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관리 이전 자구안인 '4천억원+1천억원' 다시 제시…채권단 냉랭

한진해운의 법정관리에 따른 후폭풍으로 '물류대란'이 심화되고 있으나, 사태 해결에 일차적인 책임이 있는 한진그룹 측의 대응책은 법정관리 이전에 내놓은 자구안 수준에서 답보하고 있다.

이에 따라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결단이 다시 한 번 필요하다는 지적이 대두되고 있다.

6일 금융권에 따르면 한진그룹은 전날 저녁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과 한진해운에 대한 긴급 자금 수혈 방안을 논의했으나 이렇다 할 결론을 도출하지 못했다.

한진그룹이 제시한 방안에 대해 채권단은 매우 냉랭한 시각을 보이고 있다.

채권단 관계자는 "돌아가는 상황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는 자리였다"며 "사실상 한진 측에서 제시한 지원 방안은 없다"고 말했다.

한진그룹에서는 채권단의 논의가 진행 중이던 지난달 25일 제출한 자구안 내용을 사실상 반복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항공에서 유상증자 4천억원을 통해 한진해운에 자금을 수혈하고, 그래도 부족자금이 발생할 경우 그룹 계열사나 조양호 회장의 유상증자 등으로 1천억원을 추가 지원하겠다는 것이 한진그룹이 지난달 제출한 최종 자구안이었다.

한진그룹에서는 이러한 자구안을 실행에 옮기는 대신에 채권단이 먼저 동일한 규모인 5천억원을 수혈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와 별도로 한진그룹에서는 한진해운이 보유한 미국 캘리포니아주 롱비치터미널을 매각해 유동성을 추가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그러나 채권단에서는 롱비치터미널을 매각하는 데에는 까다로운 조건이 많아 사실상 실효성이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사실상 이미 채권단에서 거부 의사를 표명, 한진해운을 법정관리로 몰아넣은 자구안을 다시 가져온 셈이다.

채권단 관계자는 "한진그룹이 도대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하기도 했다.

한진그룹은 6일 산업은행과 다시 지원 방안을 논의하겠다고 밝혔지만, 이에 대해서도 채권단은 부정적인 시각을 보이고 있다.

채권단 관계자는 "이미 기존 자구안 수준의 지원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힌 상황에서 하루 만에 다시 어떤 안을 가져올지 모르겠다"며 "회의 일정도 잡혀 있지 않다"고 말했다.

앞서 금융당국은 한진그룹 측에서 물류 혼란에 대한 사태 해결에 나선다면 측면 지원을 검토할 수 있다며 기존의 '지원 불가' 원칙에서 한 걸음 물러난 태도를 보인 바 있다.

그러나 한진그룹은 한진해운의 대주주인 대한항공에서 하역비 등의 자금을 지원하면 배임 우려가 있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사태를 해결하려면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사재 출연 등으로 유동성 지원에 나서는 결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상황이다.

임종룡 금융위원장도 5일 기자간담회에서 "안전하게 화물을 운송할 책임은 당연히 한진해운에 있고 여전히 한진해운은 한진그룹의 계열사"라며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도 어떤 상황이 닥친다 해도 그룹 차원에서 회사와 해운산업 재활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경주해 나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며 조 회장의 결단을 촉구했다.

채권단 관계자는 "현재 한진해운이 해외 선주사와 하역업체 등에 지급하지 못한 약 6천300억원의 대금 가운데 가장 시급한 것은 항만이용료"라며 "그 액수는 아주 큰 수준이 아니므로 한진그룹 측에서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진해운의 법정관리를 주도하는 서울중앙지법 파산6부는 물류대란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선 1천억∼2천억원 정도의 신규자금 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서울연합뉴스) 고동욱 이지헌 기자 sncwoo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