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김모씨(35)는 최근 2금융권 회사를 다니며 대출을 알아보는 중이다. 지난 12일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비트코인캐시가 호재를 등에 업고 빠르게 급등 중이라는 뉴스를 본 것이 화근이었다. 김씨는 전셋집을 마련하기 위해 모아둔 3억5000만원으로 망설임 없이 코인당 240만원에 비트코인캐시를 매수했다. 300만원 근처로 올라간 뒤 매도해서 전세자금을 늘려보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280만원이 넘어섰을 때 김씨가 이용하던 거래소 빗썸의 서버가 다운된 뒤 시세가 폭락해 매도 기회를 놓쳤기 때문이다.
사진=허문찬 기자/그래픽=한성호 기자 sweat@hankyunh.com
사진=허문찬 기자/그래픽=한성호 기자 sweat@hankyunh.com
김씨는 “원금까지 오르기를 기다리다 도무지 안 될 것 같아서 120만원 선에서 매도하는 바람에 1억5000만원의 손실을 봤다”며 “이 돈으로는 원하는 지역에 전셋집을 마련하기 어려울 것 같고, 은행 대출은 이미 한계까지 받아놓은 터라 2금융권을 알아보며 자금을 마련하는 중”이라고 하소연했다.

가상화폐 투기가 유행처럼 번지면서 김씨와 같이 무작정 투자했다가 손실을 봤다는 이들이 속출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 12일 발생한 비트코인캐시 급등·급락 사태다. 11일 오후 3시50분 106만9200원에 거래되던 비트코인캐시가 하드포크(화폐 가치를 개선하기 위해 새로운 가상화폐를 발행하는 작업)를 등에 업고 24시간 만인 12일 오후 3시50분 283만9700원까지 올랐다. “지금 투자하면 떼돈을 번다”는 소문이 번지면서 개인투자자(개미)들이 우르르 몰린 까닭이다.

지나치게 이용자가 밀려들자 빗썸의 서버는 다운됐고, 1시간50분 만에 서버 운영이 재개됐을 때는 시세가 160만원대로 떨어져 있었다. ‘물렸다’는 투자자들이 속출했다. 비트코인캐시는 좀처럼 시세를 회복하지 못하고 지속적으로 하락 중이다. 17일 오후 4시 현재 120만원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다.

물론 큰돈을 번 사람도 나오고 있다. 박모씨(32)는 성과급 및 펀드수익금으로 모은 1000만원으로 지난해 초 비트코인 22개를 매입했다. 박씨는 “한동안 ‘없는 돈’ 셈치며 지내다가 지난달 비트코인이 급등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시세를 확인해보니 2억원에 가까운 평가액이 새겨져 있었다”며 “워낙 투자자가 많다 보니 저처럼 ‘운 좋은 개미’들도 적지 않은 듯하다”고 말했다.

국내 가상화폐 거래시장에 본격적으로 개미들이 몰리기 시작한 것은 지난 8월부터다. 8월1일 304만원에서 거래되던 비트코인이 보름 만인 같은 달 14일 487만원까지 치솟았다. 비트코인을 비트코인캐시로 분할하는 하드포크 이슈가 호재로 작용해서다. 게다가 하드포크 전에 비트코인을 보유하면 1 대 1 비율로 비트코인캐시를 얻을 기회였다. 개미들은 너도나도 비트코인을 사들였다. 8월19일 빗썸의 하루 거래액은 코스닥시장보다도 많은 2조6018억원을 달성했다.

가상화폐와 관련한 ‘유료 리딩방’(돈을 내면 그날의 시장상황을 설명하고 향후 유망한 종목을 짚어주는 대화방)도 성황이다. 한 가상화폐 전문가는 “카카오톡·텔레그램 등에 존재하는 유료 리딩방이 어림잡아 100개는 훌쩍 넘을 것”이라며 “입장 비용은 제각각이지만 100만원 이상 받는 곳도 있다”고 귀띔했다.

그러나 가상화폐 시장을 주도하는 것은 개미들이 아니라 집단으로 행동하는 ‘펌핑(pumping)세력’들이라는 것이 참가자들의 전언이다. 규제 장벽이 없는 데다 외국 거래소에 비해 시세가 높고, 개미들이 많이 몰리는 국내 가상화폐 거래시장은 해외 펌핑세력들의 좋은 먹잇감이다. 이들에 의해 시세가 10% 이상 급등했다가 10여 분 만에 다시 폭락해 제자리로 돌아가는 종목이 하루에도 많게는 10개 가까이에 달한다. 펌핑세력이 한 번 뒤흔들고 간 시장에는 ‘또 당했다’는 개미들의 한탄만 남는다.

펌핑세력은 외국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국내에도 디바(D.va) 등의 집단이 존재한다. 유료 회원제로 운영되는 국내 펌핑집단은 일정 수의 회원을 모은 뒤 날짜와 세세한 시간까지 지정해 그 시점에 물량을 매수하도록 주문한다. 급등하는 가격을 본 개미들이 추종매수를 해서 가격이 더욱 올라가면 펌핑집단은 매수한 물량을 그대로 매도한다.

이런 일들이 어렵지 않게 가능한 것은 국내 가상화폐 거래시장이 ‘제도권 밖’이어서다. 주식시장과 달리 가상화폐 거래시장은 상승·하락폭에 대한 제한이 없다. 서킷브레이커나 사이드카처럼 급변하는 시세에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도 없다. 그러다 보니 시장이 몇 분 단위로 빠르게 변한다. 이에 대한 피해는 오롯이 개미들의 몫이다.

상황이 이렇지만 금융당국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투기수단에 불과한 가상화폐를 국민의 세금으로 보호해줘야 할 이유가 없다”고 단호히 말했다. 그러나 가상화폐 전문가들은 미비한 금융당국의 규제가 오히려 가상화폐 시장의 투기성을 높이고 있다고 지적한다. 한 가상화폐 거래소 관계자는 “가상화폐 시세가 하루에 100% 넘게 오르는데도 금융당국에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으니 계속해서 ‘한몫’ 노리는 집단 및 개미들이 몰리는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될 때까지 방치한 금융당국이 지속적으로 ‘투기시장에 취할 조치는 없다’는 식으로 나서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지적했다.

윤희은 기자 so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