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가 브레인이 없다 (4)] 기재부 고위관료가 말하는 한은…"밑줄치며 봤던 한은 자료 요즘엔 안 봐"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안 본 지 오래 돼서요.”

기획재정부에 근무하는 A국장에게 ‘요즘 한국은행 보고서를 보면 어떠냐’고 물었더니 머리를 긁적였다. 그는 경제분석과 관련 정책 수립에 깊이 관여해온 인물로 꼽힌다. 한은은 기재부의 중요한 정책 파트너다. 하지만 A국장은 한은이 때마다 내놓는 보고서에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다고 했다. 한은이 발표하는 경기분석과 성장률 전망은 물론 각종 현안 보고서도 꼬박꼬박 챙겨 보는 시절이 있었다. 그는 “20여년 전 사무관 시절 회의자료에 미처 지우지 못한 ‘당행’이 나와 등에 땀이 흐른 적이 많았다”고 말했다. 한은 자료를 베끼거나 참조할 때가 많다 보니 ‘당행(한은)의 분석 결과’ 같은 표현이 정부 자료에 실수로 남고는 했다는 얘기다. 한은 이코노미스트들은 특히 국제 흐름에 빨랐다고 했다.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을 앞두고는 각국 사례를 들며 세계화 이슈를 이끌었다.

그는 삼성경제연구소 등 민간 전문가들이 약진하면서 한은의 존재감이 약해졌다고 전했다. 요즘 한은은 세상이 어떻게 바뀌는지 모르는 듯 감이 조금 떨어진다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한은의 분석이 늦을 때가 많고 제언 역시 새로울 게 없다는 쓴소리였다. 그는 “기재부가 세종시로 내려간 뒤 갈라파고스 섬이 됐다면 한은은 서울 한복판의 갈라파고스 섬 같다고 주변에서 얘기한다”고 안타까워했다.

한은이 최근 다양한 외부 행사를 통해 교류에 나선 것을 높이 평가하지만 아쉬움이 크다고 했다. 한은은 지난 5월 제임스 불러드 미국 세인트루이스 연방은행 총재 등을 불러 ‘BOK 콘퍼런스’를 이틀간 열었다. 지난달에는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미국 피터슨연구소와 함께 공동 콘퍼런스를 개최했다. 그는 “초청된 유명 인사 상당수가 한국을 모르는 사람이었고, 동시 통역을 하지 않는 등 국내 소통엔 신경을 덜 쓰는 것 같았다”며 “학술행사의 특성은 이해하지만 한국 경제가 해야 할 고민과는 동떨어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