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수수료 "시장에 맡겨야" vs "적극 개입해 낮춰야"

문재인 정부가 서민 보호를 위해 금융수수료와 보험료 등 가격 결정을 시장에만 맡기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면서 업계에서는 반발하고 나서는 등 논란이 일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가격 개입 기조는 수수료와 보험료 등 가격은 시장원리에 따라 정해지는 게 바람직하다는 박근혜 정부 당시 금융당국의 입장과는 배치된다.

최종구 금융위원장 후보자는 "가격은 시장 자율에 맡기는 게 원칙"이라면서도 "서민의 금융 부담 측면을 같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수수료 인하 시 타격이 크지만, 그렇다고 사업을 접을 수도 없는 난감한 상황이라는 반응을 보인다.

◇ 새 정부, 은행수수료 인하 압박하나



9일 금융당국은 문 대통령이 소비자의 부담 완화와 투명성 강화를 위해 공약한 금융수수료 적정성 심사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을 고심 중이다.

이 심사제도를 도입하면 금융사들이 새로 수수료를 신설하는 게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함께 기존 금융수수료 중에는 가장 덩치가 큰 은행수수료에 금융당국이 개입할지에 업계의 관심이 모아진다.

금융감독원이 국회 정무위원회 박용진 의원(더불어민주당)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은행·보험·카드사의 2013년 이후 수수료 수익 27조7천억 원 중 은행들의 수수료 수익이 27조2천억 원으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박용진 의원은 최근 새정부에서 주목하고 있는 카드수수료와 보험료뿐 아니라 은행 수수료 체계가 합리적인지도 살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금융당국이 은행수수료 인하 압박에 나서는 것은 드문 일은 아니다.

금융당국은 앞서 2011년 10월 은행수수료 합리화 방안에 따라 현금입출금기(ATM) 인출수수료와 송금수수료를 절반으로 인하하도록 한 바 있다.

인출수수료(800∼1천원)와 송금수수료(600∼1천원)를 각각 400∼500원과 300∼500원으로 인하한 것이다.

하지만 이후 2015년 8월 금융당국이 수수료를 시장 자율에 맡긴다는 방침을 공식화하면서 면제·인하 조건을 까다롭게 하는 등의 방식으로 너도나도 수수료를 다시 인상한 바 있다.

금융당국은 2015년 10월에는 은행권의 중도상환수수료 인하를 강제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의 대선공약인 카드사 가맹점수수료와 보험사 실손 의료보험료 인하는 이미 시행방안이 나왔다.

◇ 금융수수료, "시장에 맡겨야" vs "적극 개입해 낮춰야"



금융수수료는 한국 사회에서 오래된 논란거리다.

금융권에서는 한국의 금융수수료가 미국, 영국, 일본 등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비슷하거나 낮은 수준이라고 항변해왔지만, 소비자들은 반감이 크다.

금융회사가 신상품이나 혁신에 의존하기보다는 금리차나 수수료 등으로 '땅 짚고 헤엄치기' 식의 수월한 영업을 하면서 높은 수익을 낸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시장 자율에 맡겨 경쟁에 따라 수수료가 결정돼야 한다는 입장과 금융회사보다 소비자는 정보가 부족한 약자이기 때문에 정부가 적극적 개입을 통해 수수료를 통제해야 한다는 입장이 팽팽하게 맞서왔다.

서지용 상명대 교수는 최근 토론회에서 "현재 금융상품 중 법률로 가격 결정 프로세스를 규정하는 것은 신용카드 가맹점수수료가 유일하다"면서 "정부가 인위적으로 가맹점수수료를 조정하는 것은 시장 가격의 자율성을 침해하고 오히려 카드시장 참여자들 간 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금융연구원이 내놓은 은행수수료의 국제간 비교와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은행들의 송금수수료는 창구를 이용할 때 500∼3천원으로 미국(35달러, 약 4만원), 영국(25파운드, 약3만7천원), 일본(648∼864엔, 약 6천500∼8천700원)보다 크게 낮았다.

자동화기기를 이용한 송금 수수료도 업무 마감 전에 0∼1천200원, 마감 후에 500∼1천600원으로 일본(270∼432엔 약 2천700∼4천400원)의 절반을 하회했다.

해외송금 수수료의 경우 3천∼8천원으로 미국(45달러, 약 5만2천원), 영국(30파운드, 약 4만5천원), 일본(3천∼5천500엔, 약 3만∼5만6천원)보다 낮은 편이다.

◇ 카드업계 "연 3천500억원 손해" 울상·보험업계 "상품 판매 중단" 반발



새 정부가 이미 수수료 또는 요금 인하 방침을 공식화한 카드와 보험업계에서는 반발기류가 거세다.

카드업계는 신용카드 우대수수료율을 적용받는 영세·중소 가맹점을 정부의 안대로 확대할 경우 카드업계의 연간 수익이 약 3천억∼3천500억 원 정도 감소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마이너스 효과가 연간 최대 3천500억원으로 타격이 큰데, 그렇다고 사업을 접을 수도 없으니 난감하다"면서 "중장기적으로 신규상품의 혜택이 줄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달 말부터 신용카드 수수료가 1.3%에서 0.8%로 인하되는 영세 신용카드 가맹점의 범위는 연매출 2억원 이하에서 3억원 이하로 늘린다.

신용카드 수수료가 평균 1.94%에서 1.3%로 인하되는 중소 신용카드 가맹점의 범위도 연매출 2억∼3억원에서 3억∼5억원으로 확대한다.

금융당국은 우대 신용카드 가맹점 확대로 연매출 2억∼5억원 영세·중소 가맹점에 연간 80만원 내외의 수수료 절감 효과가 발생해 전체적으로 연간 약 3천500억원 안팎의 카드 수수료 부담이 경감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건강보험과 민간의료보험을 연계해 실손 보험료 인하를 유도하는 법을 연내 제정하기로 하자 일부 보험사는 보험료 인하가 추진되는 실손보험 판매를 중단하고 나섰다.

금융감독당국에 따르면 올해 초 AIG손해보험 등 외국계 2∼3개 손해보험사가 실손보험 판매를 중단했으며, 손해율(거둔 보험료 대비 지급한 보험금 비율)이 높은 일부 중소형사도 판매 중단 여부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생명·손해보험사들은 실손보험으로 1조6천432억원의 적자를 냈으며, 이는 2015년 9천979억원보다 65% 늘어난 규모다.

손해율도 131%로 2015년(122%)보다 상승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실손보험료를 인하할 경우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상품을 판매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보험업계의 항변이다.

(서울연합뉴스) 이 율 홍정규 기자 yulsid@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