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주사 전환 첫 단계 해석도…내년 4월1일 분할·5월 상장 계획

현대중공업이 6개의 독립회사 체제로의 전환을 전격 결정하며 '컨틴전시 플랜' 가동에 들어간 것은 내년에 창사 이래 최악의 위기가 닥칠 것이라는 전망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성격이 짙다.

현대중공업의 올해 조선해양 부문 수주 실적이 목표의 12% 수준에 불과한 가운데, 내년에는 더 극심한 수주 가뭄이 예고돼 있기 때문이다.

16일 현대중공업에 따르면, 전날 이사회에서 사업분할과 분사를 통해 회사를 6개의 독립법인으로 만드는 방안이 통과됨에 따라 회사는 내년 4월1일부로 독립회사들을 출범시키기 위한 본격적인 절차에 돌입했다.

상장은 내년 5월에 할 계획이다.

현대중공업은 6개 독립회사 중 규모가 큰 조선·해양·엔진, 전기전자, 건설장비, 로봇은 사업분할 방식으로 4개 회사로 분사하고, 규모가 작은 그린에너지와 서비스는 현물출자 방식으로 독립시켜 자회사로 둘 계획이다.

따라서 기존 현대중공업은 내년 상반기 안에 ▲ 현대중공업(조선·해양·엔진) ▲ 현대일렉트릭앤에너지시스템(전기전자) ▲ 현대건설기계(건설장비) ▲ 현대로보틱스(로봇) 등 4개의 개별회사로 전환된다.

또 ▲ 현대중공업그린에너지(그린에너지)와 ▲ 현대글로벌서비스(서비스)는 각각 현대중공업과 현대로보틱스의 자회사로 편입된다.

분할되는 회사 중 가장 규모가 큰 곳은 현대일렉트릭앤에너지이다.

지난해 매출 2조6천865억원을 기록할 정도로 '알짜 사업부'였던 데다, 최근 수주 실적도 양호한 편이어서 전망이 밝다는 평가다.

임직원 수는 9월말 기준 2천677명이다.

두 번째로 규모가 큰 곳은 현대건설기계로 지난해 매출이 1조8천440억원에 임직원 수는 1천251명이다.

두산인프라코어, 볼보건설기계코리아에 이어 국내 시장 점유율 3위를 차지하고 있어서 역시 비조선분야 핵심사업부로 꼽힌다.

현대로보틱스는 지난해 7월 엔진기계사업부에서 분리돼 규모는 작지만 국내 유일 산업용 로봇을 독자 개발해 생산중이고 첨단의료용 로봇의 상용화도 앞두고 있어 전망이 좋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번 사업분할로 2만3천여명에 달하는 현대중공업의 인력 가운데 19%에 달하는 4천~5천명이 분사되는 회사로 옮겨갈 것으로 보인다.

고용은 그대로 유지되지만 직원들의 소속은 현대중공업에서 각 분할회사로 변경된다.

현대중공업은 내년 2월27일 주주총회에서 이를 최종 승인받을 계획이다.

전날 결정에 대해 현대중공업 노조가 반발하며 부분파업을 벌이기도 했지만, 이번 사안은 노조 동의가 필요 없는 사항이라 추진 일정에 차질은 없을 전망이다.

현대중공업이 분사라는 초강수 카드를 뽑아든 것은 극심한 수주 불황으로 당분간 업황이 개선되기 힘들 것이라는 판단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비조선 사업 부문의 분사는 현대중공업이 채권단에 제출한 자구안의 최종 단계에 포함돼 있었고 '최악의 상황'에서 취할 조치로 분류돼 있었으나, 그런 상황이 실제 도래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또, 조선에서 큰 이익을 내 비조선 부문에 투자하던 기존 방식을 유지하다가는 전혀 무관한 분야까지 조선업의 위기에 휩쓸려 다 같이 '공멸'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이번 분사로 향후 비핵심사업부의 지분이나 사업부 전체를 매각하기 쉬운 지배구조를 갖추게 됐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당장 현대중공업은 분사를 통해 재무구조 개선 효과부터 보게 된다.

분사하면서 7조원이 넘는 차입금 중 약 5조원을 분할되는 회사에 나눠 배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3분기 말 기준 168.5%에 달했던 현대중공업의 부채비율이 내년에 100% 미만으로 현격히 낮아져, 차입 여건이나 신용도가 개선되고 해외 수주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결정을 두고 현대중공업이 향후 그룹을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첫 단계로 보는 시각도 있다.

현대중공업은 '현대중공업→현대삼호중공업→현대미포조선→현대중공업' 구조로 돼 있는 순환출자를 해소하고, 장기적으로 그룹을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는 방안을 추진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 경우 분사 법인 중 현대로보틱스가 핵심계열사로서 지주사가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번 분사 결정에서 가장 주목받은 부분도 '알짜 회사'인 현대오일뱅크의 대주주가 현대중공업에서 현대로보틱스로 바뀌는 점이었다.

현대로보틱스는 부채 2조1천억원과 함께 현대오일뱅크 지분 91.1%를 가져오게 된다.

이는 현대오일뱅크 상장(IPO)을 대체한 결정이라는 해석도 있다.

(서울연합뉴스) 김연정 기자 yjkim84@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