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부터 12일까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전자쇼 ‘CES 2018’에는 정보통신기술(ICT), 자동차 분야 글로벌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이 총집결했다. 산업 간 장벽이 사라지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플랫폼 주도권을 먼저 장악하기 위해 앞다퉈 새 비전을 내놓았다.

자율주행차, 커넥티드카, 전기자동차, 수소차의 등장으로 격변을 앞둔 자동차 분야 CEO들의 움직임이 가장 분주했다. 점차 한계점을 드러내고 있는 제조업에서 벗어나기 위해 ‘모빌리티 솔루션’ 회사로의 변신을 선언했다.

CES 2018 기조연설을 맡은 짐 해킷 포드 CEO는 “자동차의 역할이 전통적인 이동수단에서 벗어나 도시를 연결하고 사람들의 생활을 바꾸는 플랫폼으로 진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포드는 이번 행사에서 스마트시티에서 많은 사람이 공유 플랫폼으로 사용할 수 있는 교통 모빌리티 클라우드 기술을 선보였다. 해킷 CEO는 “자율주행차를 활용한 수익 모델을 만들기 위해 도미노피자, 리프트, 포스트메이트 등과 함께 운송수단이 필요한 사람이나 음식 배달, 물류 이동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갈 수 있는 사업영역을 구축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요다 아키오 도요타 회장은 CES 프레스 콘퍼런스에서 차량 공유, 물건 배달, 움직이는 상점 등 다양한 서비스에 사용할 수 있는 자율 주행 전기자동차(EV) 시제품 ‘e-팔레트(e-Palette)’를 공개했다. 그는 무대 화면에 역대 도요타 회장 얼굴과 자신의 얼굴을 띄워놓고 “자동차산업은 100년에 한 번 있는 대변혁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며 “도요타는 내 세대에서 자동차 업체에서 모빌리티 회사로 바뀌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세계 최대 인터넷 시장을 기반으로 급성장한 중국 바이두는 “우리는 중국의 구글”이라며 인공지능(AI), 자율주행차 경쟁에 자신감을 드러냈다. 루치 바이두 부회장은 프레스 콘퍼런스에서 “중국은 AI산업의 핵심인 자본, 시장, 기술, 정책을 모두 가지고 있는 나라”라며 “지금부터 세계 AI 혁신을 ‘차이나 스피드(중국의 속도)’로 끌고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부활을 꿈꾸는 일본 소니는 자율 주행차 부품 시장 진출을 선언했다. 세계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이미지 센서 기술을 활용해 자율 주행차 부품을 선보일 계획이다. 히라이 가즈오 소니 CEO는 “TV·생활가전을 넘어 모든 첨단 산업 분야를 선도하겠다”고 말했다.

도요다 도요타 회장
도요다 도요타 회장
CES 기조연설을 맡은 화웨이와 인텔은 전시회 개막 전 터진 사건으로 기대만큼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는 못했다. 리처드 유 화웨이 CEO는 9일 CES 기조연설에서 미국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개막 몇 시간 전 미국의 이동통신사 AT&T가 화웨이의 스마트폰을 미국에 내놓기로 한 계획을 철회했다는 소식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는 “세계 3위 스마트폰 제조업체인 화웨이 제품이 제공되지 않는다면 미국 소비자는 최고의 선택권을 갖지 못하는 것”이라고 했다.

브라이언 크르자니크 인텔 CEO는 기조연설 후 비난의 중심에 섰다. CES 개막을 앞두고 중앙처리장치(CPU)의 중대 보안 결함을 숨긴 게 드러났지만 ‘훌륭하게(remarkable)’ 대처했다는 자화자찬식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그는 최근 불거진 보안 결함 파문과 관련, “산업계 전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기업이 보여줬던 협력은 진정으로 훌륭했다”고 말했다. 크르자니크 CEO 등 일부 인텔 경영진은 보안 결함이 알려지기 직전인 지난해 11월 자사주를 매도한 사실까지 알려지면서 소송 위기에도 직면했다.

김태훈 기자 tae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