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으로 생산가능인구 감소…노동개혁 본격 시작도 못 해
잠재성장률 하락 관측에 무게…전문가 "과감한 재정·통화정책 절실"


최근 들어 한국경제의 상황을 설명할 때 '조로(早老) 경제'라는 비유가 유독 자주 등장한다.

경제발전 단계상 한국의 경제는 아직 한창 질주를 할 시기임에도 오래전에 선진국 반열에 오른 국가들처럼 인구구조, 성장률 등이 모두 정체되고 있다는 뜻이다.

5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은 지난해 10위를 기록, 2년 연속 두 자릿수 순위에 머물렀다.

더 우려되는 것은 성장률의 하락 속도가 예상보다 훨씬 빠르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은 저출산 고령화 등 구조적 요인과 겹쳐지면서 한국의 잠재성장률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관측에 힘을 싣고 있다.

최근 한국경제가 반등의 모멘텀을 마련하지 못하고 고전하는 것은 일시적 요인 탓이 아니라 한국의 성장 동력 자체가 고갈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 10년마다 약 2%포인트씩 추락하는 성장률…'또 떨어졌고, 또 떨어질 것'

우리나라의 성장률은 1990년대 중반까지 두 자릿수 성장을 유지하며 쾌속 성장을 이어갔다.

OECD에 가입한 1996년 한국경제 성장률은 7.6%였다.

이는 당시 OECD 회원국 평균(2.9%)의 2.6배에 달할 만큼 높은 수준이었다.

1990년대 후반 불어닥친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로 1997∼1998년 성장률이 큰 폭으로 내리기도 했지만 1999년 11.3%로 다시 두 자릿수 성장률을 회복하며 OECD 국가 중 성장률 1위로 올라섰다.

하지만 한국 경제성장률은 2002년 7.4%로 반짝 회복한 것을 제외하고 이후 단 한 번도 7% 이상 올라서지 못했다.

2010년대 들어서는 아예 4% 밑으로 떨어졌고 최근에는 3% 성장도 버거운 모습이다.

한국경제는 2015·2016년 각각 2.6%, 2.7% 성장하며 2년 연속 2%대 성장에 머물렀고 올해도 경기침체가 계속되고 있어 3%대 성장 가능성은 크지 않은 상황이다.

10년간의 성장률 평균을 계산해보면 우리 경제의 성장 폭 둔화가 눈에 띄게 드러난다.

1990년대(1990∼1999년) 우리 경제의 연간 성장률 평균은 7.13%였다.

이어 2000년대(2000∼2009년) 4.68%로 둔화한 데 이어 2010년대(2010∼2016년)에는 3.44%까지 추락했다.

◇ 생산성 답보, 생산가능인구 감소…잠재성장률 하락 가능성

한국경제의 성장률 하락세가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되면서 잠재성장률 자체가 하락했다는 분석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잠재성장률은 가능한 생산요소를 모두 투입해 인플레이션 없이 최대로 이뤄낼 수 있는 성장률을 뜻한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올해 초 "최근 수년간 성장률이 2%대를 유지하고 있고 얼마 전 통계청에서 인구 추계를 새로 발표했다"며 "잠재성장률에도 변화가 있었을 것이기 때문에 조사국에서 다시 추정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사실상 2%대 후반까지 떨어졌을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이 총재는 잠재성장률 하락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그 원인으로 저출산 고령화 등 인구 요인을 꼽았다.

통계청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장래인구추계를 보면 2015년 73.4%였던 생산가능인구 비중은 올해를 시작으로 감소하기 시작해 2065년 47.9%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측됐다.

2001년 1.29명이었던 합계출산율은 하락세를 지속해 지난해 1.17명까지 곤두박질쳤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지난 1일 한국경제가 '성장판 조기 폐쇄'에 직면해있다면서 '국내총생산(GDP) 2만 달러대, 연 2%대 성장, 세계 경제 2% 선 돌파 실패'라는 함정에 빠져있다는 비관적인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최근 대내외 악재가 겹치면서 경기 불황이 장기화하고 있을 뿐 잠재성장률 자체가 하락한 것은 아니라는 분석도 있다.

정책적 수단을 동원하면 생산성 하락, 생산가능인구 감소 등 구조적 장애물도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저력이 아직 한국경제에 남아있다는 것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경기침체 상태에서 잠재성장률을 추정하면 더 낮게 추정되는 경향이 있다"라며 "잠재성장률로 추정되는 값들이 내려간 것이며 잠재성장률 자체가 하락했다고 보지는 않는다"라고 말했다.

◇ "생산성 향상, 구조개혁 시급…적극적인 재정·통화정책 절실"

전문가들은 한국이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생산성 향상, 인구구조 개선, 노동개혁 등의 과제를 시급히 풀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구조개혁을 통해 경직적인 산업관계를 혁신하고 실효성 있는 저출산 고령화 대책을 내놔 생산가능인구 감소에도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문장은 "산업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경직적인 측면이 있다"라며 "정부가 앞장서서 기업을 이끌어 가는 등 기존의 성장 공식을 뒤바꿔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김천구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생산가능인구에서 빠져있는 여성 노동력을 시장으로 더 끌어들여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라며 "기업은 계속 신성장 부문 등 다양한 산업을 고부가산업으로 육성할 필요가 있다"라고 제언했다.

이어 "자녀 양육비, 교육비 등을 지속해서 낮추는 안을 포함, 저출산 고령화에 대응할 수 있는 종합적인 해결책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구조적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가 재정·통화정책을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집행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성태윤 교수는 "지금 재정을 확장한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긴축적이고, 금리를 낮춘다고 하지만 여전히 실질 금리는 낮지 않다.노동시장 개혁은 아예 건드리지도 못했다"라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이런 상황에서 경기침체는 너무나도 당연한 결과"라며 "이미 일찍부터 생산가능인구 감소를 경험한 일본의 경제가 회복되고 있듯이 우리도 정책 수단을 동원해 구조적 요인들을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세종=연합뉴스) roc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