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국내 기업의 화두는 ‘생존’이었다. 그만큼 경영 환경이 녹록지 않았다. 경제성장률은 4분기 연속 0%대(실질 국내총생산·GDP 기준, 전분기 대비)에 머물렀다. 세계 경기 침체와 중국발(發) 공급과잉 현상도 이어졌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시행과 ‘최순실 사태’ 등 국내 변수도 기업의 발목을 잡았다. 악화된 경영 환경이 기업들을 짓눌렀지만 위기를 기회로 만든 기업인도 있었다. 이들은 뚝심 있는 투자, 신(新)시장을 내다보는 안목, 글로벌 현장 경영 등으로 굵직한 성과를 거뒀다. 한국경제신문은 2016년을 자신의 해로 만든 최고경영자(CEO) 5명을 꼽았다.
진두지휘 리더십, 현장 누빈 멤버십 … 열정100℃ 도전은 계속된다
발상 전환으로 경기 침체 넘은 정용진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올해 경기 침체로 어려움을 겪은 유통업계에서 유일하게 빛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정 부회장은 유통업계의 유일한 성장 돌파구로 꼽히는 복합쇼핑몰 사업을 주도했다. 신세계가 지난 9월 경기 하남시에 연 ‘스타필드하남’은 쇼핑과 엔터테인먼트를 결합한 새로운 쇼핑몰로 인정받고 있다. 개점 후 100일간 방문자는 700만명을 웃돌았다.

신세계는 코엑스몰 운영권과 면세점 특허도 잇따라 따냈다. 서초구(면세점)-강남구(코엑스몰)-하남시(스타필드)를 잇는 정 부회장의 강남권 신세계 벨트 구상이 완료됐다. 1인 가구 증가와 함께 이마트의 자체상표(PB) 상품 매출도 늘어나고 있다. 정 부회장이 상품 개발에 직접 참여하는 피코크와 노브랜드는 모두 연매출 1000억원이 넘는 브랜드로 성장했다.

바이오 새 역사 쓴 서정진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은 올해 바이오시밀러(항체의약품 복제약) 분야에서 독보적인 성과를 냈다. 지난 4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류머티즘 관절염 치료 바이오시밀러인 ‘램시마’의 판매 허가를 받았다. 해외 제약기업이 개발한 바이오시밀러가 미국에서 허가를 받은 것은 램시마가 처음이다. 12월에는 유럽에서 혈액암 치료제 리툭산의 바이오시밀러 ‘트룩시마’ 판매 승인이 나왔다. 항암 바이오시밀러로는 첫 허가 제품이다. 셀트리온은 2013년 유럽으로 램시마 수출을 시작한 이후 3년 만인 올 9월 누적 수출액 1조원을 달성했다. 국내 단일 의약품으로 수출 1조원을 돌파한 첫 사례다.

글로벌 공략 성과 낸 이해진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은 올해 글로벌 시장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냈다. 일본 메신저 자회사인 라인은 7월 도쿄와 미국 뉴욕 증시에 동시 상장했다. 2011년 서비스 출시 이후 단 5년 만에 시가총액 10조원의 글로벌 기업이 됐다. 이번 상장으로 확보한 현금도 1조5000억원에 달한다. 지난해 9월 선보인 동영상 채팅 앱(응용프로그램) 스노우도 일본 중국 등에서 인기를 끌면서 최근 가입자가 8000만명을 넘어섰다. 네이버는 이 같은 성과에 힘입어 국내 인터넷 기업으로는 처음 지난 3분기 분기 매출 1조원 시대를 열었다.

반도체·디스플레이 신화 이끈 권오현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이 진두지휘한 삼성전자 부품(DS) 부문은 지난 3분기 4조4000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회사 전체 영업이익(5조2000억원)의 84%에 달한다. 4분기와 내년 실적은 더욱 나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D램과 낸드플래시,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패널 등의 수요가 점차 늘어나기 때문이다. 단순히 실적만 좋은 게 아니다. D램과 입체(3D) 낸드플래시 분야에서는 독보적인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중소형 OLED 패널 시장의 9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올해 초 LCD(액정표시장치) 라인에서 대규모 불량이 발생해 1분기 2720억원의 적자를 냈지만, 4월 권 부회장이 겸임 CEO로 투입된 이후 체질을 개선하는 데 성공했다.

LG전자 원톱 부회장 오른 조성진

조성진 LG전자 부회장이 이끈 LG전자 생활가전(H&A)사업본부는 역대 최고 실적을 거뒀다. H&A사업본부의 올 영업이익은 사상 최초로 1조원을 돌파해 1조5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1~3분기 누적 영업이익만 해도 1조1843억원에 이르고 있다. 그가 주도한 신개념 제품이 시장에서 인기를 끈 결과다. 통돌이와 드럼세탁기를 합친 트윈워시, 수납공간을 최대화한 냉장고 매직스페이스, 초(超)프리미엄 브랜드 ‘LG 시그니처’ 등이 조 부회장 작품이다. 이를 인정받아 조 부회장은 지난 1일 LG전자의 ‘원톱 부회장’ 자리에 올랐다.

도병욱/이호기/조미현/강진규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