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단과 간극 못 좁히면 법정관리행…파산 불가피

한진해운의 운명을 결정지을 날이 약 2주 앞으로 다가오면서 한진그룹의 고심도 깊어지고 있다.

채권단은 추가 지원 불가 방침을 내세우며 대주주 자구 노력을 압박하고 있지만 한진그룹은 아직 뚜렷한 해결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채권단이 물러서지 않는 이상 한진해운은 자율협약 종료 시한인 9월 4일 이전에 부족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추가 자구안을 제출해야 한다.

추가 자구안이 나오고서 용선료 협상, 사채권자 채무 재조정 등의 절차까지 모두 완료해야 하기 때문에 다음 주 중에는 결단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 막바지 치달은 힘겨루기…조양호 회장 결단은
21일 해운업계와 금융권에 따르면 채권단은 부족 자금 중 최소 7천억원을 한진그룹 차원에서 자체적으로 채우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자금 여력이 없는 데다 잘못하면 배임 문제가 불거질 수 있어 4천억원 이상을 마련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자율협약 종료일이 가까워지고 채권단이 물러설 기미가 없는 상황에서 조 회장이 어떤 결정을 할지를 두고는 업계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일각에서는 한진그룹이 조중훈 창업자 때부터 육·해·공을 아우르는 통합물류기업을 지향해왔다는 점에서 조 회장이 어떻게든 추가 자금을 마련해 한진해운을 품고 갈 것으로 예상한다.

조 회장이 2014년 경기침체에 허덕이던 한진해운의 경영권을 최은영 전 회장으로부터 넘겨받아 1조원이 넘는 자금을 쏟아부은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점이 크게 작용한다면 계열사를 통한 지원 외에 조 회장의 사재 출연이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

한편으로는 계열사를 활용해 채권단이 요구하는 자금을 무리하게 끌어올 경우 그룹 전체의 경영 위기로 번질 수 있다는 점, 경기침체가 계속돼 당분간 업황이 좋지 않다는 점에서 조 회장이 한진해운을 포기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당장 대한항공은 자체 부채비율이 1천%를 넘어섰고 최근 넉 달간 1조2천원에 달하는 자산유동화증권(ABS)을 발행할 정도로 부채 상환에 급급하다.

최근 ㈜한진을 통해 한진해운의 핵심 자산인 롱비치터미널을 매각하려는 움직임은 한진해운을 떼어낸 뒤 알짜 수익을 챙기려는 시도라는 해석을 낳기도 했다.

해운업계의 한 관계자는 "어떻게든 한진해운을 살려놔도 당분간 업황이 좋지 않아 속을 썩일 것"이라며 "뼈아픈 일이겠지만 회생 뒤에도 힘든 상황을 계속 겪어야 하는 부담을 조 회장이 짊어지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 타협 안 되면 법정관리 불가피…회생 가능성 작아
자율협약 종료일까지 양측이 타협점을 찾지 못하면 채권단 지원이 자동 철회되고 한진해운은 회생이 불가능해져 법정관리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법정관리를 신청하면 해외 선주 등 채권자들이 채권 회수에 나서면서 한진해운 소속 선박 90여척이 전 세계 곳곳에서 압류된다.

화주들은 운반이 중단된 화물을 거둬들이기 위해 추가 비용을 들여야 하고, 국내 해운업에 대한 불안 탓에 외국 해운사로 무더기로 거래처를 옮길 수 있다.

내년에 출범하는 해운동맹 '디 얼라이언스'에서도 퇴출당해 원양선사의 역할을 하기가 불가능해진다.

결국 한진해운은 재무 사정이 좋지 않은 데다 최소 몇 달간 정상적인 영업을 하지 못해 파산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외국 해운사들로서는 국내 항만을 굳이 기항할 이유가 사라져 일본이나 중국을 거쳐 운항하게 된다.

업계에서는 이런 경우 부산항의 물량이 절반 수준으로 줄고 연 매출이 7조∼8조원 줄어들 것으로 예상한다.

현대상선이 살아남긴 했지만 한진해운의 규모나 시장 점유율이 더 큰 탓에 이 회사가 파산할 경우 국내 항만과 물류 산업에 연쇄적인 타격이 불가피하다.

만일 한진해운이 법정관리 개시를 통해 회생 절차를 밟게 된다면 다음 수순은 현대상선과의 합병이 될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이렇게라도 한진해운을 살려 국내 해운산업의 규모와 영업망을 유지하는 것이 낫다는 견해를 내비치고 있다.

조봉기 한국선주협회 상무는 "국내 1위 선사가 한순간에 사라진다면 상당한 혼란이 야기되고 관련 산업에 미칠 영향이 예상을 뛰어넘을 것"이라며 "장기적인 관점과 국가 이익 측면에서 한진해운을 살리는 방향으로 해결책을 마련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윤보람 기자 bryo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