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지배구조 개편서 또다시 주목받는 국민연금
양대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인 ISS와 글래스 루이스가 현대자동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안에 대해 반대할 것을 권고하면서 국민연금이 캐스팅 보트를 쥐게 됐다는 관측이 나온다.

ISS 등의 반대 권고로 ISS의 영향력이 큰 외국인 주주들의 대거 이탈이 예상되는 가운데 국민연금이 현대모비스 지분 9.8%를 보유한 2대 주주이기 때문이다.

16일 현대차그룹에 따르면 주주 확정 기준일인 지난달 12일 기준 현대모비스의 주주는 기아자동차 16.9%, 정몽구 회장 7.0%, 현대제철 5.7%, 현대글로비스 0.7%, 국민연금 9.8%, 외국인 48.6%, 기관·개인 8.7%, 자사주 2.7%로 구성돼 있다.

이 중 의결권이 없는 자사주를 제외한 현대차그룹 측의 우호지분은 30.2%다.

주주총회에서 현대모비스의 분할·합병안이 통과되려면 의결권 있는 지분의 3분의 1 이상이 참석해 3분의 2 이상이 안건에 찬성해야 한다.

최소 요건을 따져보면 지분 22.2%가 찬성할 경우 안건이 통과될 수 있다.

현대모비스의 우호지분만으로도 충족할 수 있는 요건이다.

다만 이는 찬성의 최소 요건이다.

문제는 외국인 주주들이 대거 주총에 참석할 경우다.

참석률이 높아질수록 통과 기준도 함께 올라가기 때문이다.

산술적으로는 외국인 주주가 전부 참석해 모두 반대표를 던질 경우 안건은 부결된다.

이러다 보니 9.8%의 지분을 쥔 국민연금이 사실상 안건 통과를 결정지을 '캐스팅 보터'라는 관측이 나온다.

여기에 더해 국민연금은 다른 국내 기관투자가들의 의사결정에도 영향을 미친다.

기업 정기주총의 참석률이 통상 70∼80%인 점에 비춰 모비스 주주 중 75%가 참석한다고 가정하면 전체 주주 중 50.0%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호지분을 제외하고도 20% 가까운 지분을 더 확보해야 한다.

국민연금이 찬성할 경우 10%가량의 찬성표를 끌어내면 된다.

하지만 국민연금이 반대표를 던진다면 사실상 분할·합병안 통과는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비슷한 사례로 거론되는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당시 참석률은 83%에 달했다.

이와 비슷하게 모비스 주주 중 85%가 참석한다면 통과 요건은 56.7%로 올라가고, 우호지분에 국민연금의 찬성표를 보태고도 16∼17%의 추가 동의가 필요하다.

모비스로서는 참석률이 낮을수록 통과 가능성이 커지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연금과 계약한 의결권 자문사인 한국기업지배구조원도 조만간 현대모비스 분할·합병안에 대한 권고안을 내놓을 것으로 알려져 그 결과가 주목된다.

국민연금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때는 '반대' 의견을 제시한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의 의견을 거슬러 찬성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시장에는 이번 현대모비스 분할·합병을 둘러싼 찬반 구도를, 단기차익을 노리는 투자자와 기업의 미래 성장가치를 중시하는 투자자 간 대결 구도로 풀이하는 시각도 있다.

합병 반대를 선언하고 나선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를 비롯해 역시 반대를 권고한 양대 의결권 자문사 ISS, 글래스 루이스는 속성상 단기적인 이익과 주가 변동에 예민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특히 엘리엇의 경우 현대모비스의 지주회사 전환 시나리오를 예상하고 베팅했다가 그림이 틀어지자 반대 세력 규합에 나섰다는 관측도 있다.

현대차그룹 쪽은 이번 분할·합병을 통해 현대모비스를 자동차 분야 핵심 기술기업으로 육성하고, 그룹사 간 사업 재편으로 미래 발전의 시너지를 높이겠다는 입장이다.

간단히 말해 이번 분할·합병이 모비스나 글로비스의 미래 기업가치를 높이는 결과가 될 것이란 얘기다.

공정거래위원회도 "현대차 기업집단이 시장의 요구에 부응해 지배구조를 개선하려고 노력하는 데 대해 긍정적으로 본다"고 평가한 바 있다.

재계 관계자는 "ISS와 글래스 루이스 등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들이 모두 합병 반대 의사를 밝히면서 현대차그룹으로서는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게 됐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