤 수석 발탁 후에도 ‘투톱’의 갈등이 잦아들기는커녕 더 거세지고 있다. 장 실장이 소득주도성장이라는 대의명분에 집착해 현장과 정책효과의 괴리에 눈을 감고 있다는 비판도 여당 내에서 제기되고 있다. 민주당의 한 중진의원은 “학자 출신인 장 실장의 정책유연성이 떨어진다”며 “경제참모가 대통령께 현장의 목소리를 전해야지 정책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면 안 된다”고 쓴소리를 했다.mrhand@hankyung.com
“코아작업(콘크리트에 구멍을 뚫는 작업) 한 명.”지난 21일 새벽 5시 비가 내리던 서울 남구로역 앞. 길을 가득 메운 건설근로자들이 인력사무소장 곁으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소장이 파란색 등산복을 입은 30대 중국인 남성을 가리키자 50~60대 건설근로자들이 허탈한 표정으로 물러섰다. 휴대폰가게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던 박모씨(55)는 “20년 넘게 막일을 했지만 비 오는 날 이렇게 사람이 많은 건 처음”이라며 혀를 내둘렀다.날이 차츰 밝아왔지만 진을 치고 기다리는 사람 수는 좀체 줄지 않았다. 지난달 건설노동을 시작했다는 최성호 씨(60)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새벽 4시부터 인력사무소를 돌았지만 허탕을 친 것. 최씨는 “도봉구 방학동에서 운영하던 분식집을 폐업하고 막일을 시작했는데 젊은 사람들까지 인력시장으로 몰려와 나처럼 기술 없고 나이든 사람은 일하기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편의점으로 들어간 최씨는 1000원짜리 컵라면을 들었다 놓기를 반복하다 빈손으로 지하철역으로 향했다.◆일용직에 뛰어든 자영업자·아르바이트생폐업한 자영업자와 해고당한 아르바이트생이 일거리를 찾아 새벽 인력시장으로 몰리고 있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근로제 시행 등의 여파가 컸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남구로역 5번 출구 앞에 있는 한 인력사무소 소장은 “식당을 운영하다 접었다는 사람, 주유소 아르바이트하다가 잘렸다는 사람들이 몰려오는 통에 작년 8월과 비교하면 일하겠다는 사람이 족히 30%는 늘었다”고 말했다.남구로 인력시장 일거리의 90%는 콘크리트 해체 작업 등 단순 건설노동이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중국인 불법체류자 등 외국인 근로자가 대다수였다. 하지만 근래 들어 생계가 막막해져 무작정 찾아오는 내국인이 급증했다. 이날 만난 최창현 씨(31)가 그런 사례다. “중국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가게가 문을 닫아 지난 5월부터 여기 나온다”고 했다. 통계청이 지난달 발표한 ‘5월 경제활동인구조사 청년층 부가조사’에 따르면 배달 건설 등 단순노무직에 종사하는 졸업·중퇴 청년 취업자는 전체(330만1000명)의 7.7%에 달했다. 관련 통계가 작성된 2004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벌이가 확 줄어 ‘투잡’을 한다는 자영업자도 있었다. 서울 대림동 인근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김모씨(48)는 “장사가 안되고 인건비도 부담이라 주중 이틀은 가게 문을 닫고 일하러 나온다”며 “월급이 줄어든 아르바이트생에겐 미안하지만 이렇게라도 안 하면 폐업해야 할 판이라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일자리를 잃은 경제적 약자층이 ‘하루 벌이’를 위해 인력시장에 몰리지만 임시·일용직조차 올 들어 매달 평균 20만 명 안팎 일자리가 감소하고 있다.◆노인·여성부터 먼저 밀려나같은 시간 경기 성남 인력시장은 비교적 한산했다. 성남 인력시장은 분당선 태평역부터 태평고개 사거리까지 120여 개의 인력사무소가 늘어선 거리를 말한다. 남구로역에 비해 서비스업 농업 등 업종이 다양한 편이지만 최근 무인화 바람이 불면서 활기를 잃고 있다.그나마 뜸하게 오는 인력사무소 승합차는 젊은 남성과 기술자만 태워갔다. 이모씨(67)도 이날 시설채소 농장에 가려고 대기했지만 빈손으로 돌아가야 했다. 이씨는 “원래 농장에 가는 일꾼 중 대부분은 50~60대 여성이었는데 요즘은 젊은 남자가 많이 간다”며 “인건비가 올라 일손이 부족해지니 힘 좋은 사람을 선호하는 것 같다”고 했다.이 같은 현상이 지속되면 노인빈곤 문제가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노동연구원 관계자는 “제조업 등 ‘좋은 일자리’에서 밀려나 단순노무직에 뛰어드는 중장년층이 늘면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낮은 노인과 여성부터 퇴출될 수 있다”고 했다. 이날 만난 근로자들은 하나같이 “갈수록 사정이 나빠진다”고 호소했다. 남구로역 인근에서 만난 한 노인은 “여름에 바짝 벌어서 겨울을 나야 하는데 생계가 막막하다”며 한숨을 쉬었다.구로=성수영/성남=조아란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