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TO 무역분쟁 '대법관' 자리에 김현종 전 통상교섭본부장 내정
통상교섭본부장과 유엔대사 등을 지낸 김현종 한국외국어대 교수(사진)가 세계무역기구(WTO) 상소기구 위원으로 내정됐다. 지난 5월 미국의 반대로 연임이 좌절된 장승화 서울대 교수의 빈자리를 다시 한국인이 채우게 됐다.

산업통상자원부는 “WTO 상소기구 위원 선정위원회가 지난 3일(현지시간) 김 교수를 상소기구 위원 후보자로 선정해 WTO 분쟁해결기구(DSB)에 추천할 예정임을 회원국에 공식 통보했다”고 9일 밝혔다.

7명으로 구성된 WTO 상소기구 위원은 국가 간 무역분쟁에서 최종 결정을 내리는 ‘대법관’ 같은 역할을 한다. 임기는 4년이며 한 번 연임할 수 있다. WTO의 통상분쟁 해결 절차는 2심제로 소위원회(패널)가 1심, 상소기구가 2심(최종심)이다.

한국인 중에선 장 교수가 2012년 처음 상소기구 위원으로 선출됐다. 장 교수는 자국에 불리한 판정을 내릴 것 등을 우려한 미국의 반발로 연임에 실패했다.

김 교수는 노무현 정부에서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장관급)과 유엔대사를 지낸 국내 최고 통상전문가로 꼽힌다. 통상교섭본부장 시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해 협상 타결을 이끌었다. 이후 삼성전자 해외법무담당 사장을 거쳐 한국외국어대 LT(Language&Trade)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외교가에서는 단 7명뿐인 WTO 상소기구 위원을 한국인이 연달아 맡게 된 것을 상당히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이고 있다. 산업부 관계자는 “정부는 장 교수의 연임 좌절 이후 제네바 대표부 등을 통해 WTO 회원국과 후임 한국인 위원 선임을 위해 긴밀히 협의해왔다”며 “한국 통상외교가 오랜만에 거둔 성과”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올해 초 더불어민주당의 ‘인재영입 1호’로 입당하기도 했다. 정부는 김 교수의 WTO 진출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판단, 그의 정치 경력에 대해서는 문제 삼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당초 일본과 호주 출신 후보가 경합해 한국인의 선임 가능성이 높지 않았으나 막판에 ‘역전 드라마’가 연출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회원국 사이에서 한국인 후보가 가급적 그 자리를 대신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며 “미국도 김 교수가 과거 한·미 FTA를 주도한 인사인 만큼 호감을 갖고 흔쾌히 동의해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김 교수가 1999년부터 2003년까지 WTO 상소기구 사무국 등에서 법률자문관을 지낸 점도 높게 평가됐다는 후문이다.

김 교수의 위원 임명 여부는 오는 23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DSB 정례회의에서 최종 결정된다. 상소기구 위원 중 임기가 만료된 2명의 후임자를 선출하는 이번 회의에는 김 교수와 중국인 후보가 추천됐다. DSB는 상소기구 위원 후보가 추천되면 회원국 동의를 거쳐 위원으로 임명한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