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기준 전 세계 190여개 나라 중에서 1인당 국민소득(GDP 기준)이 3만달러를 넘는 곳은 단 25개국이다.

룩셈부르크 등 11개국은 5만달러가 넘었고, 스웨덴 등 9개국은 4만달러대, 프랑스 등 5개국은 3만달러대를 나타냈다.

이들 국가가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에서 3만달러를 달성할 때까지 걸린 시간은 평균 8.2년이었다.

우리나라는 지난 2006년 1인당 GDP 2만달러대에 진입했지만 10년이 지난 올해도 3만달러 달성 실패가 확실시된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내후년인 2018년에야 겨우 3만달러대 진입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됐다.

국제통화기금(IMF)은 그 시점을 2020년으로 보고 있다.

이처럼 한국 경제가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의 벽 앞에서 가로막힌 것은 한국경제 전체의 활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우리 경제의 10년간 성장률 평균을 계산해보면 1990년대(1990∼1999년) 7.13%에서 2000년대(2000∼2009년) 4.67%로 둔화된데 이어 2010년대(2010∼2015년) 들어서는 3.55%까지 떨어졌다.

2014년(3.3%)을 제외하고는 최근 수년간 2%대 성장을 벗어나지 못했고 올해도 2% 성장이 확실시된다.

특히 올해 한국경제는 수출 부진 지속에다가 최근에는 소비 등 내수 둔화까지 맞물리면서 침체의 골이 깊어지는 모습이다.

정유년 새해가 눈앞으로 다가왔지만 한국경제는 여전히 활기찬 옛 모습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

◇ '아, 옛날이여!'…끝없는 수출부진

이같은 한국경제의 부진은 그동안 '성장 엔진'이었던 수출의 추락과 무관하지 않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1970년대 한국의 수출액 증가율은 연평균 38.5%(1972∼1980년·산술평균)에 달하며 고도성장을 견인했다.

호황이 이어지던 1980년대에도 수출액은 해마다 평균 14.6%씩 늘었다.

그러나 수출 증가 폭은 외환위기가 덮친 1990년대에는 10.6%, 글로벌 금융위기가 덮친 2000년대에는 11.4% 수준으로 낮아졌다.

2011년 이후 5년간은 2.8% 수준에 그쳤다.

최근 수출 동향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황은 더 나쁘다.

월별 수출액은 작년 1월부터 올해 7월까지 역대 최장인 19개월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거듭했다.

8월 2.6% 증가로 반전했지만, 이후에도 뚜렷하게 회복세를 이어가지 못한 채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수년째 이어져 온 글로벌 경기 부진의 영향이 크다지만, 한국의 수출 경쟁력이 주변 국가보다 더 많이 약해지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에 따르면 주력 수출시장에서 경쟁우위를 확보한 우리나라 기업은 10개 중 서너 곳에 그치고 있다.

경쟁력 수준이 시장에서 우위를 보이는 국내 기업은 36.7%뿐이었고, 45.6%가 동등, 17.7%가 열위인 것으로 조사됐다.

3년 전과 비교하면 열위 기업은 15.8%로 1.9%포인트(p) 늘어난 반면, 우위 기업은 0.8%포인트 증가에 그쳤다.

수출규모 자체도 수위에서 밀리는 분위기다.

세계무역기구(WTO)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한국의 수출액 감소 폭은 9.9%(전년 동기 대비)로 전 세계 주요 71개국의 평균인 5.4%보다 컸다.

이 때문에 수출액 6위였던 한국은 프랑스에 밀리며 7위로 한 계단 떨어졌다.

◇ 구조조정·청년취업난 등 일자리사정 악화…내수부진으로 이어져

수출 부진의 빈자리를 메워야 할 내수 역시 부진하기는 마찬가지다.

수출 부진이 생산 감소로, 다시 소득과 일자리 감소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일자리 사정이 심각하다.

실업률은 청년층을 중심으로 치솟았고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비정규직만 눈에 띄게 늘면서 일자리의 질 자체도 악화하고 있다.

지난해 취업자수(전년 동월 대비)는 3개 달을 제외하고 매달 30만명 이상 증가했지만 올해는 20만명대에 주로 맴도는 모양새다.

올해 11월까지 6개 달의 취업자수 증가 폭이 20만명대로 주저앉았고 나머지도 대부분 30만명대 초반에 머물렀다.

취업자수 증가세가 둔화하면서 실업률도 치솟았다.

특히 청년실업률이 외환위기 수준으로 악화하면서 사회 전체의 경제 활력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

그나마 늘어난 일자리마저 처우가 좋지 않은 비정규직이 대다수이고 대부분 고령층에 몰려있다.

올해 8월 기준 임금근로자 중 비정규직 근로자는 644만4천명으로 1년 전보다 2.8%(17만3천명) 늘었지만 정규직 근로자는 1.1%(14만2천명) 증가하는 데 그쳤다.

비정규직 근로자는 60세 이상이 22.8%로 가장 비중이 컸고 50대가 21.5%를 차지해 50대 이상이 전체의 절반에 육박했다.

일자리 사정 악화는 자연스럽게 가계소득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

올해 3분기 가구당(2인 이상) 월평균 소득은 444만5천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0.7% 증가했지만 물가를 고려한 실질소득은 오히려 0.1% 감소했다.

실질소득은 작년 3분기 증가율 0%를 기록한 뒤 4분기 -0.2%, 올 1분기 -0.2%, 2분기 0.0%로 이어지며 좀체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2003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단 한 번도 줄지 않았던 가구주 연령이 40대인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지난 3분기 처음으로 1천569원(-0.03%) 감소했다.

금융위기 여파에 시달리던 2008∼2009년에도 40대 가구는 전 연령대 중 유일하게 증가세를 유지하며 전체 소득의 낙폭을 줄이는 역할을 했지만 지난 3분기 결국 뒷걸음질 치고 만 것이다.

가계소득이 쪼그라들면서 블랙프라이데이, 자동차 개별소비세 인하 등 정책적 노력으로 근근이 맥을 유지하던 소비도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특히 생활필수품 소비까지 줄고 있어 심각한 내수 타격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실제로 올해 7∼9월 전국의 2인 이상 가구의 식료품·비주류음료 지출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3.2% 감소했다.

식료품과 비주류음료 지출은 작년 4분기 이후 4개 분기 연속으로 줄고 있다.

2003년 관련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이후 최장기간 감소세다.

◇ "성장률 1%대 추락하면 일자리 안생긴다…규제개혁·환율정책 필요"

전문가들은 한국 경제 전반에 걸친 구조적인 문제점을 해결하지 않는다면 장기간에 걸쳐 떨어진 경제 활력을 되돌리기 어려울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이제까지 정부가 경기부양을 위한 정책 카드를 많이 소진한 만큼 보다 미시적인 대응책을 통해 단기적인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문도 나왔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1991년까지 약 30년간 한국 경제가 연평균 9.8%씩 고도성장을 했는데, 2012년부터는 2%대 저성장기에 들어섰다"면서 "경제가 더 이상 추락해서는 안된다.

앞으로 성장률이 1%대로 떨어지면 새로운 일자리가 생기지 않는 상황이 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오 교수는 경제 활력이 떨어지는 가장 큰 원인으로 기업의 국내 재투자를 가로막는 각종 규제를 꼽았다.

그는 "전 세계적으로 해외에 나간 자국 기업을 다시 불러들이기 위한 '리쇼어링(reshoring) 노력을 하고 있는데, 한국은 규제를 강화하기만 했다.

연간 100억달러 수준이던 해외직접투자 규모가 최근 300억달러까지 늘었다.

수출할만한 기업이 다 밖에 나가니 수출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다시 말해 국내 투자를 늘리고 고용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과감한 규제개혁을 통해 기업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금융·의료 등 고부가가치 분야 서비스업 육성, 생산성을 끌어올리기 위한 노동부문 구조개혁 등도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김광석 한양대 겸임교수는 "정부가 쓸 수 있는 경기부양 카드가 제한적이다.

이미 많은 정책을 쓴 데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더 낮추기도 어렵다"면서 "곳곳에서 발견되는 위기 요인을 잘 파악해 이를 모면할 수 있는 정책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금리나 환율 등 거시적인 변수의 변동성이 높아지고 있다며 "거시 정책보다는 미시 정책에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구체적으로 구조조정이 본격화하는 산업에서 발생하는 유출 인력을 다른 곳으로 연결해주는 매칭 작업, 부채 상환능력이 떨어지는 가구를 중심으로 채무상환을 보전해주거나 저소득층 월세 부담을 지원하는 등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세종연합뉴스) 박대한 민경락 김동호 기자 pdhis959@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