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금융권에서는 부산시 금고은행 자리를 놓고 4년 만에 다시 벌어지는 국민은행과 농협은행의 대결이 관심이다. 11조원에 달하는 부산시 예산을 예치받고 지출 통로 역할을 하는 부산시금고 선정 공고가 지난달 나온 뒤 치열한 물밑 경쟁이 펼쳐지고 있어서다.

부산시금고는 2012년까지 부산은행(1금고)과 농협은행(2금고)이 나눠 맡았으나 국민은행이 2013년 농협은행을 제치고 2금고로 선정돼 주목받았다. 대체로 1금고는 일반회계, 2금고는 특별회계 자금을 예치한다. 전통적으로 지방자치단체 금고 시장의 강자였던 농협은행으로선 큰 충격이었고, 부산지역본부장을 대기발령 조치했다. 이때부터 농협은행은 물론 시중은행 지역본부장들 사이에선 ‘지자체 금고를 뺏기면 옷을 벗어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관계자는 전했다.

올해 말부터 내년 초까지 총 81조원 규모의 지자체 금고 쟁탈전이 벌어진다. 경기, 부산, 경남 등 4개 광역시·도와 67개 시·군·구가 금고은행 공개 입찰을 할 예정이다.
뺏기면 끝장!…은행권 '81조 지자체 금고' 쟁탈전
매력적인 지자체 금고은행

경기도는 새로운 금고은행 선정을 위한 공개 입찰을 준비하고 있다. 2013년 선정한 금고은행 약정 기간이 내년 3월 만료돼서다. 경기도의 일반회계 규모는 약 18조원, 특별회계는 1조4000억원 정도다. 현재 1금고 운영권을 갖고 있는 농협은행과 2금고를 운영하는 신한은행 외에 국민은행 KEB하나은행 등이 입찰 참여를 저울질하고 있다.

부산과 경기 외에 내년 초까지 금고은행 교체를 위해 공개 입찰을 하는 지자체는 70여곳이 넘는다. 은행들이 운영 계획을 포함한 제안서를 제출하면 지자체 공무원과 시·도의원, 교수, 변호사, 회계사, 세무사 등으로 구성된 심의위원회에서 최종 선정한다. 주로 은행 신용도, 지역민의 이용 편의성, 금고업무 관리능력, 예치금 금리, 지역 기여도 등을 살펴본다. 과거에 지역 거점이 많은 농협은행과 지역은행들이 금고은행 시장에서 우월적 지위를 누린 배경이다.

하지만 2012년 정부가 투명성 확보를 위해 금고은행 지정을 공개 입찰로 바꾸도록 하면서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과거 실적 등을 주로 보던 평가 기준이 운영계획 위주로 변하면서 금고은행 진입 문턱이 낮아졌고 시중은행에도 기회가 생겼다.

금고 지키기 vs 빼앗기

신한은행과 국민은행 우리은행 KEB하나은행 등 시중은행들은 지자체 금고은행 사업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은행장 출신 연고 등을 앞세워 공격적인 영업을 펼치기도 한다.

가장 많은 지자체의 금고지기 역할을 하는 농협은행은 수성(守成)을 위해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 농협은행은 광역지자체 10곳과 기초지자체 155곳의 금고은행을 맡고 있다.

경남에선 경남은행이 기존 농협은행의 금고은행 자리를 노리고 있다. 1조7000억원 규모의 광주교육청 금고은행 지정을 두고서도 기존 운영권을 사수하려는 농협은행이 광주은행과 경쟁하고 있다. 농협금융 관계자는 “지역과 농민을 위한 은행이라는 특성상 금고은행은 농협은행에 영업 이상의 의미가 있다”며 “농협은행의 자존심 문제라는 암묵적인 공감대가 형성돼 있어 지역본부장의 최우선 목표는 ‘금고 사수’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온다”고 말했다.

지난달 말 시행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도 금고 유치전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은행들이 과거처럼 금고를 유치하기 위해 공익 목적이라도 출연금이나 장학금 제공 등의 금전적인 기여를 하는 게 힘들어져서다. 또 지난 7월 말 시행된 개정 은행법도 지자체에 과도한 이익을 제공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봉사활동 등 지역사회 공헌이나 지역인의 금융 편의성을 높일 수 있는 다양한 금융상품과 서비스 제공 위주로 금고은행 유치 전략이 수정되고 있다.

■ 지자체 금고은행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정부 교부금과 지방세 세입, 각종 기금 등을 예치받고 세출, 교부금 등의 출납 업무를 한다. 대규모 예금 확보뿐 아니라 공무원 등 고객 유치에 큰 도움이 된다.

김은정/이현일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