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금리인상 전망에 이자부담 커져…소비위축 악영향
집단대출 등으로 가계부채 증가세 한동안 이어질 듯


가계부채 문제가 한국경제에 먹구름을 잔뜩 드리우고 있다.

최근 '최순실 게이트'에 따른 국정 혼란과 내수, 수출 부진 등으로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가계부채가 성장 동력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

한국은행이 24일 발표한 가계신용 통계에 따르면 지난 9월 말 현재 가계부채는 1천295조7천531억원으로 3분기(7∼9월)에만 38조1천699억원(3.0%) 늘었다.

여기에 지난 10월 은행권의 가계대출 증가액 7조4천867억원억원(주택금융공사 모기지론 양도분 포함)을 더하면 전체 규모가 1천300조원을 훌쩍 넘는다.

정부가 그동안 가계부채 급증세를 잡으려고 여러 가지 대책을 내놓았지만, 효과는 미약한 것으로 평가된다.

부채는 결국 가계의 지갑을 닫게 하고 장기적으로 금융안정을 훼손할 수 있는 위험요인으로 꼽힌다.

◇ 국민 1인당 2천500만원 빚더미…고금리 2금융권 대출 급증

가계부채는 총량뿐 아니라 질적으로도 우려스런 상황이다.

가계부채가 1천300조원을 돌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9월 말 가계신용 잔액에 10월 은행권의 가계대출 증가액만 합쳐도 가계부채는 모두 1천303조2천398억원에 달한다.

당초 올해 가계부채 급증세를 감안해도 연말에야 1천300조원에 도달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지만, 증가 속도가 예상보다 훨씬 빠른 셈이다.

가계부채 총액을 작년 말(1천203조992억원)과 비교하면 올해 들어 증가액이 100조원이나 된다.

작년 11월 1일 기준 한국 인구가 5천106만9천명(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로 계산하면 국민 1인당 평균 2천552만원의 빚이 있는 셈이다.

여기에 자영업자의 빚을 더하면 실질적인 가계부채는 1천600조원을 넘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 10월 말 은행권의 자영업자 대출은 258조1천억원이고 비은행권의 자영업자 대출은 한은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가계부채 총량에 대한 경고음은 점점 커지고 있다.

국제결제은행(BIS)은 지난 9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한국의 민간부채 위험을 '주의'로 분류했다.

특히 제2금융권의 가계대출이 우려스런 대목이다.

3분기에 상호저축은행, 새마을금고, 신협 등 비은행 예금취급기관의 가계대출 증가율은 4.2%(11조1천억원) 늘었다.

같은 기간 예금은행의 가계대출 증가율 2.9%(17조2천억원)보다 1.3% 포인트 높은 수준이다.

올해 도입된 은행권의 여신심사 가이드라인으로 은행권의 대출수요가 비은행권으로 몰린 '풍선효과'가 이어진 것이다.

비은행권 대출의 이자 부담이 은행보다 훨씬 크다는 점에서 가계부채의 질이 나빠질 것으로 볼 수 있다.

한은의 금융기관 가중평균금리 통계를 보면 지난 9월 저축은행의 가계대출 금리(신규취급액 기준)는 연 15.19%로 예금은행(3.03%)의 5배 수준이다.

신용협동조합(4.46%)과 상호금융(3.76%), 새마을금고(3.83%)의 일반대출 금리도 은행보다 훨씬 높다.

◇ 미국發 금리 상승에 빚 부담 커져…소비위축 부채질

금융시장의 핵심 키워드인 불확실성은 가계부채 문제에도 해당한다.

가계부채가 앞으로 얼마나 빠르게 더 늘어나고 한국경제에 어떤 충격을 줄지 예측하기 어렵다.

다급해진 금융당국이 가계대출 옥죄기에 나서고 있지만, 앞으로 가계부채 증가세가 한동안 이어질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한은은 작년 12월 금융안정보고서에서 아파트 분양 물량 등을 생각할 때 2017년까지 집단대출로 인한 주택담보대출 증가 규모가 월평균 약 3조∼4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집단대출은 일반적으로 분양 아파트 등의 입주(예정)자 전체를 대상으로 한 대출로 중도금, 이주비, 잔금대출을 포함한다.

가계부채는 민간소비 위축을 가져올 개연성이 크다.

그동안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가계부채가 늘어나는 현상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부채가 민간소비를 촉진한다는 목소리가 작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가계부채 증가 속도가 너무 빠른 탓에 부작용에 대한 위기감이 고조됐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지난 20일 내놓은 보고서에서 올해 하반기부터 가계부채가 소비 증가율에 미치는 효과가 '마이너스'(-)로 바뀐다는 분석을 내놨다.

가계의 소득 증가율이 미약한 가운데 채무부담이 커지면 지갑을 열기 어려워진다.

심지어 현대경제연구원은 내년에 가계부채가 소비 증가율을 0.63% 포인트 떨어뜨릴 것으로 추산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이 내년도 소비 증가율을 2.0%로 전망한 점을 고려할 때 가계부채의 부정적 효과가 상당히 크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더구나 미국의 금리 인상 전망이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불안감을 키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다음 달 0.25∼0.50%인 정책금리를 올리고 내년에 2차례 정도 인상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에 따라 최근 국내 은행의 대출금리도 오르고 있어 가계의 빚 부담이 커졌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지난 11일 금융통화위원회 회의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시장금리가 오르고 그것이 대출금리로 이어지고 한다면 가계부채 문제에 어려움이 가중된다"며 "단기적으로 취약계층의 어려움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가계의 대출구조도 변동금리 비중이 커서 금리 인상에 취약한 것으로 평가된다.

지난 9월 말 현재 은행권의 가계대출 잔액 가운데 65.4%는 시장금리 등에 연동된 변동금리 대출이다.

대출금리가 0.25% 포인트 오르면 가계의 채무부담은 연간 2조원 정도 늘어날 것으로 추산된다.

가계부채 문제가 안 그래도 어려운 내수에 커다란 악재로 다가온 것이다.

이미 국내 가계, 기업 등 경제 주체들의 심리는 최근 대내적으로 정국 혼란에다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과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 움직임 등으로 크게 위축된 상태다.

앞으로 가계부채가 연 2%대까지 떨어진 경제 성장률을 더 낮출 개연성이 있다.

나아가 가계부채가 금융불안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유의해야 한다.

가계부채가 전반적인 금융시스템 위기로 번질 개연성은 크지 않지만, 부실대출 증가로 금융기관의 건전성이 악화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서울연합뉴스) 노재현 기자 noja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