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우리 스스로가 만드는 지옥
바야흐로 기업 공채 시즌이 시작됐다. 오늘날 대한민국 청소년들에게 취직 이상 절실한 것이 무엇이겠는가. 최근 잡코리아가 146개 대기업을 조사한 바에 의하면 올 하반기 채용 인원은 작년에 비해 10% 가까이 줄었다고 한다. 대기업 채용이 줄면 한진해운, 대우조선이 넘어지며 2차, 3차 계열사에 무수한 실직자가 발생했듯 그 여파는 중소기업으로 이어진다.

기업 채용이 줄어듦에 따라 정부는 매년 일자리 지원 예산을 늘리고 있다. 내년 일자리 예산은 올해보다 10.7% 늘어난 17조5000억원이며, 작년 예산 또한 재작년보다 12.8% 증대된 것이다. 이렇게 일자리 예산을 늘리자면 무언가를 쥐어짜야 해서 내년 비슷한 규모의 사회간접자본 예산은 8.2%, 산업·중소기업·에너지 예산은 2.0% 줄었다. 과연 이 중 어느 것이 우리나라 일자리 창출에 더 유효하겠는가.

정부의 일자리 예산은 기업이 지급할 임금이나 투자액 일부를 대신 지급해 주는 고용장려금·창업지원금(5조4000억원), 청년인턴·노인·일자리나누기 등의 고용 비용을 국가가 지급해 주는 직접 일자리창출 사업(2조6000억원), 그 밖에 실업소득(6조3000억원) 등이다. 이런 예산이나 서울시, 경기 성남시 등이 주는 청년수당 같은 것은 실직자를 보상하고 실직의 기회비용을 낮추게 하는 것이다. 듣기 싫은 소리지만 실직 비용과 고통이 커질수록 청년들은 더욱 열심히 일자리를 찾는다. 또 정부가 특정 사업체의 임금과 투자비용을 대신 지급해 주면 나머지 시장의 임금·투자비용이 그만큼 비싸지는 것이 시장원리다.

따라서 오늘날 일자리 예산이 매년 늘어날수록 일자리는 오히려 줄어든다는 역설(逆說)이 성립하게 됐다. 정치가·지방자치단체장들이 구직 청년들을 걱정해서 수당과 지원을 뿌릴수록 그들은 표(票)를 얻지만, 기업과 국민은 나태해지고 시장경제는 상(傷)한다. 그래서 중소기업에서 일할 사람은 줄어들고, 기업의 고용 수요도 줄게 되면 정치권은 다시 일자리지원 예산 증액을 요구할 것이다. 이런 악순환은 언젠가 국가가 기업의 월급을 모두 대신 내주는 사태에 직면해서야 그친다.

기업이 일자리를 만든다는 것은 ‘지구는 돈다’는 사실같이 뻔한 상식이다. 따라서 일자리 창출 문제의 유일한 답안은 우리나라를 세계 최고의 기업친화 국가로 만드는 것뿐이다. 서비스산업규제, 수도권투자규제 등 모든 규제를 최대한 줄이고, 기업의 자유와 경쟁을 최대한 보장하고, 비대한 노조 권력과 불법파업 행태를 철저히 제재하고, 법인세를 인하하는 등 노력을 기울인다면 대한민국은 국가가 말려도 시장에 투자와 창업, 소득과 고용이 넘치는 나라가 될 것을 기대할 수 있다.

오늘날 많은 청년들이 ‘헬 조선’을 외친다. 기성세대들이 경제성장과 일자리가 넘치던 시대를 독식(獨食)해 이제 자신들의 기회는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회는 어느 때 누구에게나 찾아온다고 하지 않는가. 지금은 서비스산업 시대라고 하는데, 이 시대 한국보다 좋은 서비스산업 여건은 세계에서 찾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양질의 서비스 수요가 무한정으로 분출하는 중국의 앞마당 한가운데에 있다. 한국인은 세계 최고 수준의 교육과 평생 경쟁으로 단련돼 올바른 환경이 주어질 때 의료 교육 관광 금융 법률 등 고부가가치 첨단서비스산업을 얼마든지 창출할 자질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응집된 국민의 힘으로 고속 경제개발의 기회를 잡았던 과거와 달리 오늘날은 분열과 파괴가 대한민국 국민성이 됐다. 정치권은 국가에 대소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국민을 극한의 대립과 투쟁으로 몰아 결사반대와 극한투쟁을 국민적 품성으로 만들었다. 극단적 이기주의와 포퓰리즘 정치가 성공해 국회는 반(反)시장, 반기업적 정당이 지배했다. 따라서 오늘날 어떤 기회나 시대적 명제에도 국민적 합의나 국가의 에너지 응집이 불가능한 나라가 됐다. 결국 ‘지옥’은 그 시대 국민이 ‘스스로 창조하는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김영봉 < 중앙대 명예교수·경제학 kimyb5492@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