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9일 대한항공 조현민 전 전무의 '물컵 갑질'로 불거진 항공업계의 부조리를 막기 위해 갑질 등 물의를 빚은 항공사에 대해 운수권 배분에서 불이익을 주는 방안 등을 담은 대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2014년 땅콩회항 이후에도 정부는 갑질 문화 추방을 위해 여러 대책을 내놓았으나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고, 이번 대책 중 일부는 의지만 있으면 진작 할 수 있었던 내용도 다수 포함돼 있어 얼마나 실효성아 있을지는 의문이다.

국토교통부는 29일 진에어 행정처분과 관련한 브리핑을 열어 항공사 관리감독 강화 방안과 항공산업 체질개선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우선 국토부는 갑질 등 사회적 논란을 일으킨 기업은 일정 기간 운수권 등을 배분할 때 불이익을 주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운수권은 항공사의 수익과 직결되는 중요 사안으로, 중요 노선 운수권을 배분할 때에는 항공사 간 치열한 경쟁이 벌어진다.

국토부는 신규 항공시장 개척 시 공익 기여도가 큰 회사에 우선 영업권을 보장하기 위해 국토부령인 '운수권 배분규칙'을 개정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항공권 못지않게 항공사 영업에 큰 영향을 주는 항공노선 슬롯(운항시간) 배분 주체를 서울지방항공청에서 국토부 본부로 이관하는 등 노선 배분 제도를 개선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대형 항공사가 선점한 슬롯을 자기 계열사에 교환·지원하는 사례를 엄격히 관리하고, 슬롯 회수의 법적 근거도 마련하기로 했다.

특히 이번과 같이 정부가 항공사의 외국인 불법 임원 등기를 모르고 지나가는 사태 재발을 막기 위해 항공사의 면허 기준 충족 여부 등을 과장급이 아닌 고위 공무원(실국장) 책임 하에 상시점검하도록 시스템도 재정비하기로 했다.

조씨는 외국인이면서 2010∼2016년 6년간이나 국가기간산업인 국적 항공사의 등기이사로 등재됐지만 국토부에서 이것이 문제가 된다는 사실을 안 직원은 거의 없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정부는 또 항공사에 대한 국토부의 '봐주기' 의혹을 차단하기 위해 안전사고나 법령 위반 사항이 생겼을 때 3개월 이내 사실 조사를 마치고 행정처분까지 6개월 이내 완료하도록 제도를 개선한다.

항공안전감독관이 특정 항공사 출신으로 편중되는 문제를 막기 위해 항공사 출신 비율이 한쪽으로 쏠리지 않도록 제도 개선에 나선다.

이와 함께 공정거래위원회, 고용노동부, 보건복지부도 항공업계의 갑질 관행을 뿌리 뽑기 위해 나섰다.

공정위는 지주회사와 계열사, 계열사 간의 불법 또는 부당한 거래행위에 대해 점검하고 적발 시 엄정한 법적 제재를 할 방침이다.

항공사가 계열사 등과의 거래 관계에서 일감 몰아주기 등의 부당행위가 없는지 철저히 조사하고 그룹 총수일가의 공정거래법 위반사항이 확인되면 형사고발할 예정이다.

복지부는 금융투자업계의 '큰손'인 국민연금을 통해 갑질하는 항공사에 철퇴를 날리겠다고 선언했다.

내달 스튜어드십 코드가 도입될 예정인데, 국민연금은 기업 및 주주의 가치를 훼손하는 항공사에 대해서는 주주권을 적극 행사하기로 했다.

또 공개서한 발송, 경영진(이사회) 면담 등을 통해 갑질 재발 방지 노력을 강구토록 요청할 예정이다.

국토부는 항공사 대표이사의 경력과 자격 기준을 신설해 오너보다는 전문 경영인이 회사를 운영하는 환경을 조성하기로 했다.

기업의 독립성을 강화하기 위해 총수 일가가 여러 항공사의 대표를 겸직 또는 경영간섭을 하는 것을 제한하는 방안도 검토한다.

현재 방송법은 대기업 집단의 방송 소유나 상호 겸영을 제한하고 있다.

국토부는 이와 함께 질이 떨어지는 총수일가가 항공사 경영에 함부로 관여하지 못하도록 항공사 등기임원 제한 요건에 기존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은 자' 외에 형법, 공정거래법, 조세범처벌법 등을 위반한 경우 등을 추가하기로 했다.

정부의 대책은 가능한 모든 수단을 총동원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앞서 2014년 땅콩회항 때에도 오너 가문의 갑질 문화와 항공산업의 구조적 모순이 지적되면서 다양한 대책이 나왔으나 실제 개선된 사안은 많지 않다.

특히 국토부는 땅콩회항 이후 대한항공에 권고한 개선과제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지만 대충 완료된 것으로 처리했다가 이번 물컵 갑질에서 이같은 내용이 드러나자 뒤늦게 담당자를 징계했다.

땅콩회항 사건과 관련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등에 대한 징계도 법원의 판단을 먼저 받아야 한다는 이유를 들며 조 전 부사장 등의 대법원 확정판결이 날 때까지 수년을 끌어오다 이번 사태가 터진 이후인 5월에야 늑장 처리했다.

국토부는 후속 행정처분을 미룬 담당자를 문책 조치했다.

이에 대해 국토부 관계자는 "항공산업 체질개선 종합 대책은 공정위, 복지부, 고용부 등 관계 부처와 공동으로 마련한 것으로, 관련 대책이 차질 없이 이행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