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칙 인정 안 하고 항목별로 통상임금에 해당하는지 판단해 결론 내려
금호타이어·현대重·한국GM 소송선 "회사 손실·부채 고려" 신의칙 인정


기아자동차 노동자들이 낸 통상임금 소송에서 핵심 쟁점은 1차적으로는 정기상여금 등이 통상임금에 해당하는지였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면 정기상여금 등이 통상임금으로 인정될 경우 회사의 늘어나는 부담을 덜어줄 방법을 찾을 수 있느냐였다.

이때 판단 기준은 노사 합의나 신뢰관계에 바탕을 둔 '신의칙'(신의성실의 원칙)의 적용 여부였다.

결론적으로 31일 기아차 통상임금 소송의 1심 재판부는 회사에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이 생긴다며 '신의칙'에 따라 노조 측 주장을 인정해선 안 된다는 사측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만 재판부는 원칙적으로 노조 측의 손을 들어주면서도 상여금과 중식대, 일비 가운데 상여금과 중식대만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절충안'을 냈다.

일비는 영업활동 수행을 전제로 하는 만큼 '고정성'이 없어 통상임금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개월을 초과해 지급하는 금품이 정기성·일률성·고정성이 있어야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는 판례를 지난 2013년 남겼다.

재판부는 이같은 판단을 통해 노조 측이 주장한 1조930억원의 38.7%인 4천224억만 인정했다.

기아차 사안에서는 회사에 심각한 타격을 줄 정도는 아닌 정도의 추가 임금을 지급할 수 있다는 게 재판부 판단이다.

다만 이처럼 원칙적으로 신의칙을 인정하지 않는 사례가 다른 업종, 업체에도 적용된다고 가정하면 해당 업종, 업체의 부담이 매우 크게 늘어나는 점이 문제가 될 수 있어 법정 다툼을 둘러싼 업종·업체별 분쟁은 여전히 이어질 전망이다.

'신의칙'은 과거 다른 기업들의 임금 소송에서도 핵심적인 판단 기준으로 작용했다.

최근 이 원칙을 인정한 사례는 금호타이어 통상임금 소송이다.

광주고법 민사1부(구회근 부장판사)는 지난 18일 금호타이어 노조원 4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한 원심을 깨고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이들 노조원은 통상임금에 상여금을 반영해 3천800여만원을 추가 지급하라고 요구했다.

재판부는 노조원의 청구를 기각하며 "근로자가 노사 합의한 임금수준을 훨씬 초과하는 예상외의 이익을 추구해 사용자에게 예측하지 못한 재정 부담을 지워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한다면, 이는 종국적으로 근로자 측에도 피해가 미치게 돼 노사 어느 쪽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러한 경우는 정의와 형평의 관념에 비춰 신의에 현저히 반하고 도저히 용인될 수 없음이 분명하다"며 "근로자 측의 추가 법정수당 청구는 신의칙에 위배돼 받아들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금호타이어의 2016년 6월 기준 부채가 4조가량에 달해 자본총액 대비 약 147%에 이른 점, 워크아웃 종료 이후 당기순손실이 큰 폭으로 증가하는 등 경영 사정이 악화하고 있는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현대중공업도 노동자들이 제기한 통상임금 소송의 지난해 항소심에서 '신의칙' 적용 덕분에 승소했다.

1심 재판부는 "추가 임금 지급으로 회사에 중대한 경영상 위기가 초래된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며 노동자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2심은 조선업계 불황을 거론하며 "2014년 이후 거액의 당기순손실을 보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추가 임금 지급으로 인해 재무 위기가 심화할 수밖에 없다"면서 사측에 힘을 실어줬다.

한진중공업의 통상임금 2심에서도 재판부는 예측하지 못한 재정적 부담과 누적 순손실로 인해 신의칙이 인정된다며 사측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아시아나항공의 통상임금 소송에서도 1심은 사측의 경영상 어려움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2심은 1988년 설립 이후 누적 순손실이 1조원 이상이라는 점 등을 근거로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해 각종 법정수당 등을 추가로 달라는 요구는 신의칙에 위배돼 허용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한국GM 노동자 5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통상임금 소송에서도 최종 승자는 사측이었다.

파기환송심을 맡은 서울고법은 2015년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반영해 매년 416억원의 추가 법정수당을 지급하면 회사에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이 초래될 것으로 판단한다"고 판결했다.

한국GM의 2014년까지의 누적 당기순손실이 8천690억원에 이르고, 부채비율이 동종 업계에 비해 높은 데다 유동성이 떨어지는 점 등을 판단 근거로 삼았다.

(서울연합뉴스) 송진원 기자 sa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