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BIZ School] 고장 잦은 금융시스템… 수리해서 가성비 높여야
봄이다. 봄은 생명의 계절이다. 개구리가 깨어나고 꽃들이 피어난다. 개구리는 짝짓기를 위해 개굴개굴 울어댄다. 꽂은 수정을 위해 화려한 꽃을 피운다. 움직일 수 없는 꽃은 벌이나 나비 같은 곤충을 불러야 하는데, 이를 위해 화려한 꽃이 필요하다. 이 중 화려하게 피었다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봄의 전령사는 단연 벚꽃이다.

[한경 BIZ School] 고장 잦은 금융시스템… 수리해서 가성비 높여야
화려하게 꽃을 피우려면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하나하나는 작게 피워 에너지를 줄이지만, 한꺼번에 펴서 그 화려함을 유지하는 게 벚꽃의 전략이다. 부분의 비용을 줄이고 전체의 성과를 키우는 것이다. 그 대신 우리는 아름다움을 짧게 즐길 수밖에 없다는 점이 아쉽다.

지구의 경제시스템에선 어떻게 부분의 비용을 줄이고 전체의 성과를 키울 수 있을까. 지구는 ‘금융’시스템을 싸게 사용함으로써 많은 경제주체(기업과 개인)의 비용을 줄일 수 있었다. 그 대신 갑자기 뚝 떨어지는 동백꽃처럼 생각보다 자주 금융위기가 반복되는 것이 안타깝다. 1987년의 블랙 먼데이, 1997년의 외환위기, 2008년의 서브프라임모기지 위기…. 10년을 주기로 반복되는 위기들. 이번에도 과연 반복될 것인가.

금융위기가 반복되는 이유부터 알아보자. 이해하기 쉬운 자동차로 비유를 바꿔보자. 만일 우주인이 지구의 금융시스템을 본다면 어떻게 생각할까. 그들은 지구의 금융시스템을 고장이 자주 나지만 가격은 싼 자동차로 생각하지 않을까.

은행 수익구조, 위험에 취약

먼저 금융시스템이 싼지 얘기해보자. 오래전 은행은 363 시스템으로 불렸는데, 3%로 예금을 받아 6%로 대출하고 오후 3시에는 퇴근한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괜찮았던 예대마진은 핀테크(금융기술) 등으로 힘들어졌고, 오후 3시 퇴근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 됐다. 은행 수익은 예대마진이 중요한데 잘나가는 시기에도 폭은 겨우 3%였다.

반면 현재 세계 1위 기업인 애플의 영업이익률은 30% 수준이고, 한국 최고 기업인 삼성전자의 영업이익률은 20% 수준이다. 은행이 2%에 예금을 받아 기업에 22% 또는 32%에 대출해준다면 어떻게 될까. 지구의 기업들은 낮은 금리에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기에 살아남고 성장할 수 있었다. 싼 자동차를 사용해서 기업도, 가계도 성장했다. 그 대신 지구의 금융시스템은 자주 고장나는 자동차가 됐다.

애플이나 삼성전자처럼 은행과 증권, 보험사 같은 금융회사는 모두 수익을 낼 수 있어야 한다. 주주들로선 수익을 낼 수 없으면 사업을 영위할 필요가 없고, 수익이 나지 않으면 직원들에게 제대로 보상해줄 수도 없다. 그런데 예대마진 폭인 이익률이 겨우 2% 수준인데 어떻게 주주들과 직원들을 만족시킬 수 있을까.

답은 부채비율에 있다.자본이 100인 은행이 900의 부채를 사용하면 이 은행의 총자산은 1000이 된다. 1000의 자산을 이용해 2%의 마진을 얻을 수 있으면 순이익은 20이 된다. 그렇게 되면 자기자본이익률(ROE)은 20%가 된다. 삼성전자 수준의 이익률에 근접하게 되는 것이다. 만일 부채를 더 사용해 1900의 자금을 쓴다면 이익률은 40%가 되고 애플의 이익률도 넘어설 수 있게 된다. 직원들에게 충분한 보상도 해줄 수 있다.

신기술·시장 출현 때 위기 고조

문제는 무엇일까. 총자산 1000, 부채 900, 자기자본 100인 은행에서 공격적으로 대출을 해준 기업이 부도가 나서 총자산이 900으로 하락하면 어떻게 될까. 은행은 파산하게 된다. 만일 총자산이 800으로 하락하면 은행은 고객 예금도 돌려줄 수 없는 상황에 몰린다.

은행 총자산이 1000에서 950, 940으로 하락하면 은행이 불안하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한다. 고객은 은행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앞에서 돈을 빼가기 시작할 것이다. 뱅크런(bank run)이다. 그렇게 되면 어떤 개인들은 돈을 구하지 못해 중도금이나 잔금을 치를 수 없어 혼란에 빠져들 것이고, 어떤 기업은 금융시스템을 활용할 수 없어 흑자 도산 같은 사태를 맞을지도 모른다.

금융시스템은 이렇게 고장이 나고, 가계와 기업은 혼란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금융회사의 높은 부채비율이 고장이 자주 나지만 싼 자동차의 비밀이다.

금융위기의 징후는 무엇일까. 기술 혁신이나 새로운 시장이 나타나면 금융회사는 신용을 확대하게 되고, 조금씩 위험도가 상승한다. 위험의 징후는 ‘은행의 유동성 확보 비상’ ‘기업 신용경색’ 같은 현상으로 나타난다. 이는 은행 자금조달 금리와 기업 회사채 금리의 급등으로 이어지고, 일정한 임계점을 통과하면 결국 금융시스템의 고장인 금융위기로 이어지게 된다.

1997년의 외환위기, 2008년의 서브프라임 악몽이 있는 우리에게 2018년은 왠지 불안한 마음이 들게 한다. 금융당국과 금융회사들이 부채와 위험을 잘 관리해 무사히 해를 넘겼으면 좋겠다. 또 하나, 벚꽃을 보는 마음처럼, 금융시스템을 바라보는 마음도 따뜻했으면 좋겠다. 고장이 나지 않지만 가격이 아주 비싼 자동차인 ‘고리대금업’보다는 현대의 ‘금융시스템’이 더 나은 세상에 기여했을 것이다.

최일 < 이안금융그룹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