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광통신이 지난 1분기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경기 안산시 단원구 생산 공장에서 근무하는 한 직원이 24일 최종 품질검사를 마친 광섬유 제품을 보관 창고로 옮기고 있다. 안재석 기자
대한광통신이 지난 1분기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경기 안산시 단원구 생산 공장에서 근무하는 한 직원이 24일 최종 품질검사를 마친 광섬유 제품을 보관 창고로 옮기고 있다. 안재석 기자
대한광통신은 광섬유와 광케이블을 생산하는 업체다. 옛 대한전선그룹을 이끌던 ‘설씨 가문’의 마지막 명맥을 잇는 작은 조각이기도 하다. 한동안 회사는 존폐의 갈림길에서 허우적댔다. 조여오기만 하던 숨통은 작년부터 조금씩 트이기 시작했다. 세계적으로 통신 인프라에 대한 투자 수요가 늘어나면서다. 올 1분기 실적은 부쩍 호전됐다. ‘흑자 전환’과 ‘무차입 경영’이라는 두 마리 토끼도 이제 가시권이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재기 드라마가 다시 막을 올리고 있다.

‘깊은 상처’ 남긴 사업 다각화

1901년 평안북도 철산에서 태어난 청년은 가난을 이길 무기로 ‘사업’을 선택했다. 닥치는 대로 일을 벌였다. 정어리잡이로 목돈을 만지기도 했다. 해방 후엔 월남해 전선사업에 뛰어들었다. 1950~1960년대엔 국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그룹을 일궈냈다. 청년의 이름은 설경동(1974년 별세), 그의 회사는 대한전선이었다. 모터용 나사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하던 1960년대 초반, 삼성이나 LG보다 먼저 가전사업을 시작한 기업이다.

1970년대 오일 쇼크가 터지며 그룹은 1차 위기를 맞았다. 가전사업은 대우그룹으로 넘겼다. 그리고 ‘전선’이라는 본업에 충실했다. ‘내실 경영’은 곧 꽃을 피웠다. ‘초우량 기업’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살았다. 1955년 창업 이래 2008년까지 54년 연속 흑자를 냈다.

방심했던 걸까, 아니면 욕심이 많았던 탓일까. 2004년 2대 오너인 설원량 회장의 갑작스러운 타계 이후 대한전선은 사업 다각화에 매달렸다. 남광토건 무주리조트 쌍방울 등 비주력 사업체를 잇달아 사들였다. 업계는 대한전선의 진격을 놀라워했다. 진로채권에 3000억원을 투자해 순이익만 3000억원 이상을 남겼다. 탄력을 받은 대한전선은 당시 세계 1, 2위를 다투던 이탈리아 전선업체 프리즈미안의 지분 인수까지 손을 댔다. 하지만 이 와중에 한때 1조원을 웃돌던 사내 유보금은 바닥을 드러냈다. 2008년 이후 몰아닥친 글로벌 금융위기는 무리한 확장 경영에 비수를 꽂았다. 2012년 그룹의 운명은 채권은행으로 넘어갔다. 58년 만에 설씨 일가는 대한전선 경영에서 손을 뗐다.
옛 대한전선 마지막 명맥 대한광통신…'광나는 재기' 시작됐다
1분기 사상 최대 실적…본격적인 성장 기대

설경동 회장의 손자인 설윤석 전 대한전선 사장은 대한광통신이라는 중소기업에 겨우 둥지를 틀었다. 매출은 1000억원 안팎. 본토를 호령하던 장수가 변방으로 밀려난 꼴이었다. 지분율은 설씨 일가를 모두 합쳐 10% 정도. 아직 경영 일선엔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대한광통신의 주력 품목은 통신용 광섬유. 한때는 잘나갔다. 2000년대 초반 정보기술(IT) 투자 붐이 일었을 때는 광섬유 가격이 ㎞당 100달러를 넘기도 했다. 하지만 거품은 곧 꺼졌다. 2014년엔 단가가 6달러대로 추락했다. 터널의 끝은 작년부터 보이기 시작했다. 기폭제는 중국 정부의 대대적인 통신망 투자. 광섬유 가격이 오름세로 돌아섰다. 최근 1년 새 30% 이상 뛰었다. 시장 환경도 우호적으로 변했다. 광섬유는 부족한데 코닝 등 글로벌 업체들은 대규모 투자를 꺼렸다. IT 거품 붕괴 때 겪은 트라우마 때문이다. 당분간 광섬유가 귀한 대접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광섬유는 프리폼(preform)이라고 불리는 모재(母材)에서 뽑아낸다. 광섬유 가격이 오르면 가장 수혜를 보는 곳은 모재 생산업체다. 대한광통신은 이런 모재 원천 기술을 가진 국내 유일 업체다. 죽기 살기로 생산 원가도 25%가량 낮췄다.

대한광통신은 24일 1분기 실적을 발표했다. 모처럼 좋았다. 매출 323억원에 33억원의 흑자(영업이익)를 냈다. 안산 공장에서 만난 임직원들은 여전히 조심스러워했다. 대부분 옛 대한전선 출신이다. 오치환 대표는 “지켜봐 달라”는 말을 반복했다. “올해 흑자 전환하고, 무차입 경영도 가능할 것”이라는 설명이 따라붙었다.

대한광통신은 ‘새로운’ 다각화를 준비하고 있다. ‘비밀 병기’가 많다고 했다. 국방용 레이저에 들어갈 광섬유를 연구 중이고, 암을 표적치료하는 데 들어가는 제품도 개발하고 있다. 오 대표는 “오랜만에 증권사 애널리스트 등을 대상으로 한 기업설명회(IR)를 열기로 했다”며 “중장기적으로 생산설비도 두 배가량 늘릴 계획”이라고 했다. 시장은 벌써 ‘부활의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SK증권은 이날 보고서를 내고 “본격적인 실적 성장 구간에 진입했다”고 평가했다.

안산=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