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한 대기업 인사팀의 김모 과장은 갑자기 12월에 우수 직원 시상식이 잡혀 행사장을 급히 예약해야 했다. 연말 송년행사 성수기라 크게 기대하지 않고 서울에 있는 특급호텔들에 문의했는데 예약이 어렵지 않았다.

300명 이상 들어가는 연회 장소 중 통상적으로 가장 먼저 예약이 끝나는 서울롯데호텔은 저녁시간 기준으로 다섯 개 날짜, 웨스틴조선호텔은 두 개 날짜가 비어 있었다. 롯데호텔 관계자는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여파가 있었던 작년에도 그랜드볼룸 예약이 꽉 찼는데 지금은 그때보다도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호텔업계에 연말 대규모 송년회 특수가 사라졌다. 불황에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영향을 받는 데다 어수선한 정치 상황까지 겹쳐 나타난 현상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서울 시내 주요 5성급 호텔 10곳을 알아본 결과 7개 호텔에서 5~40%가량 예약률이 떨어졌다고 응답했다. 3개 호텔만 작년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답했다.

송년회가 몰리는 12월 넷째주 이후(19~31일)에도 아직 대형 연회장을 빌릴 수 있는 곳이 적지 않다. 200명 가까이 들어갈 수 있는 웨스틴조선호텔 오키드룸은 21일과 26일, 30일 예약이 잡혀 있지 않고, 250석 규모의 쉐라톤강남팔래스 다이너스티홀도 23일 저녁이 비었다. 그랜드힐튼호텔 그랜드볼룸은 22일과 23일을 빼고 연말 성수기 모든 날짜에 예약할 수 있다.

특급호텔들은 정부와 공공기관 예약 감소 영향이 가장 크다고 설명한다. 정부청사가 세종시로 이전한 뒤 정부 행사의 호텔 이용이 줄기 시작했고, 최근엔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것. 특히 호텔에서 각종 행사를 많이 하던 문화체육관광부가 발길을 끊은 게 직격탄이 됐다고 한다. 작년엔 메르스로 인한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문체부와 한국관광공사 중심으로 호텔 등에서 연말 모임을 많이 열었는데 올해는 최순실 게이트와 탄핵정국 여파로 각종 송년 모임이 모두 취소됐다는 게 호텔업계의 전언이다. 웨스틴조선호텔 관계자는 “김영란법 시행 뒤 공무원들이 호텔에 오는 걸 꺼렸는데 정치적 상황 등이 악화되면서 협회나 기업들도 연말 송년 모임을 부담스러워하고 있다”고 전했다.

수백명이 모이는 대규모 연회와 달리 가족이나 친구끼리 함께하는 소규모 송년 모임은 비교적 활발한 편이다. 주요 호텔 레스토랑 중에는 연말 예약률이 작년보다 높은 곳도 많다.

신라호텔 뷔페식당 더 파크뷰의 점심 가격은 평소 10만5000원이지만 12월16일부터 연말까지 15만9000원으로 오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2월 예약률이 100%에 가깝다. 롯데호텔과 웨스틴조선호텔의 뷔페식당 12월 예약률도 비슷하다. 리츠칼튼과 쉐라톤디큐브시티호텔 등은 가족 단위 송년 모임을 늘리기 위해 단골을 중심으로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 김영옥 그랜드하얏트호텔 마케팅커뮤니케이션팀장은 “호텔마다 소규모 연말 모임을 유치하거나 가족단위 고객을 잡기 위해 특색 있는 패키지 상품을 내놓고 있다”고 말했다.

정인설/고은빛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