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시장 혼란 현실화…은행 주택대출 금리 5%로 상승
소비·투자 실물경제 영향도 시간문제…"취약고리는 서민 가계부채"

미국발 채권금리 급등으로 국내외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시장은 8년간 지속해 온 미국의 '제로금리' 시대가 사실상 막을 내리기 시작했음을 기정사실로 인정하는 분위기다.

앨런 그린스펀 전(前)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금리가 '정상수준'으로 회귀하는 동안 도전이 가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최근 몇 년간 부동산 경기부양을 위해 가계부채를 급격히 늘려온 한국경제에도 충격과 고통 감내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 '트럼플레이션' 기대에 美 장기채 금리 수직상승

한국은행 통계와 금융투자업계의 말을 종합하면 지난 9일 도널드 트럼프 미 대선 후보의 대통령 당선 이후 시중금리가 가파른 상승세를 기록하고 있다.

대선 결과가 나오기 전인 8일 1.85%였던 10년물 미 국채 금리는 16일 2.30%로 45bp(1bp=0.01%포인트) 급상승했다.

2013년 벤 버냉키 당시 미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돈줄 죄기를 시사하면서 국제금융시장이 '긴축발작(테이퍼 탠트럼)'을 일으킨 이후 가장 가파른 상승 폭이어서 '트럼프 탠트럼'이란 신조어까지 나왔다.

사실 미국의 채권금리는 대선 결과 이전부터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여왔다.

미국의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10월 중순 1.7~1.8% 수준에서 대선 직전 이미 2.1%대로 뛰었다.

국제유가 반등세와 미국의 경기회복 등으로 인플레이션 압력이 가속화할 것이란 분석이 주요 배경으로 작용했다.

월가에서는 상승 요인이 주기적 가격변동이 아닌 구조적인 요인 때문일 것이란 분석이 힘을 얻었다.

8년간 이어져 온 채권가격 강세(저금리)를 마무리할 시점이란 심리가 시장에 퍼진 것이다.

1조 달러대 인프라 투자 공약 등을 골자로 하는 '트럼프노믹스'의 등장은 고조된 시장 분위기에 기름을 부었다.

트럼프 행정부의 재정지출 확대가 결국 인플레이션을 압력을 늘리고 국채발행을 증가(국채가격 하락 및 채권금리 상승)시킬 것이란 '트럼플레이션'(트럼프+인플레이션) 기대 때문이었다.

◇ 국내은행 주택대출 5%대로↑…가계 이자부담 증가 현실화

국내 금융시장은 이미 비상상황이다.

서울 채권시장에서 국고채 10년물 금리는 트럼프 당선 이후 50bp 가까이 급등했다.

2013년 테이퍼 탠트럼 이후 가장 가파른 상승 속도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18일 금융협의회에서 "시장 불안이 확산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되면 적시에 안정화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

일본은행은 전날 채권시장 안정을 위해 국채를 일정 가격에 무제한 매입하겠다는 금리 안정화 대책을 내놓았다.

금리상승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조처다.

한국경제가 미국발 금리 인상에 주목하는 이유는 1천300조원에 육박하는 가계부채 부담 때문이다.

최근 한국신용정보원이 작년 6월 기준 전 금융권 대출보유자 1천800만명의 대출정보를 전수조사한 결과 36∼60세 중장년층 대출보유자의 1인당 평균 대출잔액이 8천만원에 달했다.

가계대출 금리상승은 곧바로 이들 가구의 이자 부담 상승으로 이어진다.

국내 시중은행 가계대출 금리상승은 이미 현실화했다.

은행의 대표적 고정금리 상품인 혼합형 주택담보대출의 신규 금리는 최근 연 5%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뛰었다.

금융당국도 사실상 가계부채 총량관리에 돌입한 상황이어서 대출금리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진웅섭 금융감독원장은 17일 14개 시중 은행장과의 간담회에서 "내년에도 가계대출 영업을 확대하기보다는 리스크관리에 중점을 둬 달라"고 주문했다.

이자 부담이 늘더라도 소득 증가가 뒷받침해 준다면 문제가 없지만, 가계의 실질소득은 오히려 줄어드는 추세다.

통계청의 가계동향을 보면 가계 실질소득 증가율은 작년 3분기 이후 5분기 연속 0% 이하를 기록하고 있다.

당장 연체율 증가로 인한 금융시스템의 문제는 발생하지 않더라도 늘어난 이자 부담은 소비를 짓누르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가계대출의 대부분은 주택담보대출이어서 금리상승이 더욱 본격화하면 부동산 시장에까지 충격을 미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금리상승은 가계는 물론 기업의 부담도 가중시킨다.

자금조달 비용 상승으로 기업의 투자가 위축되는 것은 물론 부채비중이 높은 기업의 재무구조 악화로 구조조정 파도가 한꺼번에 몰아칠 위험이 있다.

◇ 저소득층·자영업자부터 타격…가계부채 뇌관 우려

무엇보다 가장 우려되는 지점은 서민층의 고통이다.

금리상승으로 이자 부담이 늘어나면 저소득층, 자영업자, 고령자가 다수를 차지하는 한계가구가 무너지면서 우리 경제에 충격을 줄 수 있다.

한계가구는 금융부채가 금융자산보다 많고, 원리금 상환액이 가처분소득의 40%를 넘는 집들이다.

제2금융권 가계대출은 2013∼2015년 3년간 연평균 8.2% 증가했으나 올해 증가율은 13%대(상반기 기준)로 훌쩍 뛰었다.

제2금융권 여러 곳에서 돈을 빌린 다중채무자 비중은 올해 1분기 26.9%로 높아졌고, 저소득층 대출자 비중도 33.6%까지 올라왔다.

특히 자영업자 대출은 총부채상환비율(DTI)이나 담보인정비율(LTV) 적용에서 제외되는 데다 대부분 변동금리여서 금리상승 위험에 더욱 크게 노출돼 있다.

이주열 총재는 지난 11일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가계부채는 금융기관 부실화 등 시스템 리스크보다는 취약계층이 어려워지는 게 문제"라며 "정부도 이 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어 대책을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도 17일 서민·취약계층 지원 간담회를 열고 "금리 인상이 현실화되면 가계부채 관리에 부담이 될 뿐 아니라 고금리 대출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서민·취약계층의 고통이 커진다"며 서민금융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그린스펀 전 연준 의장은 최근 TV에 출연해 "금리가 역사적으로 정상수준인 3∼5%대로 복귀하기까지 도전이 가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2008년 이후 저금리에 익숙해 온 경제가 이를 되돌리는 과정에서 경제주체의 고통 감내가 불가피할 것이란 게 그의 지적이다.

(서울연합뉴스) 이지헌 기자 pa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