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5위의 롯데그룹이 1년째 이어지는 형제간 경영권 분쟁으로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지난해 7월 27일 신동주 당시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부친인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과 함께 일본 도쿄로 건너가 동생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에서 해임하면서 시작됐다.

다음날인 28일 신동빈 회장이 일본롯데홀딩스 긴급 이사회를 소집, 아버지 신격호 총괄회장을 대표이사에서 해임하면서 장남의 '쿠데타'는 하루 만에 막을 내렸다.

그러나 신동주 전 부회장은 이후 신격호 총괄회장의 지지를 등에 업고 한일 양국에서 '반(反) 신동빈' 여론전을 전개했다.

신동주 전 부회장은 3차례에 걸친 롯데홀딩스 주주총회 표 대결에서 모두 신동빈 회장에게 패배했다.

신동주 전 부회장은 자신과 신격호 총괄회장이 롯데 계열사 등기이사 직에서 줄줄이 퇴진하는 수모를 겪었으나 끝까지 투쟁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롯데가(家) 형제의 경영권 분쟁은 실권을 장악한 신동빈 회장 쪽으로 승기가 기운 듯했으나 지난달 초 대대적인 압수수색과 함께 롯데그룹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시작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총수 일가의 불법 비자금 조성과 배임 행위 등에 초점이 맞춰진 검찰의 칼끝이 사실상 신동빈 회장을 겨냥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수세에 몰리는 듯하던 신 동주 전 부회장이 반전의 계기를 잡은 것이다.

신동주 전 부회장의 제보가 검찰 수사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는 설이 무성한 가운데 검찰의 서슬 퍼런 수사가 진행되면서 재계 5위의 롯데그룹은 만신창이가 됐다.

기업의 이미지는 더는 나빠질 수 없을 만큼 나빠졌고 굵직굵직한 인수·합병(M&A) 건과 신규투자가 잇따라 무산되면서 정상적인 기업 경영이 사실상 '올스톱'됐다.

신격호 총괄회장의 장녀인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이 사업과 관련해 거액의 뒷돈을 챙기고 회삿돈을 빼돌린 혐의로 지난 7일 구속됐다.

롯데 오너 일가 중 첫 번째 구속이었다.

검찰에 소환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진 신동빈 회장과 신격호 총괄회장에 대해서는 출국금지 조처가 내려졌다.

신동빈 회장은 경영권 분쟁으로 빚어진 사회적 물의에 대해 이미 여러 차례 대국민 사과를 했다.

지난해 9월에는 10대 그룹 총수 가운데는 처음으로 국정감사에도 출석해 해명하는 곤욕을 치렀다.

이런 와중에도 신동주 전 부회장은 자신이 이길 때까지 주총을 계속 열겠다는 이른바 '무한 주총'을 선언하면서 롯데 분쟁을 바라보는 국민의 피로감은 깊어지고 있다.

롯데가 형제의 경영권 분쟁은 오랫동안 신격호 총괄회장이 철권통치하면서 철저히 베일에 가려있던 롯데그룹의 비밀스러운 단면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복잡하게 실타래처럼 얽혀있는 롯데그룹의 지배구조가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면서 L투자회사나 광윤사(光潤社)와 같은 생소한 일본 회사의 이름이 여론에 회자했다.

특히 국내 굴지의 롯데그룹의 지주회사가 일본에 있으며 대부분 일본 주주들로 구성된 이 회사의 주총 결과에 따라 롯데의 경영권이 좌지우지된다는 사실이 부각되면서 적지 않은 국민이 충격을 받았고, '일본기업' 논란까지 불러일으켰다.

한국어를 전혀 몰라 일본어로 방송 인터뷰하는 신동주 전 부회장이 국내 재계 5위인 롯데그룹의 경영권을 차지하려고 국내에서 여론전을 펼치는 모습도 롯데와 재벌가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배가시켰다.

형제간 경영권 분쟁이 형사소송으로까지 비화하면서 소공동 롯데호텔 34층의 신격호 총괄회장 집무실이 언론에 첫 공개되고, 94세인 신 총괄회장의 정신건강도 도마 위에 올랐다.

여간해서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은둔의 경영자'로도 불렸던 신 총괄회장은 성년후견인 지정 필요성을 가리기 위해 치매 여부에 대한 판단을 받아야 하는 처지가 됐다.

37살 차이인 셋째 부인에 대한 롯데그룹의 특혜 논란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3번의 결혼에 따른 복잡한 가정사가 화제에 오르기도 했다.

이제 롯데가 삼부자와 롯데그룹의 운명은 검찰 수사 결과에 따라 명암이 엇갈릴 전망이다.

재계 관계자는 "오너 형제의 욕심 때문에 국내 굴지의 유통그룹이 망가진다면 이는 국가 경제 차원에서도 불행한 일"이라며 "조속히 검찰 수사가 마무리되고 롯데가 건강한 기업으로 재탄생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정열 기자 passion@yna.co.kr