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정책 등과 관련해 새 정부와 각을 세우는 모양새가 돼 곤혹스러워하고 있는 재계가 다시 '난감한 악재'에 직면했다.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내용의 내부 문건이 유출돼 마치 새 정부에 조직적으로 반기를 드는 듯한 분위기가 연출됐기 때문이다.

일부 언론은 1일 경제단체협의회가 문재인 정부의 공약을 분석한 의견서를 작성해 실무 회의에서 검토했다고 보도했다.

경제단체협의회는 이 문건에서 일자리, 노사문제, 경제, 복지 분야 등 30개 항목으로 공약을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단체협의회는 1989년 출범한 조직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무역협회, 대한상공회의소, 전국경제인연합회, 중소기업중앙회 등 경제 5단체와 75개 업종단체, 15개 지역단체가 가입돼 있다.

다만 경제단체협의회는 각 단체 실무자들이 노사문제 등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는 단체로, 별도 조직을 갖추거나 구속력 있는 결의를 내놓는 단체는 아닌 것으로 전해졌다.

경제단체 관계자는 "경제단체협의회는 사실 이름만 있을 뿐 의미 있는 대외 활동을 거의 하지 않는 곳으로 재계 비상연락망을 관리하는 곳 정도"라고 밝혔다.

그는 "이런 곳에서 만든 내부 문건이 마치 재계 입장을 대변하는 것처럼 알려져 매우 당황스럽다"고 토로했다.

다른 경제단체 관계자는 "지난달 30일 열린 경제단체협의회 운영위원회에 각 경제단체 실무진이 모였지만 문제가 된 보고서는 배포되거나 관련 내용이 언급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경제단체 대부분은 그런 보고서가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는데 그게 재계를 대표하는 공식 의견서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전경련은 '최순실 게이트' 이후 입지가 좁아졌고, 대한상의는 새 정부 출범 후 입을 닫고 있는 상황"이라며 "재계가 지금 정부 정책에 반박할 분위기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특히 입장이 난처한 곳은 경총이다.

경총은 노사문제를 담당한다는 이유로 경제단체협의회 사무국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문건도 내부적으로 직접 작성한 주체는 경총 실무진인 것으로 전해졌다.

경총은 최근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했다가 새 정부로부터 잇따라 호된 비판을 받은 뒤 "정부 정책을 반대하지 않는다"며 사태 수습에 힘쓰는 상황이다.

경총은 정규직화 관련 문제를 담은 '비정규직 논란의 오해와 진실'이라는 책을 내려다가 논란이 이어지자 발간을 보류한 바 있다.

경총 관계자는 "해당 문건은 정식 보고서가 아니고 내부에서 실무진이 자료를 정리한 수준의 '로 데이터(raw data)' 개념"이라며 "당장은 이 문건을 토대로 정식 보고서를 작성하거나 정부에 의견을 전달할 계획도 없다"고 설명했다.

경총은 '보도설명자료'를 내고 "30일 경제단체협의회 운영위원회에서는 보도된 보고서가 논의되거나 보고·검토된 사실이 없다"며 "그 보고서는 실무진이 내부적으로 경영계 의견 수렴에 참고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작성 중이었던 검토 자료일 뿐 공식적인 자료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경총은 "현재 정부 정책에 대한 건의서 작성을 위해 업계로부터 광범위한 의견을 수집하고 있으며, 차후 기업의 다양한 의견을 종합해 정부, 국회에 건의서를 제출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서울연합뉴스) 김영현 기자 cool@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