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 Insight] 신기술 연구에서 사업화까지…'창조경제' 우리가 해낸다
독일의 제조업이 강한 것은 ‘원천기술’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는 독일의 칼 벤츠가 발명했고 디젤엔진 역시 독일 MAN에 근무하던 루돌프 디젤이 고안했다. 자동차부품 등을 만드는 보쉬는 4만5600명의 연구원이 하루 평균 18건의 특허를 출원할 정도로 혁신적이고 기술을 중시하는 기업이다.

한국의 제조업이 요즘 어려움을 겪는 것은 이 같은 원천기술이나 핵심기술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많은 응용연구개발(R&D) 자금을 투입해 왔다. 하지만 투자에 비해 결과는 아직 부족하다. ‘연구 따로, 사업화 따로’인 셈이다. R&D 결과를 사업화하는 실적은 세계 43위, 산업적 가치는 20위에 그치고 있다.

이런 문제를 타파하기 위해 ‘융합 R&D’ 지원체계를 가동하기 시작했다. ‘R&D에서 사업화까지’ 총체적인 지원을 통해 원천기술을 개발하는 것은 물론 열매까지 거두자는 것이다. 우리도 ‘독일형 원천기술’을 확보해 글로벌 시장에서 승부하겠다는 프로젝트다. ‘창조경제’ 구현 모델인 셈이다.

미래창조과학부는 2013년부터 ‘신산업창조경제프로그램’을 도입했고 5개의 기술사업화전문가단을 선발해 운영하고 있다. 3개 사업단은 이미 성공리에 종료했고, 2개 사업단을 운영 중이다.

이 중 ‘UTA(Ultimate Techno Agency) 기술사업화전문가단’(단장 김선일)은 융합 R&D를 실현하기 위해 벤처기업 최고경영자, 벤처캐피털리스트, 변리사, 교수 등으로 전문 멘토단을 구성해 운영하고 있다. 정부 R&D 사업 중 ‘우수한 기초·원천 R&D 과제 결과물’을 선정해 사업화를 지원하고 있다.

전문가단은 현장 경험이 풍부하다. 단장인 김선일 한양대 전기생체공학부 교수는 서울대 공대 졸업 후 미국 드렉셀대에서 의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1990년대 초 초음파를 이용한 태아의 심장 박동 이상 유무를 진단하는 ‘태아심음(心音) 감시장치’를 개발했고 이를 수출하고 있다. 2000년부터는 메디칼스탠다드라는 ‘의료영상 저장전송시스템(PACS)’ 관련 업체를 창업해 운영 중이다. 1995년 보건복지부 G7 사업을 필두로 한국연구재단 기초연구본부장과 오송첨단의료복합단지 첨단의료기기개발지원센터장을 지냈다. 사업화 경험이 풍부하고 산학 협력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전문가단에는 김희찬 서울대 의공학과 교수, 김인영 한양대 생체공학부 교수, 고석빈 알피니온 대표, 김진태 U2바이오 대표, 김영훈 (주)나무 대표, 김태훈 완일에셋매니지먼트 대표, 유병천 아이티스탠다드 이사 등도 포진해 있다.

서울대병원 의생명연구원 연구지원본부장인 김희찬 교수는 바이오센서 및 유비쿼터스 헬스케어 분야 전문가다. 김인영 교수는 보청기 및 심전도 측정기 분야의 권위자로 인슐린 펌프, 혈당측정기 등의 신제품 개발을 돕기도 했다. 고석빈 대표는 초음파 진단기, 김진태 대표는 병·의원 검진용 솔루션 및 연계서비스 분야를 사업화하고 있다.

김영훈 대표는 알렉스(ALEX)라는 ‘거북목 방지 예방장치’를 사업화했다. 김태훈 대표는 기술벤처전문 창업투자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유병천 이사는 국내 보건의료 정보통신기술(ICT) 분야 전문가로 서울대를 비롯한 국내 유수 연구기관의 정보화에 앞장서고 있다.

전문가단은 미래 성장이 기대되는 네 건의 프로젝트를 지난해 선정했다. △포항공대의 ‘초민감의료진단사업단’ △광주과학기술원(GIST)의 ‘투명전극사업단’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의 ‘친환경유화기술사업단’ △연세대의 ‘스마트혈액채취진단사업단’이다. 사업 2년차를 맞은 이들은 연구성과를 거두기 위해 속속 기업을 창업하고 사업화에 나섰다.

포항공대팀은 원자힘 현미경으로 마이크로RNA(리보핵산)를 분석해 암조기진단기법을 개발하고 서비스를 사업화할 예정이며, 2016년 (주)한독으로부터 60억원을 투자받아 경기 안양시에 생산시설을 구축하고 있다. 광주과기원팀은 휘어지는 디스플레이용 투명전극과 스마트윈도 기술을 제품화할 ‘원스(ONES)’라는 회사를 창업했고 광주산업단지에 공장을 설립 중이다.

표준과학연구원팀은 초음파를 이용해 서로 다른 입자를 섞는 장비를 개발하고 있고 ‘그린솔’이라는 회사를 창업해 세종시에 공장 시설을 준비하고 있다. 연세대팀은 ‘주빅’을 설립해 ‘마이크로 란셋(lancet)을 이용한 통증 없이 혈액을 채취해 자가 진단하는 시스템’과 ‘마이크로 니들을 이용한 기능성화장품 전달 시스템’을 만들고 있다.

전문가단은 네 개 프로젝트에 자금 지원, 사업화를 위한 자문, 네트워크 구축, 전문가들과의 교류 등을 맞춤형으로 지원하고 있다. 김 단장은 “지원하는 당사자와 지원받는 당사자 간 긴밀한 유대와 합리적인 이해관계가 성립되지 않을 경우 지원체계는 무력화될 수밖에 없다”며 “창업에 따른 위험요소 분담과 성공으로 인한 이익공유의 정확한 개념 설정이 없다면 그저 형식적인 지원에 그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국가연구비 사용의 모럴해저드’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이 사업은 전문가단에 과제 선발권과 사업단의 운영권이라는 파격적인 자율성이 주어졌고, 책임 및 권한이 명백해 기존 지원체계와는 현격하게 다르다. 전문가단의 창업 지원체계는 자본(투자), 기술, 생산(운영)이라는 3자 간 가교 역할에 더해 연구비도 지원하고 있다. 김 단장은 “지난 1년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전문가단은 연구 성과의 실용화 성공사업 모델을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김낙훈 중소기업전문기자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