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전희성 기자  lenny@hankyung.com
일러스트=전희성 기자 lenny@hankyung.com
2015년 9월 디젤차 ‘배기가스 배출 조작’ 사건으로 폭스바겐그룹 전체에 비상이 걸렸다. 폭스바겐은 미국 환경당국이 검사할 때는 배출가스를 적게 내보내고, 일반적인 주행 시에는 배출가스를 많이 내보내는 방식으로 소프트웨어를 조작해 세계에 충격을 줬다.

마르틴 빈터코른 회장이 사태에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빈터코른 회장 후임으로 발탁된 마키아스 뮐러 당시 포르쉐 최고경영자(CEO)는 올리버 블루메(49)를 조용히 불렀다. 폭스바겐의 럭셔리카 브랜드 포르쉐에서 생산부문장을 맡고 있던 블루메가 뮐러의 자리를 이어받았다.

블루메 CEO는 하루아침에 3만 명을 관리해야 하는 자리에 올랐다. 그는 “(뮐러 회장이 부르기 전까지) CEO가 될 수 있다고 생각조차 한 적이 없었다”며 “계획밖의 일이었다”고 말했다. 갑작스럽게 CEO직을 맡았지만 지난 2년간 그는 ‘괜찮은’ 성적표를 받았다. 올 상반기 포르쉐의 판매량은 전년 동기보다 7% 늘어난 12만6497대를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16% 증가한 21억달러(약 2조3690억원)에 달했다.

블루메 CEO는 취임 2주년을 맞아 파이낸셜타임스와 인터뷰하면서 계획 수립보다는 실행의 중요성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미래를 세심하게 계획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루하루 능숙하게 작업량을 채우다 보면 미래의 보상이 따르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점진적 혁신가

[Global CEO & Issue focus ] 올리버 블루메 포르쉐 CEO
블루메 CEO는 혁신에 대해서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 혁신이란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행하는 것이라고 정의 내렸다. 그는 회사 블로그를 통해 ‘창의력은 새로운 생각을 하는 것이고, 혁신은 그 아이디어를 실제 일에 적용하는 것’이란 시어도어 레빗 하버드대 교수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밝혔다.

블루메 CEO는 점진적인 변화를 선호한다. 뮐러 회장은 블루메의 이런 성향이 그를 후임으로 선택한 이유 중 하나라고 밝혔다. 뮐러 회장은 “블루메는 나와 성격이 비슷하다”며 “다른 사람들과 조화롭게 일하는 ‘팀 플레이어’인 그가 나와 비슷한 전략을 갖고 기업의 성공을 이끌어낼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중국에서 고급 스포츠카 시장이 빠르게 성장한 것도 포르쉐가 현재 전략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중국 젊은 부호들이 포르쉐의 주 고객층으로 떠오른 것이 회사 매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독일에서 50세 이상 중년 남성들이 포르쉐 주요 고객인 데 비해 중국에선 40세 이하가 주요 고객층을 이루고, 여성 고객도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 회사의 분석이다.

“내연엔진 자동차 계속 제조하겠다”

[Global CEO & Issue focus ] 올리버 블루메 포르쉐 CEO
블루메 CEO 앞에 놓인 미래는 녹록지 않다. 자동차산업의 패러다임이 내연엔진에서 전기·사물인터넷·자율주행자동차로 바뀌는 흐름에서 포르쉐도 예외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폭스바겐 사태가 전기차 등 친환경차 시장 확대를 위한 정부 지원을 앞당긴 측면도 있다. 올 들어 영국 프랑스 중국 인도 등 주요국 정부는 중장기적으로 내연엔진 자동차 생산과 판매를 중단하겠다는 계획을 잇달아 발표했다.

블루메 CEO는 포르쉐가 내연엔진 자동차를 계속 생산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내연엔진 자동차도 계속 생산하고, 동시에 전기차 등 차세대 교통수단 혁명에도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2019년까지 가솔린 디젤 등 내연엔진 자동차 생산을 전면 중단하겠다고 발표한 볼보 등과는 다른 행보다. 그는 “산업은 하루아침에 변하지 않는다”며 “전환기를 어떻게 보내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전형적인 ‘아우디·폭스바겐맨’이다. 1968년 독일 북부 상공업도시인 브라운슈바이크에서 태어나 브라운슈바이크대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했다. 브라운슈바이크는 폭스바겐 본사가 있는 볼프스부르크로 통근하는 폭스바겐 직원이 많이 사는 도시다. 블루메는 대학 졸업 후 1994년 아우디의 우수 인재 양성 프로그램을 시작으로 23년간 아우디·폭스바겐에서 근무했다. 폭스바겐은 2012년 포르쉐를 인수했다.

테슬라와 경쟁? ‘전략 2025’ 발표

포르쉐는 전기차 개발에 지금까지 10억달러를 투자했다. 2년 전 첫 번째 전기차(콘셉트카) ‘미션E’를 선보이기도 했다. 2019년까지 미션E를 대량 생산하는 것이 블루메의 과제다. 일부 언론들은 미션E를 ‘테슬라 킬러’라고 부른다. 블루메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대단한 혁신가이긴 하지만 테슬라는 아직 전기차 혁명에 첫발을 내디뎠을 뿐이라고 평가했다. 아직 이익을 내지 못하는 테슬라를 포르쉐의 경쟁 상대로 보긴 어렵다는 뜻이다. 그는 “테슬라는 상장기업이지만 여전히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처럼 운영되고 있다”며 “포르쉐와 같은 전통 자동차 제조기업엔 이익을 내는 것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폭스바겐그룹은 지난 6월 포르쉐의 미션E를 비롯 아우디 e-트론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과 폭스바겐 e-골프를 포함해 ‘전기차 30종을 2025년까지 출시한다’는 목표가 담긴 ‘전략 2025’를 발표했다. 이 전략에 자율주행과 차량공유 사업 등에 대한 구상도 포함됐다.

전략 2025의 일환으로 포르쉐는 월정액 비즈니스 모델 시험에도 나섰다. 포르쉐는 다음달 미국 애틀랜타에서 일종의 서브스크립션 서비스인 ‘포르쉐 패스포트’를 시작할 예정이다. 포르쉐 패스포트는 한 달에 2000달러를 내면 포르쉐의 스포츠카와 SUV를 타볼 기회를 주는 서비스다. 스포츠카를 경험해보고 싶은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서비스란 것이 회사 측 설명이다.

추가영 기자 gyc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