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00대 기업 이사회 3천여 안건 중 반대 '5건'…재벌 '방패막이' 지적도
사외이사 유명무실 지적에 노동이사·스튜어드십코드 부상
'IMF 산물' 사외이사 20살 됐지만 여전히 '거수기' 논란
올해로 사외이사 제도가 도입된 지 20년이 됐지만 여전히 '거수기'라는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다.

대기업 이사회에서 사외이사가 반대표를 던지는 경우는 극소수이고 다수의 사외이사를 고위 관료나 법조인 출신이 차지해 오히려 재벌 총수를 위한 '방패막이'가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사외이사가 대주주와 경영진에 대한 견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가운데 '노동이사제'와 '스튜어드십코드'가 대안으로 떠올라 앞으로 어떤 영향을 줄지도 주목된다.

16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제출된 시가총액 상위 100대 상장사의 2017년 사업보고서를 보면 이들 기업이 이사회에 올린 3천178건의 안건 중 사외이사가 반대 의사를 표시한 안건은 5개에 불과했다.

한국전력이 2건이고 SK, SK이노베이션, 하나금융지주 각 1건이다.

한국전력은 사외이사 8명 중 1명이 '의료법인 한전의료재단 출연(안)'과 '사장 후보자 추천을 위한 임원추천위원회 구성 및 후보자 심사기준(안)'에 반대했다.

또 SK이노베이션은 사외이사 1명이 '베트남 중소기업 개발기금 출연' 건에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이들 안건은 해당 사외이사의 반대에도 '가결' 처리됐지만 SK와 하나금융지주는 사외이사들의 반대로 안건이 '부결' 처리됐다.

SK는 사외이사 4명 전원의 반대로 이사회에서 '이사회 권한 위임 및 관련 규정 개정의 건'이 부결됐고 하나금융지주는 '성과연동주식 보상제도 운영 기준 개정' 안건이 사외이사 8명의 반대로 제동이 걸렸다.
'IMF 산물' 사외이사 20살 됐지만 여전히 '거수기' 논란
사외이사들이 반대까지 하진 않았지만 '보완·보류'를 요구한 안건은 7건이었다.

NH투자증권과 BNK금융지주가 각 2건이고 네이버(NAVER), 한국전력, GS리테일이 1건씩이다.

100대 상장사 421명의 사외이사는 이사회 안건 3천178건 중 이들 12건을 제외한 3천166건(99.6%)은 모두 가결 처리했다.

100대 기업에서 지난 한해 이사회가 열린 횟수는 사당 평균 11.2회였다.

사외이사들은 한 달에 평균 한번 열린 이사회에 참석하고 '거마비' 등을 이유로 수천만원의 보수를 받았다.

지난해 삼성전기의 사외이사 보수는 1인당 1억원이었고 SK이노베이션 사외이사는 9천900만원이었다.

이처럼 사외이사들은 고액의 보수를 받지만 대주주·경영진 견제라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지는 끊임없이 의문시됐다.

사외이사는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겪고서 기업 경영의 투명성을 제고하고자 그 이듬해 도입한 제도로, 회사 경영을 직접 담당하는 이사 외에 외부 전문가들로 이사회를 구성해 대주주와 경영진의 전횡을 막는 것이 도입 취지였다.

그러나 취지와 달리 사외이사가 오히려 대주주·경영진 편에 서는 듯한 모습을 보여와 그동안 제도가 유명무실하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최근 근로자가 추천하는 노동이사제 도입 목소리가 커지는 것도 사외이사가 본연의 역할을 하지 못한 데서 비롯됐다.
'IMF 산물' 사외이사 20살 됐지만 여전히 '거수기' 논란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은 최근 '금융감독 혁신 과제'를 발표하면서 '근로자추천이사제'(노동이사제)에 대한 사회적 의견 수렴을 위해 공청회 개최를 추진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노동이사제 도입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하다.

국민연금이 이달 말 도입하기로 한 기관투자자의 의결권 행사 지침인 스튜어드십코드 역시 유명무실해진 사외이사제와 무관치 않다.

이 제도는 기관투자자가 직접 대주주와 경영진을 견제하는 것으로 사외이사의 활동이 그만큼 기대에 못 미친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재벌개혁위원장인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사외이사 제도가 이제 20년이 됐지만 유명무실한 상황"이라며 "대주주와 경영진 독단을 막기 위해 도입됐지만 재벌이 황제 경영을 하는 상황에서 작동이 안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영국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초로 스튜어드십코드를 도입했는데 이것도 이사회로는 견제가 안 되니 시장에서 기관투자자 역할을 키워 직접 견제하자는 취지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