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된장·요구르트…토종 미생물로 '입맛 독립'
2001년 샘표는 전통 방식으로 담그는 된장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다간 한국 음식의 맛을 제대로 내는데 꼭 필요한 된장의 맥이 끊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시중에는 일본식 된장만 판매되고 있었다. 전통 된장은 콩의 발효를 돕기 위해 밀을 넣는 일본 방식과 달리 메주(콩), 물, 소금만으로 제조하는데, 콩만으로 발효하면 시간이 오래 걸려 대량생산 과정에서 썩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샘표 연구원들은 전국 각지의 된장 명인을 찾아다니면서 비법을 전수했다. 연구원들은 각 된장에서 1000여종의 미생물을 분리해 맛과 향이 좋으면서도 대량 발효가 가능한 미생물을 선별, 지난해 전통된장 제품 개발에 성공했다. 15년 가까운 연구 끝에 맺은 결실이었다.

◆김치 유산균에서 누룩 효모까지

식품업체들이 토종 미생물을 활용한 제품들을 잇따라 선보이고 있다. 지난 수십년간 해온 미생물 연구가 하나둘씩 결실을 맺고 있는 것이다. 한국야쿠르트가 올해 선보인 ‘얼려먹는 야쿠르트’에는 독자 개발한 김치 특허 유산균 ‘락토바실러스 플란타룸 HY7712’가 들어있다. 한국야쿠르트가 보유한 총 7개의 특허 김치 유산균 중 하나로, 면역 강화와 항산화에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야쿠르트는 1976년 중앙연구소를 설립한 뒤 꾸준히 미생물 관련 연구를 해오고 있다. 1995년 한국형 비피더스 균주를 개발한 이후 특허받은 균주가 56종이고, 이 중 22종은 제품 생산에 활용됐다.

지난 5월 천연효모빵을 출시한 SPC그룹은 효모 연구에 힘을 쏟고 있다. 서울대 연구진과 함께 토종 효모 발굴과 제품 개발을 위한 연구를 진행, 전통누룩에서 제빵에 적합한 천연효모를 찾아냈다. 현재 33종의 천연효모빵을 판매 중이다. CJ제일제당은 김치에서 추출한 유산균으로 아토피피부염에 효과가 있는 제품을 출시했다.

식품 업체들은 미생물 개발이 ‘식량주권에 관한 문제’라고 말한다. 한국 음식은 발효식품이 많아 미생물이 꼭 필요한데 거의 전량을 수입에 의존한다. 한국식품연구원에 따르면 국내에 수입되는 종균(종자가 되는 미생물)은 연간 1억달러(약 1102억원)어치가 넘는다. 김정우 SPC식품생명공학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미생물은 발효식품이 많은 한국에선 원천 기술 확보차원에서 꼭 필요한 연구 분야”라고 말했다.

◆수입대체뿐 아니라 신제품 개발도

미생물 수입이 감소하면 식품 업체들의 부담은 줄어든다. 한국야쿠르트는 한국형 유산균의 수입대체효과가 연간 1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SPC는 누룩에서 찾아낸 천연효모로 빵을 만들면서 연간 3000t, 70억원 규모의 이스트 수입 비용이 절감될 것이라고 추정했다.

토종 미생물 연구는 다른 제품 개발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샘표는 전통된장 연구 과정에서 찾은 복합발효기술을 활용해 액상조미료인 연두를 개발했다. 전통 간장을 제조할 때 맛은 곰팡이가, 향은 효모가, 색은 유산균이 좌우하는데 이를 적절히 배합하기 위해 개발한 기술이 복합발효기술이다.

한국야쿠르트는 지난 2월 구취 예방 효능이 있는 유산균 특허 등록을 했다. 앞으로는 피부 보습, 중성 지방 감소 등 다양한 고기능성 프로바이오틱스 분야로 한국형 미생물 활용 영역을 확대할 계획이다. 심재험 한국야쿠르트 중앙연구소장은 “탈모, 피부, 지방감소 등 김치 유산균의 다양한 기능성이 연구되고 있고, 성과도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강영연 기자 yy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