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항 차질로 납기 지연…주문 취소·거래처 단절·손배소송 우려까지

한진해운의 법정관리로 수출입 중소기업의 피해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기업들은 원·부자재 등 수출입 물품을 실은 한진해운 선박이 압류되거나 예정된 항로를 지키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주문 취소와 거래처 단절 등 연쇄적인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에 속을 태우고 있다.

8일 중소기업계에 따르면 자동차 부품을 수입하는 A 업체는 이달 2일 한진해운 소속 선박을 통해 컨테이너 4대 분량의 부품을 조달할 계획이었지만 선박 운항이 차질을 겪으면서 물건을 제때 받지 못했다.

특히 이 업체는 이달 중 수입할 물량이 많은데 선박들이 대부분 싱가포르와 중국 상하이(上海) 등을 경유해 들어올 예정이라 납기 지연 우려를 떨치지 못한 상태다.

합성수지가공기계공업협동조합 소속 중소기업 22곳도 10월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열릴 '국제 플라스틱 산업전시회'에 참가하기 위해 컨테이너 12대 분량의 전시물 운송을 시작했지만 정작 전시회에 참가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컨테이너를 싣고 8월 29일 부산항을 출발해 독일로 가던 한진해운 선박이 경유지인 상하이에 입항하지 못하고 8일 오전 현재까지 인근에 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시회 사용 물품의 특성상 활용할 수 있는 기간이 길지 않기 때문에 업계 관계자들의 근심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의류 원단을 수입하는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이번 주 초 받기로 한 원단이 도착하지 않았는데 옷은 계절을 타는 상품이기 때문에 시기를 놓치면 (원단을) 쓰기가 어렵다"며 "바이어가 이번 주까지는 기다리겠다고 했으나 어찌 될 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정부 합동대책 태스크포스(T/F)에 따르면 7일 오후 현재 한진해운 운항 선박 128척 가운데 정상적으로 운항을 못하고 있는 선박은 컨테이너선 70척과 벌크선 16척 등 86척이다.

현재 26개국 50개 항만에 흩어져 있는 이들 선박은 하역 업체가 작업을 거부해 입항이 금지되면서 공해 상에 대기하고 있거나, 입항 후 하역을 마치고도 연료유를 구매하지 못해 발이 묶인 상황이다.

싱가포르에서는 컨테이너선 한진로마호가 압류됐고 상하이에서도 각 컨테이너선 1척이 압류됐다.

한진해운은 해외 항만이 선박을 가압류하는 것을 막기 위해 법정관리 개시 직후인 이달 2일 미국 법원에 채권자의 강제집행을 금지하는 압류금지명령(스테이오더)을 신청해 잠정 승인을 받았고 5일에는 일본 법원에도 압류금지명령을 신청해 승인을 받았다.

이번 주에는 캐나다·독일·영국을 포함한 주요 거래국 10여 곳에 스테이오더를 신청했거나 신청할 예정이다.

문제는 운항 차질에 따른 납기 지연 등으로 협력업체에 대한 원청업체의 손해배상 청구가 줄을 잇는 등 피해가 더 확산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선박억류·강제하역, 대체선박 수배 등의 과정에서 추가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 대체선박을 구하지 못해 해상 운임이 치솟을 수 있다는 점도 중소기업들이 걱정하는 부분이다.

실제로 수출 중소기업인 B사의 경우 한진해운의 법정관리 발표 이후 부랴부랴 현대상선 등 다른 해운사를 통해 수출물량을 운반하려 했지만, 적재공간이 부족하다는 답변이 돌아와 발을 굴러야 했다.

해운대리점과 선박관리업체, 대형선박의 접안을 돕는 예선업체 등 관련 사업에 종사하는 중소기업인과 소상공인의 피해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예선업종의 경우 한진해운으로부터 받지 못한 예선료가 17억원에 이른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납기 지연으로 인한 손해배상 책임과 생산활동 차질, 선복량(적재능력) 감소로 인한 해상운임 상승 등 여러 가지 직간접적 피해가 생기고 있다"며 "특히 규모가 작고 협상력이 약한 중소기업의 경우 대기업에 비해 더 큰 피해를 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서울연합뉴스) 고유선 기자 cind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