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EU·일본 물가 줄줄이 올라…사라지는 디플레 공포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수년간 미국 일본 유럽 등 세계 주요국의 걱정은 디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 하락)이었다. 금리를 제로(0) 수준까지 끌어내린 것도 모자라 양적완화로 돈을 대규모로 풀었지만 물가가 좀체 오르질 않았다. 물가가 오르지 않는 것은 경기가 살아나지 않는다는 신호여서 애를 태웠다.

최근 들어 상황이 급격히 달라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과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일본에서 소비자물가와 임금이 조금씩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고 2일 보도했다. 중앙은행들의 초저금리 정책에 힘입어 글로벌 경제를 억눌러온 ‘예외적인 저(低)인플레이션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는 증거라고 WSJ는 평가했다.

유럽연합(EU) 통계청이 1일(현지시간) 발표한 유로존의 1월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기 대비 1.8% 올랐다. 약 4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유럽중앙은행(ECB)의 물가상승률 목표치 2%에 근접했다. 작년 1월 배럴당 20달러대로 떨어진 유가가 1년 새 50달러대 초반으로 두 배 오른 영향이 컸다. 프랑스와 스페인의 지난 1년간 물가상승률은 각각 1.6%, 3%로 시장 예상치보다 높았다.

채권시장도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올려 잡고 있다. 외신에 따르면 독일 채권시장에 반영된 10년간 물가상승률 전망치는 지난해 11월 연 1.1% 수준이었으나 1일엔 연 1.36%로 높아졌다. 같은 기간 일본 채권시장 물가상승률 전망치는 연 0.45%에서 0.61%로 뛰었다.

미국에서도 임금 및 물가 상승 압력이 커지고 있다. 미국 노동부는 임금 및 복리후생 비용을 평가하는 미국 고용-비용지수가 2010~2014년 평균 2%에서 지난해 2.2%로 상승했다고 분석했다. 작년 12월 미국 민간부문 근로자의 시간당 임금은 전년 동기와 비교하면 2.9% 올랐다. 고용주들이 근로자를 확보하기 위해 임금을 올리는 추세라는 것이다.

리서치 회사인 판테온 매크로이코노믹스의 이언 셰퍼슨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지금은 인플레이션을 유도할 수 있는 요인이 디플레이션을 불러올 요인보다 많은 시기”라고 분석했다. WSJ는 이런 변화가 주요국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주요국 물가 상승세가 꺾일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돌발 변수로 경제가 충격을 받거나 유가 등 에너지 가격이 급락하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