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부진에도 정부의 추가경정예산 지원과 소비 진작책 등에 힘입어 그나마 버텼던 소매판매가 9월 들어 꺾였다. 삼성 갤럭시노트7 리콜 여파로 통신기기 판매가 크게 저조했다. 한경DB
경기 부진에도 정부의 추가경정예산 지원과 소비 진작책 등에 힘입어 그나마 버텼던 소매판매가 9월 들어 꺾였다. 삼성 갤럭시노트7 리콜 여파로 통신기기 판매가 크게 저조했다. 한경DB
지난 8월까지만 해도 경기지표는 ‘맑음’과 ‘흐림’이 교차했다. 생산투자 부진 속에서도 소비는 상대적으로 견조한 흐름을 이어갔고, 부동산 경기 호조를 배경으로 건설 부문이 경기 전반을 떠받치는 호재로 작용했다.

하지만 9월 들어 이런 흐름이 끊겼다. 정부의 부양책에도 불구하고 생산 소비 투자가 동시에 꺾이며 ‘빨간불’이 켜졌다. 건설 부문도 정점을 찍고 내리막길로 접어들어 경기 하강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지난 25일 공개된 3분기 성장률(0.7%)에 안도했던 시장은 예상 밖의 성적표에 “경기가 생각보다 더 빨리 나빠지고 있다”는 우려를 쏟아내고 있다.
생산·소비·투자 부진 '3중고'…"생각보다 더 빨리 나빠지고 있다"
악재가 겹친 소비 둔화

9월 소매판매(-4.5%)는 지난 9월2일 전격 단행된 삼성전자의 갤럭시노트7 리콜 타격이 컸다. 8월19일 출시 이후 호조를 보였던 갤럭시노트7의 판매 중단이 소비심리에 부정적인 영향을 줬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이 포함된 ‘통신기기 및 컴퓨터’ 판매는 전달보다 11.6%나 감소하며 소매판매 증감률을 0.8%포인트 끌어내렸다. 김광섭 통계청 경제통계국장은 “정보통신소매 판매가 17.7% 줄었는데 여기에 갤럭시노트7 사태가 상당 부분 영향을 줬다”고 설명했다.

에어컨 등의 구매를 부추겨 소매판매 실적에 긍정적인 영향을 줬던 ‘폭염 효과’도 9월엔 부메랑이 됐다. 에어컨을 포함한 전체 가전제품 판매는 8월 대비 12.6% 급감했다.

생산(-0.8%)은 한진해운 물류대란의 파고를 넘지 못했다. 제조업 생산은 현대자동차 파업 영향에서 다소 벗어나면서 소폭 반등했다. 하지만 한진해운의 해상운송이 차질을 빚으면서 운수업(-3.1%)이 포함된 서비스업 생산은 전월 대비 0.6% 감소했다.

건설수주도 30% 급감

올해 소비와 함께 국내 경기를 떠받쳤던 것은 건설투자다. 소비지표는 정부 정책이나 날씨에 따라 부침이 있었지만 건설투자는 부동산 경기의 ‘나홀로 호황’에 힘입어 매달 고공행진을 보였다. 하지만 9월 건설투자는 건축(-3.7%), 토목공사(-6.8%)가 모두 감소하며 전월 대비 4.7% 감소했다. 향후 건설 경기의 가늠자 역할을 하는 건설수주가 31.1% 줄어든 것도 ‘심상치 않다’는 평가다. 건축과 토목공사 실적이 모두 하락해 ‘부동산 경기가 하락 사이클에 진입한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김성태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건설투자 증가율은 올해가 정점을 찍을 것”이라며 “건설투자의 성장 기여도는 4분기 이후 내려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체 설비투자 역시 웃지 못했다. 기계류(-2.6%), 운송장비(-0.9%) 모두 감소하며 전월 대비 2.1% 줄었다.

정부, “일시적 요인 때문”

정부는 아직 느긋하다. 9월 지표 부진은 갤럭시노트7 리콜, 8월 대규모 설비투자에 따른 기저효과 등 ‘일시적인 요인’이 크게 작용했다고 본다. 이 때문에 10월 지표는 나아질 것으로 낙관한다. 기재부 관계자는 “코리아세일페스타 등 소비진작책 효과, 현대차 파업 종료 등은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10월26일 기준으로 전년 동기 대비 2~4% 정도 증가한 것으로 나타난 10월 백화점·할인점 매출을 감안할 때 소비지표는 반등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간 전문가들은 정부와는 다른 견해를 제시했다. 구조조정, 김영란법 시행 등의 부정적인 영향이 경제에 본격 반영될 앞으로가 더 걱정이란 설명이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문장은 “정부가 경기지표 부진을 일시적인 요인 때문으로 보는 것은 곤란하다”며 “경제에 구조적인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대비책을 마련해 둘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