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에 다니는 박 과장(36)은 2년 전쯤 은행 창구에 들렀다가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를 개설했다. 세제 혜택을 주는 ‘만능 통장’이란 문구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은행 직원은 한 계좌로 예·적금, 펀드, 파생결합증권(ELS) 등에 두루 투자할 수 있는 통장이라고 했다. 순이익 200만원까지 비과세 혜택이 있다는 설명에 일단 1만원을 넣고 계좌를 텄다. 안 그래도 재테크를 제대로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때였다.

그동안 모아온 돈을 전부 ISA로 옮겨놓을까 잠시 고민했다가 이내 접었다. 세제 혜택을 받으려면 5년간 계좌에 돈을 묶어놔야 하는데 이 기간 200만원 이익이 생기더라도 비과세(이자소득세 15.4%) 효과는 크지 않았다. 5년 절세 효과는 30만8000원에 불과하다는 계산이 나왔다. 1년에 6만1600원을 아끼는 셈이었다. 박 과장은 “큰돈을 묶어놓기도 내키지 않고, 세 혜택도 쥐꼬리 수준이어서 ISA 계좌는 그냥 없는 셈 치고 있다”고 말했다.

2016년 3월 ‘국민 통장’으로 출범한 ISA의 현실이다. 출시 6개월 만에 가입자가 240만 명을 넘어섰지만 초반 인기는 싸늘하게 식었다. 박 과장처럼 ‘무늬만 ISA’ 계좌가 대부분이다. 전체 ISA 계좌의 절반 이상이 잔액 1만원 이하짜리다.
만기 꽉 채워도 6만원 節稅… '쥐꼬리 혜택'에 적금만 못한 ISA
계좌 평균 228만원 불과

18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ISA 가입자는 지난 5월 말 기준 209만7000여 명으로 되레 줄었다. 전체 가입금액은 4조원대에 머물고 있다. 계좌당 평균 가입금액은 228만원에 불과하다. 연간 2000만원, 5년간 최대 1억원까지 납입할 수 있다는 납입 한도가 무색한 수준이다.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이 지난해 국정감사 때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체 ISA 계좌의 51%가 잔액 1만원 이하, 21%가 1만~10만원 계좌였다.

금융위원회는 올해 초 ISA를 새 단장했다. 5년 만기를 채워야 돈을 뺄 수 있다는 제한을 없애고, 올해부턴 중도인출을 허용했다. 서민형 ISA의 비과세 한도는 400만원으로 늘렸다. 하지만 투자자의 마음을 돌리진 못했다. 일반형뿐만 아니라 세제 혜택을 늘려준 서민형 상품에서도 가입자가 이탈했다.

ISA는 정부가 야심 차게 내놓은 절세 상품이다. 예금, 펀드, ELS 등을 하나의 계좌로 투자하면서 다양한 상품의 이익과 손실을 합치는 통산 개념을 도입했다. 200만원 초과 순이익에 대해선 9.9%로 분리과세 혜택을 준다.

우리보다 2년 앞서 2014년 ISA를 도입한 일본을 벤치마크했지만 성패는 크게 갈렸다. 일본식 ISA인 ‘NISA’는 지난해 9월 말 기준 총 계좌수 1100만 개, 투자금액 11조8716억엔 규모로 성장하며 국민 자산 증식의 토대를 형성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NISA는 계좌 내 금융투자상품에서 얻은 모든 순이익에 대해 비과세 혜택을 준다. 가입 대상에도 제한이 없다.

한국 ISA는 ‘국민 통장’을 표방하면서도 은퇴자나 주부 청소년 등은 가입 대상에서 배제했다. ISA 계좌를 개설할 수 있는 대상은 소득이 있는 근로소득자나 사업소득자와 농어민에 한정돼 있다. 송홍선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 ISA는 가입 대상에 제한도 있고 비과세 상품이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세제 혜택이 불충분하다”고 지적했다.

사실상 ‘예금통장’ 전락

가입자들도 당초 취지와 달리 ISA 계좌에서 운용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 금융회사에 편입상품을 직접 지시하는 신탁형 ISA 계좌의 경우 자금 대부분이 예·적금에 쏠려 있다. 신탁형 ISA 자금의 72.6%가 예·적금으로 운용되고 있다. 국내외 주식형펀드 비중은 2.3%에 불과하다. 전체 ISA 가입자 중 신탁형 ISA 가입자 비중은 89%에 달한다. 송 연구위원은 “ISA의 실효 수익률을 높이려면 단순히 저축을 늘린다는 차원을 넘어 자산관리를 강화한다는 차원으로 ISA 제도가 발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위원회는 도입 당시 올해 말까지로 정한 가입 기한을 연장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금융투자협회는 일반형 가입자도 비과세 한도를 400만원까지로 넓히고 서민형 가입자의 비과세 한도는 폐지해야 한다고 정부에 요청하고 있다. 협회 관계자는 “서민에 비해 비교적 소득이 높은 중산층과 고소득자도 많은 혜택을 누릴 수 있게 하는 데 대해 국회 일각에서 부정적인 의견도 있다”며 “ISA가 실패한 정책이라는 오명 속에 일몰되는 일을 방지하려면 제도를 전향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지혜 기자 loo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