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는 시대 흐름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진화해 왔다. 그래서 모든 차들은 출시 당시에 유행한 디자인과 기술력을 판가름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한편으로는 최근 연결성, 자율주행, 전기화 등의 첨단 기술이 강조되면서 옛 것에 대한 가치가 흐려지기도 한다. 이를 되짚어보기 위해 40년간 자동차 산업을 지켜본 한국자동차문화연구소 전영선 소장이 예술적 가치가 뛰어난 클래식카 20대를 소개한다. 그 세 번째는 캐딜락 시리즈 62 사우칙 카브리올레·들라이예 175S 사우칙 로드스터, 메르세데스-벤츠 300SL 쿠페다.<편집자주>

-1948 캐딜락 시리즈 62 사우칙 카브리올레·1949 들라이예 175S 사우칙 로드스터

캐비닛 제조업자였던 자크 사우칙이 1906년 설립한 사우칙 코치빌더(Saoutchik Coach Builder)는 프랑스의 차체 제작사였다. 1930년대에 이 회사는 부가티, 들라예, 페가소 등을 손보면서 고품질과 호사스러운 디자인으로 유명해졌다. 2차 세계대전 직후 사우칙은 코치 제작 사업으로 돌아가 가장 화려한 차체를 만들어 냈다. 특히 1948년 미국 GM으로부터 받은 캐딜락 시리즈 62 섀시는 사우칙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시험하고 회사의 실력을 미국에 선보일 수 있는 기회였다.

사우칙은 캐딜락이 원하는 스타일링 컨셉트를 기반으로 미국인들이 반할 수 있는 아르데코 스타일의 차체를 만들었다. 외관은 거대한 투톤 색상의 앞 펜더와 크롬 장식이 특징이다. 마치 여성의 유방을 연상시킨다는 평을 받았다.

이 차는 2대만 제작됐다. 한 대는 자동차 수집사인 루이 피터가 구매한 것으로 검은색 바탕에 보라색 패턴의 외장색이다. 다른 한 대는 멕시코 출신 할리우드 여배우 도로레스 델리오가 탄 보라색 바탕의 연보라색 패턴 색상이다. 동력계는 V8 5,676㏄ 152마력 엔진과 3단 변속기를 조합해 최고시속 140㎞를 냈다. 2016년 이 차의 경매가는 90만 달러(한화 약 10억원)를 기록했다.

사우칙에서 나왔던 유선형 차체의 제품들은 바로크 건축과 맞먹는 이른바 자동차 예술품이었다. 매끈하게 넘어가는 날개형 프로필(profile)과 물방울처럼 휠을 감싼 팬더가 크롬장식과 어울렸다. 하지만 이런 디자인은 소비자를 위해서가 아닌 모터쇼나 콩쿠르 델레강스의 눈요기에 가까웠다. 이런 차가 도로 위를 달리려면 보통 이상의 명사가 운전대를 잡아야 어울렸다. 그런 인물 중 영국의 다이애나 도스는 20세 때인 1951년, 최연소 롤스로이스 구매자라는 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1954년 그녀는 자신의 성공에 걸맞은 차를 찾았다. 첫 번째 남편 데니스 해밀턴과 함께 발견한 들라이예 175S 사우칙 로드스터였다.

이 차는 1951년까지 51대가 나온 들라이예 타입 175S 가운데 사우칙이 만든 유일한 차였다. 마침 그녀가 제일 좋아하는 색상인 베이비 블루의 외장 색상에 당시 가격은 6,000 파운드(약 1,110만원)로 고가였지만 구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시보드는 금판으로 덮었으며 스티어링 휠은 크리스탈로 이뤄졌다. 동력계는 6기통 4,455㏄ 엔진을 얹어 최고 165마력을 발휘했다. 변속기는 4단 반자동을 조합해 최고시속 112㎞를 냈다. 도스의 지인들과 사우칙은 이 차를 '다이아나의 데코 즐거움(Diana's Deco Delight)'이라는 애칭으로 불렀다.

그러나 도스는 사우칙 로드스터를 오래 타지 않았다. 보수적인 스타일을 지향하는 해밀턴이 그 차를 좋아하지 않아서 였다. 출고한지 5년 만에 도스는 사우칙 로드스터 대신 캐딜락 엘도라도를 차고에 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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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형 메르세데스-벤츠 300SL 걸윙 쿠페

2차 대전 직후 독일의 다임러-벤츠는 자동차 경주에 복귀하기 위해 1952년 그랑프리 레이스용 W194와 스포츠 레이스용 벤츠 300SLR을 제작했다. 두 차는 곧이어 르망과 그랑프리에서 우승했다. 벤츠는 1954년 300SLR 기반의 스포츠카인 300SL을 개발해 뉴욕 국제모터쇼에서 공개했다. 당초 벤츠는 300SL을 양산할 계획이 없었지만 미국에서의 인기를 확신한 뉴욕의 벤츠 수입업자 맥스 호프만이 끈질기게 벤츠를 설득해 1,000대를 주문하면서 생산하게 됐다. 차명의 300은 배기량(3.0ℓ)을, SL은 경량 스포츠카(Sport Leicht)를 의미한다.

300SL은 매력적인 자태뿐만 아니라 알루미늄 스페이스 프레임, 우아한 몸매, 세계 최초의 직분사식 엔진 등 현대 슈퍼카의 시작을 알린 차로 꼽힌다. 특히 2차 대전 때 미국 전투기 머스탱의 문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개발했다는 걸윙 도어는 300SL을 상징하는 요소다. 파이프식 스페이스 프레임을 관통하는 양쪽 벽을 보호하기 위해 문지방을 높여 독특한 형태를 갖추게 됐다.

300SL은 뛰어난 멋과 성능을 가진 스포츠카로서 가벼운 엔진과 이상적인 무게배분으로 최고시속 260㎞라는 당시로서는 믿어지지 않는 속력 때문에 당대 가장 빠른 스포츠카가 됐다. 총 3,258대가 생산됐으며, 그 중 절반 이상이 북미에서 팔렸다. 미국영화 '왕과 나'의 율 브린너, 이탈리아 영화 '하녀'의 소피아 로렌, '빠삐용'의 스티브 맥퀸 등의 할리우드 스타들이 즐겨 탄 차로도 유명하다. 지난해 미국의 한 경매에선 190만 달러(한화 약 22억4580만원)에 낙찰된 바 있다.

[기획]시대별 가장 아름다운 차 Top 20-③

전영선<한국자동차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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