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미디어 뉴스룸-MONEY] "자극적인 맛보다 건강한 식재료가 우선이죠"
‘먹는 게 만사’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은 세상이다. 그만큼 먹을거리에 대한 관심은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정작 건강한 식생활을 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먹는 것에서 건강이 시작된다는 신념 아래 식료 연구를 파고든 이채윤 식료연구가(51·사진)는 “올바른 식생활의 가장 중요한 척도는 좋은 재료와 알맞은 조리 방법에 있다”며 “좋은 음식으로 병 치료를 돕고 병을 예방하는 게 나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식료 연구 활동은 물론 포슬린 아트 강사, 스튜디오 오픈키친 대표, 각종 강의 및 봉사활동으로 바쁜 이 연구가의 일상을 따라가 봤다.

▶식료연구가란 직함부터 생소합니다.

“식료란 음식물의 다양한 성미와 작용에 따라 각 장부에 작용해 치료 효과를 얻는 식이요법(食餌療法)의 일종입니다. 한의학 이론을 기초로 음식조리학, 영양치료학, 영양위생학, 식물본초학, 약물본초학 등을 종합해 음식이 가지고 있는 성질과 효능, 영양소와 미량 원소가 인체에 미치는 작용과 질병의 치료 및 예방 효과를 연구하는 것이죠. 더 나아가 음식에 약물을 조화롭게 섞어 병을 치료하고 예방할 뿐만 아니라 몸을 보해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면서 장수를 누릴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연구하는 응용의학의 중요한 한 부분입니다.”

▶이 분야를 파고든 계기가 있나요.

“어린 시절부터 워낙 몸이 약해 자랄 때 음식을 매우 신경 써서 먹고 자란 편이었어요. 거기에 손맛 좋으신 친할머니 영향으로 요리하는 것도 참 좋아했죠. 그러다 결혼하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자연스럽게 내가 먹었던 좋은 음식을 아이들에게 먹이면서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좋은 식재료를 찾다 보니 YMCA에서 주관하는 ‘땅을 지키는 사람들’이라는 이름의 공동체 소비자 유기농 운동에 합류하면서 식재료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됐어요.

동시에 동물 복지에도 관심을 갖게 됐고요. 그때가 벌써 25년 전 일이네요. 하지만 무엇보다 제가 식료 연구에 몰두한 계기는 10년 전 돌아가신 친정어머니의 건강을 챙기면서였죠. 처음 병원에서 어머니가 말기 암 3개월 선고를 받고, 치료가 불가하다는 소견에 가슴이 무너졌어요. 그래도 어떻게든 어머님을 보살펴드리고 싶어 수소문한 끝에 대체의학으로 치료하는 선생님을 찾게 됐어요. 그것이 계기가 돼 식이요법으로 통증을 완화하고, 환자가 사는 날까지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

▶본격적인 공부는 어떻게 했습니까.

“제가 원래 뭐든 ‘이거다’ 마음먹으면 두말없이 실행하는 편이거든요. 식재료의 중요성을 깨닫고는 바로 관련 학문을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선재사찰요리 정규 과정을 배우면서 음식을 이해하게 됐고, 식재료에 대해 더 파고들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죠. 원광디지털대 한방건강학과 과정을 4년 동안 이수한 뒤 한의학과 약선(藥膳) 관련 활동을 하다가 식재료로 사람의 병을 예방하는 것에 대해 본격적으로 공부하고자 경기대 대체의학대학원에서 식품 치료를 전문적으로 배우고 있습니다. 2년간 실험실(lab)에서 연구 실험 활동을 하면서 저만의 데이터도 많이 구축했어요. 현재는 석사 논문을 쓰고 있고요.”

▶기억에 남는 연구가 있나요.

“제일 인상 깊었던 식재료는 짙은 보라색의 야생당근이에요. 산에서 자생하는 당근이라 거의 재배가 안 되죠. 옛 문헌에도 본디 자생하는 당근색은 짙은 자색이라고 기록돼 있어요. 지금 국내에서 일반적으로 먹는 당근은 네덜란드에서 개량한 오렌지색 당근이고요. 아무튼 야생당근을 복원해보고 싶다는 의뢰가 들어와서 각종 실험을 해보니 야생당근에 함유된 항산화물질이 어마어마하더군요. 무엇보다 놀라운 건 굽고, 찌고, 튀기는 등 조리 과정을 거치면서 대개 식재료들의 항산화물질이 다소 감소하기 마련인데, 야생당근은 어떤 조리 과정을 거쳐도 보존되더라고요. 정말 좋은 식재료인 셈이죠. 다만 이걸 재배하기 위해 들어가는 비용이 많아 대규모 상업 재배까지는 이뤄지지 않았죠.”

▶최근 좋은 식재료를 찾는 소비자가 늘어나고 있는데 어떻게 봅니까.

“사실 지금 유기농이라는 것은 진정한 유기농으로 보기 힘들어요. 사람의 인분을 삭혀 발효시키고, 비료를 주고 그런 방식으로 키우는 곳은 거의 없죠. 대부분 닭의 분뇨를 수입해 비료로 사용하는데 다 유전자 변이 콩이나 옥수수를 먹고 자란 닭들의 분뇨예요. 다행스러운 것은 여러 농민 중에서도 진정한 유기농을 추구하는 분들이 있어요. 그런 분들의 소비자가 돼주는 것도 힘이 돼요.

결국 앞으로 가장 믿을 만한 건 자연순환농법이라고 봅니다. 스위스 등 식문화가 발달한 북유럽 국가를 방문하면 변두리에 있는 레스토랑뿐만 아니라 도심에 있는 레스토랑 근처에도 텃밭이 있어요. 그만큼 신선한 재료를 쓰다 보니 자극적인 간을 하지 않아도 재료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을뿐더러 건강에도 좋아요. 한국도 그런 시스템을 전반적으로 도입해야 합니다.”

김수정 한경 머니 기자 hoho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