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석유화학 구조조정 작업이 3개월째 겉돌고 있다. 정부는 일부 석유화학 품목을 공급 과잉으로 진단하고 감산과 업체 간 인수합병(M&A)을 독려하고 있지만 성과를 못 내고 있다.

유화(油化) 업계에선 “업종 특성을 모르는 소리”라는 냉소적 반응이 나온다. 정부가 업종 특성을 모르고 구조조정에 나섰다 실패한 해운업에 이어 유화업종에서도 헛발질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와 유화업계의 갈등은 산업통상자원부가 구조조정 방안을 발표한 지난 9월30일부터 뚜렷했다. 당시 산업부는 컨설팅 업체 베인앤드컴퍼니 분석을 토대로 4개 품목을 공급 과잉으로 진단하며 처방책을 내놨다.

페트병 원료인 테레프탈산(TPA)과 저가 플라스틱용 장난감 원료인 폴리스티렌(PS)은 즉시 감산하고 파이프 소재인 폴리염화비닐(PVC)과 합성고무(BR·SBR)는 고부가 제품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특히 TPA는 구조조정이 가장 시급한 품목으로 꼽으며 감산 수단으로 M&A 등을 제시했다. 하지만 업계는 “M&A를 하고 싶어도 매물이 없다”고 항변한다. 현재 국내 TPA 생산업체는 한화종합화학(생산량 연 200만t), 삼남석유화학(180만t), 태광산업(100만t), 롯데케미칼(75만t), 효성(42만t) 등 5개사다. 이 중 효성과 롯데케미칼은 생산량 90% 안팎을 그룹 내에서 자체 소비하고 있어 “우리는 M&A와 무관하다”는 반응이다. 태광산업도 M&A 얘기만 나오면 “회사를 팔 생각이 전혀 없다”며 펄쩍 뛴다.

4대 공급 과잉 품목 모두 연초 대비 가격이 적게는 10% 이상, 많게는 50% 이상 올라 정부의 공급 과잉 진단 자체도 무색해졌다. 업계에선 “구조조정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얘기도 나온다. 그나마 범용 제품을 고부가화하는 작업은 업계도 속도를 내고 있다. LG화학이 최근 여수공장의 폴리스티렌 생산라인 두 개 중 한 개를 고부가 합성수지(ABS) 생산라인으로 전환하기로 한 게 대표적이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