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에 주도권 넘어가고 한진 자산 양도 등 난제 산적
업황부진에 현대상선도 안심 어려워…하반기 조선업도 어려움 예고


한진해운의 회생절차(법정관리) 신청을 기점으로 해운산업 구조조정은 더욱 본격화되는 분위기다.

국내 1위 해운사의 법정관리 신청에 따른 후폭풍과 고통을 최소화해야 하는 한편, 동시에 해운업 경쟁력 확보를 위한 후속 대책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류 혼란이 우려했던 것보다 커지면서 해법 모색을 위한 관계 당국의 고심도 커지고 있다.

현대상선의 경영권을 쥔 채권단은 경쟁력 확보를 지원해야 할 중책을 맡게 됐지만 앞길은 순탄치 않아 보인다.

해운업의 뒤를 이어 조선업도 본격적인 구조조정의 파고를 예고하고 있다.

정부의 '빅3 체제' 유지 방침으로 한고비는 넘겼지만, 수주절벽이 지금처럼 이어진다면 긴급 수혈을 받은 대우조선해양은 물론 정상기업인 나머지 '빅2'도 미래를 안심할 수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 한진 선박 하역거부에 선박압류…"대금 마련방안 모색해야"

4일 해운업계와 관계당국의 말을 종합하면 한진해운의 법정관리 신청 이후 물류 대란이 현실화하면서 정부의 고심도 깊어지고 있다.

해양수산부를 중심으로 정부가 수출입 화물 비상운송대책을 수립하고 대체 선박 등을 투입하기로 했지만, 당면 해결과제는 한진해운 선박에 행해지는 입·출항 거부와 압류다.

현재까지 컨테이너선 1척이 싱가포르에서 선주사에 의해 압류됐고, 연료를 구하지 못해 운항을 멈춘 배 등을 포함해 총 41척이 정상 운항을 중단했다.

하역업체들은 밀린 하역료를 지급하라고 요구하거나 앞으로 대금을 받는다는 보장이 없다는 이유로 작업을 거부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돈을 내기 전까지 한진해운 배들이 바다 위에 묶여 있게 된 셈이다.

채권은행들이 공동관리(자율협약)를 종료하면서 채권단에 손을 벌릴 수 없게 됐으므로 한진 측이 자체적으로 자금을 조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압류금지명령(스테이오더)을 얻어내지 못한 나라에서는 돈을 내지 않으면 하역을 할 수가 없다"며 "한진 측과 함께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 새 CEO 맞은 현대상선…정상화까진 곳곳에 암초

당장의 물류 혼란 수습도 어려운 일이지만 홀로 남게 된 국적선사인 현대상선의 선대 경쟁력 확보 방안도 쉽지 않은 문제다.

현대상선은 5일 열리는 임시 이사회에서 유창근 인천항만공사 사장을 신임 최고경영자(CEO)로 선임하고 유 내정자를 중심으로 비상경영체제를 가동할 예정이다.

채권단 관계자는 "유 사장이 새 CEO로 내정된 만큼 그의 진두지휘 아래 현대상선이 곧장 중장기 경영 정상화 방안 마련에 착수할 것"이라고 전했다.

정상화 계획에는 한진해운으로부터 우량자산을 확보할 방안과 선박펀드를 활용해 새 컨테이너선을 발주하는 방안 등이 모두 담길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해운업황 부진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선대 경쟁력을 빨리 회복하지 않으면 현대상선의 중장기 전망 역시 결코 밝지 않다.

현대상선이 관심을 두는 한진해운의 자산은 경쟁력 확보에 도움이 되는 초대형 신조(新造) 컨테이너선이다.

금융당국은 법정관리 과정에서 한진해운의 자산이 공중분해 되지 않도록 현대상선이 우량자산을 인수토록 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법정관리 절차가 법원 주관으로 넘어가면서 더는 큰 목소리를 내지 못한 채 적기를 놓칠까 봐 애를 태우고 있다.

한편 한진해운 회생절차를 맡은 서울중앙지법 파산6부(김정만 수석부장판사)는 "적정 가격에 한진해운의 영업 또는 자산을 양도하는 등의 방안을 배제하지 않고 있으나, 이는 한진해운의 효율적인 회생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지 청산을 전제로 하는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 수주절벽 '심각'…조선發 구조조정 더 큰 파고 예고

해운업에 이어 조선업도 업황 부진이 길어지면서 본격적인 구조조정을 예고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은 올해 들어 10척, 10억달러 규모를 수주해 연간 수주목표(62억달러)의 16%를 달성하는 데 그쳤으며 앞으로도 어려움이 예상된다.

적기에 인도돼야 유동성에 영향을 주지 않는 해양플랜트 인도 역시 하반기에 6기(50억 달러)가 남아 있다.

앙골라 국영석유회사 소난골이 발주한 드릴십 인도가 늦어지면서 유동성 위기를 겪었던 대우조선은 남은 선박 중에서 비슷한 사태가 재발할 경우 유동성에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 있다.

대우조선만큼은 아니지만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도 수주절벽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어렵긴 마찬가지다.

조선 3사는 주채권은행의 요청으로 자산매각과 인력감축 등을 골자로 총 17조원에 달하는 자구안을 발표하고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다.

정부가 유동성 부족 해결은 회사나 대주주가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원칙을 세운 확고히 한 상황에서 수주 절벽이 내년까지 길어질 경우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이라 해도 예기치 못한 비상사태를 맞을 수도 있다.

해운업계만 봐도 불과 수개월 전까지 한진해운의 경영 여건이 현대상선보다 상대적으로 나은 것으로 알려졌으나, 정작 유동성 위기를 넘지 못하고 쓰러진 것은 현대상선이 아닌 한진해운이었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이런 비상사태 등에 대비해 11조원 규모의 국책은행 자본확충펀드를 조성해 둔 상태다.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일각에서는 하반기 수주절벽 사태가 다소 개선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기도 한다"며 "다만 업황이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정확히 예측할 수 없는 만큼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 비상계획을 마련해 두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지헌 기자 pa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